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머리를 볼록하니 참 예쁘게 해서 글쓰기 수업에 짠 나타났습니다. 드라이로 손질이라도 한 모양이었습니다. 무심히 "야 헤어스타일 참 예쁜데" 그랬더니 그 여학생이 정말요? 하면서 무척이나 기분 좋아했습니다.
그러면서 " 이 머리 5만원 들여서 볼륨매직한 거예요" 그랬습니다. 물론 약에 따라 파마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3만원짜리 파마를 하는 저로서는 말 그대로 꼬불꼬불한 웨이브도 없이 약간의 볼륨만 느껴지는 파마를 5만원씩이나 주고 한다는 말에 좀 놀랐습니다. 그것도 학생이 말입니다.
머리를 예쁘게하고 온 여학생의 머리모양과 비슷한데 모델보다는 훨씬 더 차분했습니다. |
그렇게 머리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과 머리 이야기를 하면 끝도 한도 없습니다. 어른들이 볼 때는 머리카락이 뭐기에 저렇게도 신경을 쓸까 싶을 정도입니다. 지금은 창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예전 지명으로 마산에 있는 고등학교는 두발을 마음대로 하는 고등학교가 한 곳도 없습니다. 그런 까닭이 나름 있습니다.
몇 해 전에 공립 여고에서 처음으로 두발자율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학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입니다. 그런데 그해 신입생 모집에서 난리가 난 거지요. 말을 하자면 겉멋들고 한 가닥 한다는 학생들이 우루루 지원을 해버렸습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학교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놀란 학교장이 이러다 그동안 쌓아올린 명성에 금이 가겠다 싶어 이듬해 두발자율화를 없었던 걸로 해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마산은 두발자율화 이야기를 어느 학교도 먼저 꺼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이유는 간단합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학교 물이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지요. 머리를 예쁘게 하고 나타난 여학생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대답이 이랬습니다. "그러면 마산 학교들이 한꺼번에 하면 되지요"
아~ 물론 그런 이야기도 오고갔던 걸로 압니다. 근데 명문~ 말을 하자면 좋은 대학에 좀 많이 보내는 고등학교가 마산은 그래도 공립보다는 사립이 많습니다. 부모들은 또 그런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서 무척 안달을 합니다. 사립학교는 그것을 두고 학교의 명예라고 여기고 그런 거지요.
사립 교장들이 그럽니다. "누가 말리냐 두발자율화 하고 싶으면 너그들은 해라" 공립 교장선생님들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쩝쩝'일 수밖에 없습니다. 위험 부담을 떠안느니 차라리 안전빵으로 가자.
그런 것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기준이 객관적으로 옳다 그르다 하기는 좀 뭐하지만 공립 학교 선생님들은 사립학교 선생님에 비해서 학교나 학생에 대한 책임감이나 애살이 덜한 것도 사실입니다. 5년 동안의 근무 기간만 무사히 마치고 철새처럼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그만이니까요.
그런 저런 속내 때문에 지금의 마산지역 고등학교 학생들의 머리는 남학생은 군인같거나 여자들은 옛날 하이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단말머리나 커트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교복을 입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더니 짧게 깎은 머리와 한자로 적힌 이름표를 보고 재들 중국에서 왔나봐~라며 수근거리더라는 일화를 들려준 남학생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왜 아이들 머리카락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규제를 할까요? 제 생각에는 두 가지 이유인 것 같습니다.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공부나 해라. 그리고 또 하나는 머리가 단정해야 학생답다 이런 게 아닐런지요.
두발 이야기를 하다보니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일이 생각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전교 조회를 마치고 교무실로 불려간 적이 있습니다. 무슨 잘못을 한지도 모르고 얼떨결에 교무실에 갔더니 저 말고도 몇 명의 여학생이 모여 있었습니다.
사연인즉슨 율동선생님이 조회 때 빙 돌아다니며 머리핀으로 앞머리를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을 시키는 교칙을 어기고 몇가닥 애교머리를 앞으로 낸 여학생을 교무실로 죄다 불러들인 거지요. 몇가닥의 머리카락 때문에 한쪽 복도에서 한시간 동안 무릎꿇고 있다가 다시는 학생 신분에 어긋나는 그런 개폼은 지지 않겠노라는 그런 저런 내용의 반성문을 쓰고 풀려났습니다.
그 이야기는 30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아이들이 머리카락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변한 세상이 얼마된 말입니다. 세상이 다 변해도 아이들 머리는 변하면 안 된다는 것이 참 우습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머리를 예쁘게 한 여학생은 학교에서 반장입니다. 반장들끼리 모여서 선생님께 탄원서도 올리고 전교학생 회의에서 건의도 해보고 할만큼 애를 썼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선생님 한사람도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 준 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툭 던졌습니다. "선생님들은 진짜 중요한 것은 대충 대충 넘기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거는 것 같다구요. 그런데 선생님들은 그런 걸 알고 계실까요?"
머리카락을 두고 인권이니 뭐니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제는 식상합니다. 아이들의 개성이 어떻고도 그렇습니다. 덧붙이자면 귀밑 5cm 규정을 지키기 위해 미장원에 갖다 주는 돈도 적은 게 아니라고 하네요.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아직도 머리카락 모양이나 색깔에 매이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관과 비전을 이야기 할까 싶습니다. 여전히 3년 동안 죽은듯이 공부하면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겠지요. 머리카락 따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세상에는 많고도 많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멋있고 용기있는 교장선생님은 어디 안 계신가요? 아이들이 너무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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