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몹시도 추웠습니다. 30년만의 추위라고 하더군요. 따뜻한 남쪽지방에서만 살다가 위쪽에 가보니 평소 체감하며 지내던 그런 만만한 추위가 아니었습니다. 차가운 공기가 살점을 파고드는 것 같았습니다. 추워서 아픈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금요일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경천대 사진전이 열립니다. 다른 볼 일이 있었는데 경남을 돌며 낙동강 사진전을 했던 인연으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사진전이 좀 독특했습니다. 그냥 한 곳에다 사진을 세워놓고 전시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진을 담은 판넬 한 장씩을 들고 덕수궁 근처를 돌면서 사진전을 했습니다.
추운 날씨에 어른을 따라나온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
3시쯤 덕수궁 대한문 앞에 도착을 하자 사진전을 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날씨 탓인지 모두들 단단히 중무장을 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이 시내 중심가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거리로 밀려나오는 사람의 물결 속에 경천대 사진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의 수는 조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 추위를 무릅쓰고 지금 저렇게 나와서 사진을 들고 서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그러나 거리로 쏟아져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그저 무심했습니다.
지율 스님과 사진전을 할 사람들이 빙 둘러모여서 자기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
지율 스님을 몇달 전에 경천대에서 만났습니다. 지율 스님과 함께 강물에 들어가 놀면서 발바닥에 새겨졌던 낙동강 모래알의 속살거림이 여전히 아련한 느낌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강물에 발을 담가도 시리지 않을 가을이었습니다.
겨울의 가운데 그것도 서울 한폭판에서 지율 스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날씨 탓인지 그때보다는 훨씬 더 물기가 말라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실은 겨울이라서 물기가 말라보인다는 것은 맞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 같은 것이 그렇게 느껴져 왔습니다.
날씨도 춥고 시간도 없었기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었습니다. 지율 스님은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게 없다는 말을 지나가듯이 툭 던졌습니다. 툭 던졌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담방에 알아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 말은 항복한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포기한다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괴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지율 스님은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 손을 놓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요.
사진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 뒤로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트리에 더 많은 눈길을 주었습니다. |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 해도 4대강 사업의 부당함을 알리는 일을 시작한 것은 잘 한 일이었습니다. 시작의 끝이 꼭 완성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완이지만 움직인만큼 발자취는 남습니다. 그곳으로 부터 새로운 시작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도심을 배회하며 벌이는 경천대 사진 전시회는 그동안 4대강 사업을 반대해오던 지율스님의 마지막 몸부림 아니면 발악처럼 보였습니다. 살을 에이는 날씨 때문인지 그런 모습이 더 비감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진을 들고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강물처럼 이어졌습니다. |
많은 사람들의 저항이 이명박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앞에는 무력했습니다. 아무리 힘을 합쳐도 이명박을 이겨먹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강물이 풀리면 삽질은 더욱 빨라지겠지요.
그래도 사진을 들고 도심을 배회하는 사람들의 행렬처럼 강물이 있는 그대로 흘렀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염원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명박은 참으로 무식하게 센 사람입니다. 30년만에 찾아온 맹추위보다 더 매서운 사람입니다. 움직이는 사진 전시회를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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