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창원 메가박스에서 '부러진 화살' 영화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저 예산 영화라 따로 돈을 들여서 홍보를 하지 못하는 대신 이례적으로 전국을 돌며 시사회를 통해서 입소문 광고를 한다고 그럽니다.
100여 곳을 넘게 돌며 시사회를 하지만 그 중에서 특히 창원 시사회는 의미가 각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명호 교수와 더불어 영화의 주인공 박준 변호사로 나오는 박훈 변호사의 활동 무대가 창원이기 때문입니다.
'부러진 화살'이 과연 제2의 도가니가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상당히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결과는 일단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법조계에서는 개봉 전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계속 문제를 삼는 것도 그 쪽에서 보자면 썩 내키않을 것 같습니다. 일단 불을 질러놓으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불구경을 하러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고 그러면 대한민국 법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국민들에게 결국 불신감만 더 키울 수 있다는 계산을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나올지는 모를 일입니다.
만약 법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법보다는 도덕이나 양심이 더 상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법이 없어도 사회질서가 유지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처럼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의 삶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치국가에서 법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이 당연함에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이 영화는 아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밟고 주눅들게 만드는 사법부의 일그러진 권위에 김명호 교수는 정면으로 도전을 합니다. 그런 모습을 통해 좋은 싫든 이런 나라에서 살아내야하는 보통 사람들의 분노와 절망 위에 통쾌함 후련함을 얹어 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시사회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우연히 영화를 만든 정지영 감독과 합석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자신이 이 영화를 만든 의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저는 무척 인상적으로 들었습니다.
" 김명호 교수는 전형적인 보수 인물이다. 그런 김명호 교수는 법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노동변호사 박훈은 진보적인 인물이다. 그런 박훈은 대한민국 법은 썩었다고 말한다. 법은 원칙 그대로 지켜질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김명호 교수의 말은 옳다. 그리고 원칙이 없는 대한민국 법은 썩었다는 박훈 변호사의 말도 옳다.
나는 전혀 상반된 영화 속 두 인물의 조합을 통해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보수든 진보든 다 옳고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어느 한 쪽이 옳고 어느 한 쪽이 틀린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나는 진보와 보수가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은 대부분 옳고 그름을 떠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저는 '부러진 화살' 시사회를 다녀 온 이후에도 글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선거를 앞두고 불거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정지영 감독의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창원 을 경선 후보들과 블로거 간담회를 하고 블로거들이 진보정당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올리자 진보정당 쪽 사람들이 많은 반발을 했습니다. 한나라당의 경우와 진보정당의 경우를 어떻게 같이 볼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그들은 아마도 진보정당이기 때문에 그들의 무원칙까지도 무조건 이해해 줄 줄 알았나 봅니다.
그런 진보정당의 반응을 보면서 스스로 얼마나 큰 모순에 빠져 있는가를 새삼 느꼈습니다. 한나라당이 하는 잘못과 진보정당의 잘못을 지극히 이기적인 관점으로 규정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경을 쓴 분이 부러진 화살에서 박준 변호사로 나온 실제 인물입니다. 이번에 무소속으로 창원을 진보진영 경선에 나옵니다.사진은 후보들과 블로거 간담회를 마치고 찍었습니다.
"법령에 나온대로만 한다면 법은 더 없이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법은 썩게 된다." 참 가슴을 찌르는 말 입니다. 법이 원칙에서 벗어나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유동적으로 해석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법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보수를 배척하고 진보를 옹호하는 대중들은 그동안 보여주었던 보수의 무원칙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만약 보수가 원칙을 제대로 지켰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진보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기본적으로 그런 정서에 기인한 것입니다.
보수보다는 좀 더 원칙을 잘 지킬 것 같고, 그러면서 대중들의 편에 서서 대중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나 기대를 자기네들 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힘없는 서민과 노동자들을 위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정당간의 이해관계에 매여 있고 개개인의 감정이 얽혀 있습니다.
대중들이 그런 모습조차도 무조건 이해하고 응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그야말로 우스운 착각입니다. 한나라당은 안 되지만 진보정당이기 때문에 용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기존 보수세력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의식과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부러진 화살' 영화를 보고나서 감독의 그런 의도까지도 읽어낼 수 있는 관객들이 얼마나 될까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정지영 감독의 이야기를 직접 듣지 않았다면 썩은 사법부에 대해서 분노하고 절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러진 화살'은 지금 선거판에서 불물 가리지 못하는 진보 보수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한 번 돌아보고 성찰하게 하는 훌륭한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부러진 화살은 오는 19일 개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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