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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지율 스님, 실비단안개님 그리고 낙사모

by 달그리메 2011. 1. 1.

지율 스님이 찍은 낙동강 사진을 순회 전시하면서 7개월 동안 함께 했던 낙동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낙사모'가 아쉬움 속에 해산을 했습니다. 4대강 사업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해산을 한 것은 처음 약속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다들 쿨하게 헤어졌지만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고 7개월 동안 함께 하면서 알게 모르게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자니 이런 저런 기억들이 떠올라 마음 한편으로는 짠했습니다.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합니다. 어쩌면 그게 살아가는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분들도 나름의 감회가 있겠지만 낙사모는 저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사진전을 했던 이야기를 적을 때와는 달리 마지막 소감을 적다보니 조금은 감상적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저에게 낙사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사회활동이었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가장 뒤떨어졌던 게 사회성이었습니다. 생활기록부 사회성 란에는 언제나 '다'로 기록이 되었을만큼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저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던 80년 초 무렵 한창 학생 운동이 성했을 때도 저는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 않았는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저는 사회보다는 스스로의 문제에 더 골몰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를 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함께 하게 된 낙사모 활동이 안으로만 향해 있던 저에게는 세상 밖으로 한발짝 걸음을 내딛은 첫 경험이 된 셈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게 다 이명박 덕분이네요. 참~^^ 

낙사모 활동을 하면서 개인의 이익보다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힘으로 세상이 제대로 꾸려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낙사모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낙사모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던 지율 스님이 그렇습니다.

 


                         지율 스님과 함께 밟았던 경천대 모래사장입니다


지율 스님~

지율 스님을 생각하면 청성산 도룡뇽을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거칠 것 없고 씩씩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안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반대편 사람들에게 지율 스님은 늘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것을 알기에 7개월 동안 사진전을 블로그에 올리면서도 지율 스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언제나 조심스러웠습니다. 도마 위에 올려져 난도질 당할까봐 지율 스님 이야기를 마음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지율 스님이 찍은 낙동강 사진전임에도 불구하고 지율 스님 이름을 일부러 빼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글에서 만큼은 지율 스님의 열정에 대한 고마움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낙사모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 중에 실비단안개님도 지율 스님 못지않게 제게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실비단안개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름다운 연대입니다. 이 말 속에는 실비단님이 꿈꾸는 세상이 다 들어있습니다. 

힘없는 사람 편에 설 줄 알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줄 알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세상을 위해서 거침없는 목소리도 낼 줄 아는~ 그러면서도 한 성질하시는 실비단안개님~ 낙사모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람입니다. 실비단안개님과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낙사모 해산 모임은 유쾌했습니다.


해단식을 끝내고 집으로 가기 위해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쪽 벽면에 아파트 감사 후보들이 쫙 나붙어 있었습니다. 후보 밑에는 이런 저런 이력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력뿐만이 아니라 00 모임 000 모임 0000 모임 등등 내가 지금 어떤 모임의 회원이라는 것이 마치 깃발처럼 내걸려 있었습니다.

그런 것도 내세울만한 자랑거리가 되는 줄은 잘 몰랐습니다. 만약에 낙사모가 해산을 하지 않고 지속되었다면 낙사모 회원도 이런 곳에서는 자랑거리가 될 뻔했겠네 싶었습니다. 
그런데 낙사모는 쿨하게 찢어졌습니다. 그런 게 무슨 소용인가요. 우리의 힘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다시 모이면 됩니다. 그런 유명한 싯귀가 있지요 "떠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름다운 해단식을 축하해주러 온 김주완 국장님 말이 정말 멋졌습니다. 패거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 한 번 만든 모임이 이렇게 쿨하게 찢어지는 일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라고요~하하^^ 언제든 우리의 힘이 필요할 때가 있으면 또 아름답게 모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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