얼마 전에 안동에 다녀왔습니다. 안동 가는 길에 권정생 선생님 살던 집을 찾았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살던 집은 남안동 IC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 살던 집을 찾은 것은 이번이 두번째 걸음이었습니다. 돌아가신지 얼마지 않아 처음 갔을 때 받은 충격은 뭐라 말하기 어려울만큼 컸습니다. 인간의 한평생이라는 게 그렇게도 살아지는 것을~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던 살아생전 삶터를 보면서 부질없는 욕심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살았던 집입니다.


서너평이 될까 싶은 건물 하나에 변소, 개집이 전부입니다. 그 곳에다 불편한 몸을 누이며 틈틈이 글을 썼습니다. 유작들이 많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 교과서에 나와있는 '강아지똥' 입니다.

그 외도 기억나는 것이 '몽실언니' 우리들의 하느님' '한티재 하늘' 등이 있습니다. 한티재 하늘은 병마와 싸우다 결국 완성을 하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글은 권력이나 명예나 물질에 대한 끈적거림이 없습니다. 글은 소박하고 담백했던 그분의 삶을 닮아있습니다. 그리고 맑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 속에는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 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것은 평생 가난과 외로움과 병마와 맞서며 살았던 자신의 삶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우리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 우리는 지금 정말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멋있는 옷을 차려 입고, 좋은 집에서 잠을 자고, 편하게 차를 굴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외국을 다녀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럽니다. 우리나라처럼 먹고 살기 좋은 곳이 없다구요. 잘 놓여진 길이며, 어디를 가도 풍족한 먹을거리며, 깨끗한 잠자리며 그런 곳이 드물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행복에 더 굶주려하고 그 속에서 허덕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는 욕심은 한정이 없습니다. 기준도 없으며 어느 정도에 이르면 저절로 제어되지도 않습니다. 낼수록 사람을 더욱 허기기게 만드는 게 욕심입니다. 그러기에 욕심과 만족은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죽도록 공부를 합니다. 어른들은 돈을 많이 벌도록 해주기 위해서 또 죽도록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지경에서 욕심을 내지마라~ 만족하고 살아라~ 그리 말하는 것은 별로 힘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개인의 탓도 적지 않지만 그 책임의 많은 부분이 사회나 국가에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잘 사는 선진국일수록 인간이 나고 자라고 죽는 과정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많이 부담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합니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사람 노릇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늙고 병들어 죽는 일의 대부분을 개인이 알아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좀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었던 개가 살았던 집입니다.
 
  방문앞에 걸려있는 소박한 문패입니다.
 
앉아서 글을 쓰기도 했던 책상입니다. 이제는 그 위에 방명록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변소입니다. 그 옆에 텃밭이 있었는데 주인이 없어서 그런지 잡초만 무성했습니다.


부자가 되기 위한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그러더군요. 한가지는 죽도록 많이 벌어들이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욕심을 비워내는 것 입니다. 두가지 방법 중에서 사람들은 어떤 것이 더 쉽다고 여길까요?


권정생 선생님의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삶터를 돌아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억수로 벌어들이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마음속에 있는 욕심을 들어내는 일이겠구나'

만약 권정생 선생님이 살아온 모습의 반의 반 혹은 그 반의 반만이도 닮을 수 있다면 가난하거나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지금 보다는 훨씬 줄어들었겠지요.
세상은 온통 돈돈돈 돈 타령입니다. 돈이 없으면 사람 구실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좀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 권모술수와 부정부패가 난무합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런 세태를 두고 의식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은 개탄을 합니다. 세상이 망쪼가 들었다구요. 도대체 이래서야 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구요. 그러면서 울분을 토하기도 합니다.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운동이라는 것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는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욕심이 없을까요. 울분을 토하고 운동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비교해 또 얼마나 다를까요.


권정생 선생님은 살아생전 단 한번도 세상에다 대고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거나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냥 말없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얼마 전 타계하신 리영희 선생님이 가장 큰 정신적인 영양을 받았다고 하는 중국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노신은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입으로 떠들지 말라. 꿈꾸는 세상이 있다면 그렇게 말없이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운동이다.'


권정생 선생님은 살아생전 인세로 받았던 적지 않은 돈을 자신의 영화를 위해 한푼도 쓰지않고 배곯고 병든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남겼습니다. 그런 면에서 권정생 선생님은 이 시대의 위인입니다. 가장 훌륭한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해 준 의미있는 길이었습니다.

 

 

Posted by 달그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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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꽃 2011.02.10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없이 살다' 이 말 앞에 부끄러워집니다
    그리 말 많은 이는 아니어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