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월이 금방입니다. 흐르는 세월을 두고 유수와 같다는 말도 하고 화살처럼 빠르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한 해가 눈 깜빡 할 사이에 지나가버리는 것 같습니다.
해마다 새해 첫 글쓰기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이런 글을 쓰게 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1년 동안 꼭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솔직히 아이들은 이런 글쓰기를 좀 지겨워합니다만, 저는 또 나름대로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에 아이들의 반응을 싹 무시를 합니다.
최고가 아니라 최선이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면 살만하겠지요 |
아이들의 목표가 똑 같습니다 |
신기하게도 이 주제에 대한 글의 내용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거의 비슷합니다. 대충 짐작을 하시겠지만 지난 해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후회가 된다. 그래서 올 해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꼭 성적을 올리겠다. 이런 거지요.
수학을 열심히 하겠다, 사회를 열심히 하겠다, 과학을 열심히 하겠다. 영어를 열심히 하겠다. 초등학생은 꼭 올백을 받아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다 이런 목표도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다는 과목은 다양하지만 결론은 다 공부입니다. 그런 생각은 공부를 잘 하는 아이나 못하는 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늘 공부에 대한 강박에 짓눌려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이들이지요.
아이들이 하는 공부 이야기는 새해 첫머리에 어른들이 금주 금연을 다짐해놓고 사흘도 못가서 흐지부지 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또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름 고개를 끄덕여가며 진지하게 들어줍니다.
쓴 글을 다 발표하고 나서 제가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느거들은 맨날 밥만 묵고 사냐? 피자도 묵고 자장면도 묵고 통닭도 묵고 안그러나 ? 아무리 배움이 중요한 학생이기로서니 어째 맨날 공부만 하고 사노?
그러니까 아이들이 그럽니다 "맨날 공부만 안하는데요~컴퓨터 게임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그러는데요" 완전 쩝쩝입니다.^^ 공부 그런 거 말고 올 한 해 동안은 방학을 이용해서 배낭여행을 해보고 싶다. 수영을 배워보겠다. 영화를 열 편 정도 보겠다. 뭐 이런 저런 거 하나 정도 목표를 세워서 실천하면 얼마나 근사하냐?
규제가 아이들을 무능하게 만듭니다 |
" 방학 때 부모님하고 자가용 타고 여행 갔다오는데요~
그리고 가족끼리 영화도 보러 가구요~"
" 야 부모님한테 얹혀서 하는 거 말고 혼자서 하는 거 말이다."
" 배낭여행하고 그런 거 다 외국 학생들이 하는 거 아니예요?
우리나라 아이들은 그런 거 못하잖아요" 또다시 쩝쩝입니다.^^
외국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을 우리 아이들은 왜 할 수 없을까요? 그것은 우리나라 아이들의 역량이 모자라서라기보다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오로지 공부만을 위한 규제가 아이들을 그렇게 무능하게 만든 측면이 많겠지요.
고등학교 두발자율화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더니 미국에 사는 블친께서 이런 댓글을 달았더라구요. " 미국 아이들은 고등학교 때 자유롭게 생활을 한다. 머리도 마음대로 하고 그러다보니 대학에 가서는 고무줄로 그냥 머리 질끈 묶고 슬리퍼 질질 끌고 도서관 다니면서 공부하더라. " 그래서 제가 밑에다 이런 답글을 달았습니다.
" 우리나라는 중고등학교 때 심하게 규제를 하다보니 대학에 가서 한풀이를 하듯이 외모를 가꾼다 그래서 거의 모델 수준이 된다. 세련된 대학생들 모습에 외국사람들이 놀란다더라. 그러면서 학생다워야 한다는 억압이 이런 결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다 사용하지 마세요 |
교육계에 오랫동안 몸을 담았던 어떤 분의 말이 참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70~80%의 능력만 쓰고 대학에 가야 남아있는 힘으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아이들은 중고등학교 때 거의 100%의 에너지를 공부에다 소진을 해버리고 대학을 간다"
곰곰히 생각해 볼수록 의미가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온갖 규제 속에서 100%의 에너지를 공부에다 사용하고 아이들이 대학을 갑니다. 그러면 딱 거기까지 입니다. 더 이상 발전이 없습니다. 똑똑했던 영재들은 규격화된 가치관으로 어느 새 삶에 대한 지향점이 비슷비슷해져 있습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잘 먹고 살 사는 것이지요.
다양한 경험 속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이 만들어집니다 |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이런 저런 경험을 해봐야 꿈도 목표도 생겨납니다. 학창시절의 규제가 삶의 다양성까지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얼마나 인식을 하고 있을까 싶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삼성맨이 되고 싶다는 중학생의 꿈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2~3만명을 뽑는 대기업 신입사원 모집에 몇 십만 명의 취업준비생들이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비처럼 모여들고 있습니다.
대기업 공기업 취업만이 행복이고 성공이라는 획일적인 가치관이 어디서부터 만들어졌을까요? 학창시절 70~80%의 에너지를 공부에 쏟고 나머지 에너지는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일에 쓸 수 있다면 지금의 이런 현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거지요.
역설적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이 지나치게 많은 사회는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사교육의 열풍이 인재양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잉 경쟁을 낳고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한다는 소모적인 측면에서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뻔한 대답이 나올지라도 내년 새해에도 한 해 해보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물어 볼 참입니다. 그러면서 공부말고 다른 한가지라도 목표를 세워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게 왜 중요한지도요. 씨알도 안먹혀들어가겠지만 말입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아이들과 한 해 목표에 관한 글쓰기를 하면서 느낀 점을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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