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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부산지하철 노조와 장애인의 아름다운 동행

by 달그리메 2011. 7. 3.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죽음을 인식하게 되는 게 인간이라는 말을 얼마 전 읽은 책에서 봤습니다. 그처럼 모든 사람들은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람들과 장애인의 경계가 참 뚜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나 예비 혹은, 잠재적인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없는 사회는 결국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지난주 부산 지하철 노조에서 마련한 장애인 이동권 체험 행사에 동행하면서 건강한 사람들이 장애인을 위해 해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체험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반쪽 체험이나마 몸이 불편한 분들과 함께 그 분들의 이동권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은 나름 보람이 있었습니다.
세 팀으로 나누어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이용하는 시설의 불편한 점과 돌발 상황에 대해서 파악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현성씨가 망설임없이 길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서 세상 밖으로 나와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뭔가 제대로 해야지 싶은 마음으로 나섰지만 막상 역 입구에 들어서니 어떻게 해야 할지 좀 어리둥절했습니다. 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동행했던 현성씨는 아주 능수능란하게 길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하고 함께 했던 현성씨는 선천성 척수장애로 하반신 마비 장애가 있지만 전동차나 훨체어 대신 목발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현성씨 꽁무니를 따라가면서 현성씨가 참 씩씩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가장 큰 장애는 몸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마음 자세가 더 많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현성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는 외진 곳에 있었습니다. 길이 익숙하지 않은 장애인들이 지하철 안으로 들어서면 편하게 엘리베이터를 찾아갈 수 있도록 잘 보이는 위치에다 안내 표시판을 설치하는 게 필요했습니다. 

리프트를 이용해서 휠체어나 전동차를 이동할 때 버턴을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함께 탔던 뇌병변 1급 장애가 있는 참배움터 교장 선생님은 그 버턴을 제대로 누르지 못했습니다. 리프트가 엘리베이터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지만 옆에서 누군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리프트 버턴을 참배움터 교장선생님이 누르지 못해 대신에 거다란님이 눌러야 했습니다.


계단 옆으로 나 있는 경사로가 가파르게 되어 있어서 휠체어를 타고 오르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도 문제였습니다. 특히 부산시청 입구 경사로는 건강한 사람이 걸어도 힘이 들만큼 경사가 심했습니다. 현성씨는 이 길로 휠체어를 몰고 올라갔다가는 완전 죽음이라고 표현을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이 곳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같지 않은 예전에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참 세상이 좋아졌다는 거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이니 어떤 방법으로든 손질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엘리베이터나 리프트 같은 이동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환승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야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새로 만든 곳은 대부분 비교적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날은 특별한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간혹 승객들과 불편한 마찰도 생긴다고 했지만 그런 일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말 그대로 돌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꼼꼼한 점검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경사진 길을 현성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고 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는 잘못된 부분을 제대로 짚어서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이동하는 데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동행해보니 이런 자리를 마련한 부산 지하철 노조에 대해서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생겨났습니다.

부산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살고 있는 창원의 경우를 떠올려봤습니다. 물론 지하철은 없지만 장애인을 위한 저상 버스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자가용이 없어서 늘 버스로 움직이다보니 종종 저상 버스를 타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단 한 번도 저상 버스에 장애인이 타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제가 열을 받아서 블로그에 올릴까 하다가 만 저상 버스 경험담도 있습니다. 장애인이 타는 저상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 아저씨가 하도 거칠게 운전을 하는 바람에 건강한 사람들도 몇 번씩이나 뒤집힐 뻔했습니다. 나중에는 뒤에 앉은 승객들이 정차만 해도 깜짝깜짝 놀랄 지경이었으니까요. 만약 몸이 불편한 사람이 탔다고 가정을 해보면 참 끔찍합니다.

저상 버스를 만들어놓고 이용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라 그런 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인이 저상 버스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살펴볼 생각 같은 것은 아예 없는 거지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창원의 저상 버스는 몸이 불편한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입니다.

그런데 부산지하철 노조에서는 노조원들이 나서서 장애인들이 좀 더 편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 왔다고 합니다. 장애인 이동권 체험 행사도 그런 노력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개선된 점이 많다는 것을 장애인 분들도 인정을 하더라구요.


부산지하철 노조 하면 몇 년 전에 지하철 운행을 중단하면서 파업을 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여론 때문인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만, 그때 많은 사람들은 노조의 행동이 과격하다며 비난을 했습니다. 시민들의 발을 담보로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고들 했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은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바이블입니다. 그 책에서 보면 기업주의 횡포를 견제하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찾기 위해서 노조의 필요성이 아주 절실하게 나옵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노조는 절대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세력이 커지면서 자신의 권익을 지나치게 주장한다거나 비대해진 노조의 힘이 권력화되거나 양분되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불신을 심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회적인 약자를 위해서 노조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부산지하철 노조가 장애인과 연대해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하나하나 시정해 나가는 모습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날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를 했습니다. 함께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무척 편하고 즐거웠습니다. 술자리를 파하고 밖으로 나가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분들도 어울려 술을 마시고 즐기는 일을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남원철 부산지하철 노조 교육부장님은 마지막까지 남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챙겨주고 보살펴주었습니다. 장애인을 대하는 남원철 교육부장님의 진정 어린 모습에서 그냥 형식적인 행사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조직의 힘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쓴다면 못할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지하철 노조와 장애인들의 연대로 부산을 어느 지역보다 장애인들이 움직이기에 편한 곳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금도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산지하철 노조와 장애인의 동행이 더없이 아름다워보였습니다.

그날 함께 시간을 보냈던 현성씨와 다른 분들과 나누었던 몸이 불편한 분들이 털어놓은 사랑과 삶 이야기는 형식에 매이지 않고 편하게 써보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말고 나중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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