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해 동안 한번도 건강한 몸이었던 적이 없는 하반신 척수장애인 현성씨, 그의 첫인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씩씩함'이었습니다. 그 씩씩함은 어쩌면 거칠고 험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그만의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견뎌내기 위한 안간힘일지도 모르구요. 그렇지만 저는 현성씨의 그 씩씩함이 편하고 좋았습니다.    

현성씨를 만난 건 부산 지하철 노조에서 마련한 장애인 이동권 체험 행사에 함께하면서였습니다. 그 날 반나절 동안 현성씨와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이렇게라도 흔적을 남겨놓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현성씨는 뭐든 다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저도 뭐든 더 많이 물어보고 싶었지만 제 마음에 겨워 제대로 물어보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현성씨가 절로 툭툭 던지거나 제가 툭툭 던진 질문에 답한 내용을 바탕으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비애나 슬픔 혹은 꿈과 희망 같은 것을 이런 식으로라도 한번 풀어보려고 합니다.

"장애인들도 술 좋아하고 담배도 피우지요."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술 이야기가 나왔을 때 현성씨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툭 나왔습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장애인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 굉장히 어색해 합니다. 마치 미성년자가 술 담배를 하는 것처럼 쌩뚱맞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몹쓸 짓을 하는 것처럼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지요" 현성씨가 그럽니다.

그렇구나~ 현성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그런 마음이 저에게도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많이 미안했습니다. 돌아와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장애인이 술 담배를 하면 되나? 대뜸 그 친구도 그럽니다. 어쩌면 몸의 장애보다 그런 편견이나 시선이 현성씨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비장애인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겠지요.

 

 

언제나 씩씩한 현성씨


현성씨는 소주 2~3병 정도는 거뜬하게 마신다고 그럽니다. 술 이야기가 나오자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사랑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느냐 그렇게 물으려다 얼른 질문을 바꾸었습니다. 사귀는 사람이 있느냐로요.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 안에는 장애인이 무슨 사랑 같은 걸 한다고~ 이런 느낌이 잔뜩 묻어 있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그만 움찔해졌습니다. 

현성씨는 망설임없이 사귀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2년 전에 헤어졌다고 그럽니다. 찼느냐 차였느냐고 물었더니 노코멘트~ 너무 깊이 알려고 하지 말라네요. 하하^^ 그런데 현성씨는 결국 자백을 합니다. 차였다고.

기쁨이든 슬픔이든 아픔이든 가슴 속에 가두어 놓으면 그만큼 힘이 든다는 걸 이만큼 살고보니 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겉으로 드러낸다고 그런 것들이 가벼워지거나 사라지지도 않지만요. 현성씨도 아마 그걸 알 겁니다. 그러니까 만난지 얼마되지 않은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았겠지요.

"장애인들 끼리 사랑을 하면 계산없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의지하면서 순수하고 아름답게 할 것 같지만 일반인들이 하는 사랑이랑 별반 다른 게 없어요. 어쩌면 더 많이 계산을 하는 지도 모르구요."

"어떤 식으로요?" 되물었더니 그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으로 현성씨가 저를 빤히 쳐다봅니다. 그러면서 또 술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성씨도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사람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장애 정도가 조금 더하느냐 덜하느냐, 경제적으로 조금 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조건이 되지요. 일반인들이 볼 때는 장애의 정도가 조금 더 심하고 덜 심하고가 별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그렇지 않아요. 특히 결혼을 전제로 할 때는 집안 어른들이 가장 먼저 따지는 게 장애 정도지요. 서로가 조금이라도 더 상대의 도움을 받고 싶은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일 테니까요."

그러면서 사귀던 여자와는 이런저런 문제로 갈등이 있어 결국 헤어졌다고 합니다. 보내줬다고 합니다. 아니 차였다고 그럽니다. 4년 동안이나 사귀었는데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 이별의 이유도 장애 정도와 경제적인 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현성씨 뒷모습


현성씨에게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습니다. 독립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서른네 살이나 먹은 어른이 가족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그 시선 안에 가두어져 사는 게 무척 불편하고 힘들다고 했습니다. 혼자 자유롭게 몸을 누이고 생활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과 얼마간의 돈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그럽니다.

한 달 용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결혼하지 않은 형이 주는 15만원으로 생활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날 현성씨와 함께 시청 사회복지과를 찾았습니다. 장애인 생활보호 대상자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에 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현성씨는 2급 장애인이었는데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그렇게 까다로운지 현성씨는 몰랐던 모양입니다. 부모의 재산 정도는 물론이고 형제 심지어는 출가한 누나와 매형의 재산까지 본다는 사실에 현성씨는 그만 경제적으로나마 독립을 하고 싶은 희망을 접어야 했습니다.

실망을 하고 좀 시무룩해진 현성씨에게 만약 조용한 시골에서 가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냐고 좀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싫어요 전 도시에서 사람들과 사는 게 좋아요" 그럽니다. 사람에게 상처받아도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또 사람의 일입니다.

그 말 끝에 일흔 중반의 나이에 시골에서 혼자 살고 계시는 친정 엄마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하루종일 혼자 집에 있으면 말을 할 상대가 없어서 입에서 단내가 난다. 사람 구경도 못하고 차라리 시장 부근으로 이사를 갔으면 좋겠다. 왔다갔다 하는 사람 구경을 하고 있으면 덜 심심할 것 같아"

몸이 불편하거나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게 외로움이랍니다. 그런데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모순적인 면이 많습니다. "집에 가만 있지 왜 밖에 나와 걸치적거리느냐"고, 지하철을 타면 아직도 장애인을 두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습게도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은 가장 외로움을 잘 타는 노인들이라니 말입니다.

현성씨의 가장 큰 바람은 차별없는 세상입니다. 장애인이라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장애인들도 그저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희로애락을 지닌 사람으로 봐 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술도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어른이 되면 가족들로부터 독립을 해서 살고 싶고, 그러다 따뜻한 가정도 만들고 싶고 그런 소소한 일상에 대한 꿈과 기대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가족들에게 눈물과 상처와 고통만을 안겨주었던 현성씨는 늘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마음만을 키웠을 겁니다. 그래도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이며 누구보다 다부지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현성씨의 소원처럼 작은 공간이나마 마련해서 혼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은 소박한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좋은 세상이 조금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달그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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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워싱턴미수니 2011.07.16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농장이나 하면서 살까..그래서 둘째 녀석이 농장이라도 잘 운영하면..하는 계획을 품어본적이 있지요. 하지만 사람만나 부대끼면서 사는게 낫지 싶어서 지가 원하지 않는한 그런 계획은 하지 않기로 했지요.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현성씨같은 멀쩡한 장애우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기반이 제공되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저 정도면 미국에서는 못할 일이 없을텐데...

    • 달그리메 2011.07.16 15: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순님!!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섭니다^^

      미순님이 쓰신 댓글 중에 "현성씨같는 멀쩡한 장애우"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 정도의 장애는 아무렇지도 않는 사회
      미국은 그런 모양이네요.
      세상이 아주 빨리~아주 많이~ 바뀌었지만 바뀌고 있지만
      천천히 더디게 변하는 것도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