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을, 진해에 이어 총선 후보 블로거 간담회 세 번째는 창원 갑입니다. 야권단일후보를 내겠다면서 무소속을 포함해서 무려 아홉 명의 후보가 경선을 하는 진해와는 달리 창원 갑에서는 두 명의 후보가 경선을 하게 됩니다.
후보 수에서도 그랬지만 예전 공화국 시절 국회의원 선거 장면을 연상케 했던 진해 간담회와는 분위기가 180도 달랐습니다. 간담회를 끝내고 나서 기록을 담당했던 기자분이 간담회 분위기가 정말 편하고 좋았다고 평을 할 정도였습니다. 저도 간담회를 끝내고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창원 갑에서 경선을 하게 될 민주통합당 김갑수 후보와 통합진보당 문성현 후보, 두 사람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동안 민노당 대표는 물론이고 공단 지역인 창원에서 노동 운동을 해온 지명도가 높은 문성현 후보에 비해 김갑수 후보는 유권자들에게는 낯선 정치 신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왼쪽이 김갑수 후보, 오른쪽이 문성현 후보입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상식적으로는 게임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게임을 동화에서는 거북이의 극적인 역전승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화는 어디까지나 동화이고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잘 달리는 토끼가 지거나, 반대로 거북이가 이길 수도 있는 것은 동화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현실 속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과 기대를 해봤습니다. 그런 생각의 배경에는 블로거 간담회에서 보여준 김갑수 후보의 기대 이상의 선전이 한 몫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고질병 중 하나가 학연, 지연, 혈연입니다. 이런 것들은 사회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치지만, 학연, 지연, 혈연을 가장 극적으로 이용하는 곳이 바로 정치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의 영구 집권욕으로 만들어진 영호남 갈등구도는 노무현 이후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 뿌리는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불고 있는 일명 '닥치고 연대' 바람 역시 영호남 갈등에 맥을 두고 있습니다. 호남지역에서 새누리당 자리를 만드는 일이나 영남 지역에서 민주통합당이 자리를 확보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야권 연대와 새누리당의 1:1 대결 입니다.
1:1 대결 구도의 선거는 영호남 지역색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자구책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후보나 유권자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후보의 입장에서 보자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경선에서 당선한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정치색이나 능력을 제대로 알릴 기회조차 박탈을 당하고 결국 힘이 센 후보가 기득권을 가지는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이나 개인과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새로운 갈등을 낳기도 하는데 창원 을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런 것 같습니다.
뿐만아니라 유권자들에게도 좋은 제도가 아니긴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아니어도 이것 아니면 저것 이런 식의 양자 택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구도는 극단적인 편가르기가 되거나 정치 무관심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야권단일화 후보 경선이라는 민주적인 형식을 빌린 비민주적인 제도를 만들게 된 궁극적인 책임에서 유권자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연에 매여 막대기만 꽂아도 영남에서는 새누리당이 되고 호남에서는 민주통합당이 되게 만든 것은 결국 유권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창원 갑에서는 지명도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문성현 후보가 확실히 유리합니다. 선거는 것이 뚜껑을 열어 보아야 결과를 알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블로거 간담회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경기가 싱겁게 막을 내리지 않을까 지레짐작을 했지만 의외로 세련되고 참신한 김갑수 후보라는 복병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후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나서서 세상을 다 바꿀 기세들입니다. 당선만 시켜주면 이것도 해 주고 저것도 해 주고 그런 식입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대한민국은 벌써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나라가 되어 있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대한민국인 것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어린 딸과 세상의 모든 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서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김갑수 후보의 출마의 변은 그동안 국회의원 후보들이 내세우는 강한 자극들에 중독되어 있는 유권자들이 보자면 두루뭉실하고 다소는 감상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변입니다.
기존 국회의원 후보들에 비하면 김갑수 후보는 덜 정치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김갑수 후보에게서 신뢰와 호감이 느껴졌던 것은 잘못된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대한 해결책 역시 굳이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더라도 제대로 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공약이라는 것은 유권자들과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표를 얻기 위한 속임수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의 실천률이 지극히 낮다는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내세우는 공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후보들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과 방향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갑수 후보는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한마디를 날렸습니다. "호남에서는 민주통합당이 영남에서는 새누리당이 독점하는 것이 잘못된 기득권이라면서 창원에서는 당연하게 통합진보당이 돼야 한다는 것도 기득권을 누리겠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 1:1구도의 절박함을 부르짖으면서 창원은 당연히 자신들의 몫이라는 또다른 기득권 의식에 젖어있는 통합진보당의 한계를 지적하는 정확한 표현입니다.
어쨌든 세상은 변했고 지금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무겁고 어둡고 칙칙한 기존 정치의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가치와 사고를 가진 정치인이 더 많이 나와야 세상이 바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갑수 후보같은 신선한 정치 신인의 파이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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