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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이야기

연합고사 부활에 관한 어느 중학생의 고백

by 달그리메 2011. 12. 16.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를 하면서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 보게 하는 것이 학교에 관한 것들 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 사정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면서 줄창 책 이야기를 하고 역사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다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합니다.

지금 경남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연합고사 부활입니다. 그럼에도 연합고사가 뭔지 아느냐고 물으면 그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연합고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생각을 풀어낼 수가 있습니다.

연합고사에 대해서 설명을 해도 감을 잡지 못하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고, 나름대로 시험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를 지적하기 이전에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해 주는 것이 맞다는 게 제 생각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적어낸 이런 저런 글 중에서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쓴 글을 읽으면서 정말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어른들이 좀 더 많이 반성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블로그에 올려서 함께 읽어도 좋겠다 싶어서 아이 글을 옮깁니다.

얼마 전에 기말고사 시험을 쳤다.
이번에도 시험을 망쳤다.
내가 혼자 가만히 생각을 해봤는데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시험을 잘 못쳤다. 
시험 성적이 나오면 엄마한테 또 혼이 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무섭다.  

내 꿈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다.
부모님은 언제나 좋은 대학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런데 좋은 대학에 가서 무엇을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부모님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신다. 
학원을 세군데나 다니는데 학원비가 비싸니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한다.
다 나를 위해서 그런다고 하신다.
그런데 솔직히 열심히 공부를 해도 성적이 잘 안 나온다.

그런데 오늘 연합고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쳐야 한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나니 걱정이 태산이다.
만약에 시험을 잘못쳐서 안 좋은 학교에 가게 되면 정말 쪽팔릴 것 같다.
우리 부모님도 나를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다.
숨기고 싶어도 교복을 입고 다니니 안좋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표가 날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걱정이 없겠지만 보통인 아이들은 나처럼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조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신다.
학교나 집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을 최고로 치는 것 같다.
지금 학교에서 치는 시험도 많은데 연합고사까지 치면 나는 죽음이다.
내 생각에는 무조건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어른들 생각도 잘못된 것 같다.
너도 나도 공부만 열심히 해서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면
세상은 잘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공부만 하라고 한다.
그래야 잘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드디어 연합고사까지 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시험을 쳐야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연합고사를 친다고 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진짜 바보다.
시험을 치면 열심히 공부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점점 더 공부말고는 다른 것은 할 수 없는 멍청한 아이들로 만든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나중에는 세상에 공부만 잘하는 사람들만 가득해서 다들 잘난척만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시험이 전부가 아니라고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어른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다음에 꼭 그렇게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이 글을 돌려 읽으면서 많은 아이들이 참 잘썼다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도 같은 생각인데 이렇게 쓰지 못했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어른들이 읽는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공부를 잘했다면 물론 지금보다는 훨씬 인정받고 대접받는 일을 하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삶을 후회하거나 실패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내가 만약 공부를 잘 했다면 아마도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식 하게 됩니다. 자기한테 쉬운 건 다른 사람들도 다 쉬울 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공부를 잘 못해서인지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은 아이들의 심정을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개 어른들은 그렇습니다. 자신이 공부를 잘 못했으면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하기를 바라고, 공부를 잘 했으면 잘 했기 때문에 자신만큼은 해주기를 바라고, 평범한 실력이었다면 아쉬워서 좀 더 잘해주기를 바라는 그런 심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영진 교육감이 연합고사를 고집하는 진짜 까닭을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한가지는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모든 사람들이 다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세상은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평범한 사람도 필요하고, 공부보다는 다른 다양한 능력이 공부를 잘하는 능력만큼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로지 공부만 성적만 능사라고 생각하는 교육감의 어리석은 마인드가 참 씁쓸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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