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에는 유난히 비가 잦습니다. 사이에 태풍도 한 번씩 다녀가고 그럽니다. 한 철 벌어 일 년을 먹고 산다는 피서지 상인들 마음은 무겁겠지만, 덕분에 마을 앞 개천에는 맑은 물이 여름 내내 흐르고 무더웠던 작년에 비하면 견딜만해서 좋습니다.
어제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한 번 모이자구요. 섬진강변 어느 목 좋은 골짜기에 별장을 지어놓고 해마다 여름이면 지인들을 불러 모아 먹고 마시고 즐기기를 낙으로 삼는 친구입니다.
그러니까 재작년 여름에 그 별장에 다녀왔습니다. 정말 좋더군요. 별장은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언덕배기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집 앞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그대로 떠 마셔도 될 만큼 맑고 깨끗했습니다.
함께 간 친구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거의 죽음이었습니다. 부러움의 탄성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습니다. 너도 나도 이런 별장 하나 마련해 노후를 즐기면서 사는 것이 최고의 보람이 아니겠냐는 이야기들을 쏟아냈습니다. 초대한 친구는 초대받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보람을 제대로 누리는듯 했습니다.
마당 한 켠으로는 몇 그루 나무가 적당하게 자라 그늘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 앉아서 고기를 굽고 술판이 벌어졌습니다. 감탄사가 조금 누그러지자 자연스럽게 돈으로 화제가 넘어갔습니다. 모두의 관심사는 역시 돈입니다. 별장이 싯가로 얼마 정도 되겠냐며 제각각 어림잡아 가격을 불러봤지만 저는 짐작도 잘 못하겠더라구요.
별장 주인 친구는 무슨 영웅담처럼 별장 장만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습니다. 십 몇 년 전에 몇 푼 안 주고 우연한 기회에 사게 되었는데 슬금슬금 오르더니만 지금은 아예 부르는 게 값이라고 그럽니다. 좀 뻥을 튀겨서 말을 하자면 백지 수표를 내밀어야 할 정도라나요.~완전 쩝쩝입니다!!~ 돈 있는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해도 이렇게 물 좋고 경치좋은 땅은 없어서 못 산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풀어놓는 별장 친구의 표정은 뿌듯함으로 가득했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들의 얼굴에는 부러움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 자리에서 제가 눈치코치없이 툭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나는 이런 거 별로더라. 관리해야 하고 번거롭잖아. 같은 풍경을 매일 쳐다보면 감흥도 없어지고"
"야 솔직히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라 무슨 그런 개뿔같은 소리를, 나는 맨날 쓸고 닦고 해도 이런 거 하나 있으면 원이 없겠다." "아둥바둥 사느니 차라리 너처럼 마음을 비우는 게 최고지" ... 등등 그날 제가 다른 친구들한테 가식적이니 뭐니 하면서 좀 거시기한 소리를 한 바가지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게 가식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겠지만 그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진심입니다. 저는 한 곳에 머무르는 게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이러저리 바람처럼 물처럼 돌아다니거나 흐르거나 그런 자유로움이 좋습니다.
흐르거나 돌아다니거나 하기 위해서는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짐이 무거우면 한 곳에 내려놓고 머물러야 하니까요. 그러다보면 몸과 마음이 자꾸 거기에 매이게 됩니다. 이왕 나선 걸음 제가 생뚱맞은 이야기를 더 보탰습니다. 터 좋은 곳에 집을 마련하기 보다는 경치 좋은 곳에 사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 되지 않겠냐고요. 하하^^
요즘은 어디를 가도 시설 좋은 펜션이 지천으로 늘려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펜션 천국입니다. 며칠동안 내 집처럼 편하게 쉬다 올 수 있구요. 해마다 같은 장소에 가서 붙박이처럼 매이느니 이러저리 온 천지를 다니면서 보고 듣고 그러면 즐겁고 새롭기 그지없습니다.
어제 걸려온 전화는 자기네 별장에서 올해도 모이자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지만 또 가장 만만한 핑계거리인 시간을 이유로 거절을 했습니다. 바빠서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구요. 사실 별 하는 일없이 빈둥거리지만요. 다행히 그 친구는 제가 블로그를 하는 줄 모릅니당~~^^
섬진강변이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아름답긴 했지만 올해 또 찾아가서 같은 곳에서 같은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대신에 마음을 내어 가보지 못했거나 다시 찾고 싶은 곳을 가 볼 생각입니다. 내가 빠진 자리에서 친구들은 또 목좋은 별장을 하염없이 부러워하거나 그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 하거나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도나도 풍치 좋은 곳에다 터를 잡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자연을 즐기는 것에 더해 그런 곳에 내 것이 있다는 만족감을 누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많이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자연을 즐기는 사소한 호사조차 이제는 가진 사람들의 몫입니다. 그런 욕심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갈수록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은 점점 더 커지겠지요.
그런데 사람 사는 일이라는 게 그런 것 같습니다.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요. 많이 가져서 뿌듯하겠지만 거꾸로 가지지 않아서 가볍다는 것을 깨닫느냐 마느냐~ 만약 그런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세상이 좀 더 편하게 살아질 수도 있겠다 싶은데 말입니다. 제가 무슨 도를 닦은 도인은 아니지만 소유하지 않는 삶이 때로는 훨씬 더 가벼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런 별장 하나 있으면 좋겠다 그러실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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