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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볐습니다

by 달그리메 2010. 12. 23.

지난 주말 글쓰기 수업에 오랫동안 다녔던 한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 있나 싶었지만 그러려니 했습니다. 함께 글쓰기를 하는 다른 아이가 "선생님 이제부터 00이 글쓰기 끊었어요." 불쑥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속으로 글쓰기가 재미가 없어서 그런가 그렇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글쓰기를 끊게 된 사연을 들어보니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평소에 공부를 아주 잘했던 그 아이가 머리에 염색을 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평소 1~2등을 했던 등수가 뒤로 밀려난 게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머리에 염색(컬러풀한 염색이 아니라 검은색 염색이라고 합니다)이나 하고 돌아다니니 이번 기말고사 등수가 밀려난 게 아니냐면서 엄마가 아이를 몰아부쳤다는 것입니다. 밀려난 등수에 대한 분노가 염색한 머리로 불똥이 튀게 된 거지요.

휴대폰도 뺏고 친구도 못 만나게 했답니다. 글쓰기는 성적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끊었겠지요. 그러면서 다시 등수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휴대폰을 돌려준다고 했답니다. 이야기 끝에 아이가 "남의 가정사에 이러쿵 저러쿵 끼여들 수도 없고 어른들이 참~" 그럽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는 중3학생입니다. 웃었지만 속으로는 어른이라는 게 좀 쪽팔렸습니다.

100점을 맞아서 엄마한테 막 자랑을 했더니 너그반에서 100점이 몇 명이냐고 해서 3명이라고 했더니 칭찬을 해주지도 않고 심드렁해하더라는 아이의 이야기도 생각이 납니다. 대한민국은 참말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입니다. 등수로 사람을 줄을 세우고 평가를 하고 그럽니다.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는 더 살기가 좋아지면 좋겠습니다.
 

어제 저녁에 도민일보 갱블 송년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몸이 불편한 친정 엄마 김장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석을 하지 못했습니다. 갱블 블로거를 대상으로 이번에 도민일보가 마련한 베스트 블로거 투표 이벤트에 제가 완전 초를 쳤습니다. 주최측에서 보면 웃자고 한 일에 제가 죽자고 덤빈 꼴이 되었습니다.  

그런 밑바탕에는 줄세우기로 인해 아이들이 얼마나 멍이 들고 있는지를 평소에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그런 탓도 있습니다. 그런 사회를 누가 만들었는가 생각해보면 다 어른들입니다.

갱블에 연결된 블로거들은 그래도 세상에 대해서 바른 소리도 할 줄 알고 깨어있는 사람들이라고 저는 여긴 거지요. 그러고 보니 평소에 잠재 되어있던 그런 저런 생각들이 초를 치는 방식으로 표현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등수에 매이는 것도 그렇지만 1등 2등 3등의 치열한 경쟁 이면에 깔린 정상적이지 못한 모습도 참 씁쓸했습니다. 표현을 하자면 패거리 문화지요.

학연 지연 혈연 등 온갖 인맥을 동원하는 선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얼마나 정치 후진국으로 살아가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말로는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실제로 그로 인해 온몸으로 고통을 당하고 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일을 하게 됩니다.

이번 베스트 블로거 후보 안에는 각자 다른 분야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주로 하는 교육 블로거가 열 명 중에 세 명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세 블로그에서 주로 다루는 것이 잘못된 교육이나 일그러진 어른들의 모습이나 비뚤어진 세상 이야기들 입니다.

그러면서도 만약 이번 일에 침묵했다면 아이들에게 진짜 부끄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도민일보의 의도를 모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죽자고 덤볐습니다. 고맙게도 김주완 국장님이 제 의견을 100%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공감을 해주시는 후보 블로거 분들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살아야 하는 다음 세상은 그래도 조건이나 배경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그런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심한 이성이 조금은 살아 움직여야한다는 게 제 생각이긴 합니다만.
내년에는 즐겁게 송년모임에 참석하겠습니다. 제 뜻을 너그럽게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신 도민일보에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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