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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이야기

교육감이라는 자리 무소불위의 권력인가

by 달그리메 2011. 12. 19.

고영진 경남도교육감이 연합고사 부활을 선언하면서 시민단체는 물론 학부모들도 거세게 반대를 하고 나섰습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자 않자 드디어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면담을 통해 김두관 도지사에게 중재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진보 도지사와 보수 도교육감의 관계가 서로 독이 될지 득이 될지 자못 궁금했습니다. 성향이 같았다면 이번 일은 어떻게 결론이 나든 위쪽에서 보자면 일이 수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시민단체나 학부모들이 도지사에게 중재 요청을 할 생각조차 못했겠지요.

고영진 경남 도교육감은 지금 아예 다른 의견을 들어볼 마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도교육청 셔트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내가 곧 법이다며 눈막고 귀막고 연합고사 부활을 시행하기 위한 행정예고를 강행할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이런 상황에서 결정권을 쥐고 있는 교육감이 자존심을 세우며 밀고 나간다면 도지사가 개입을 한다고 해도 뽀족한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새삼 80년대로 돌아간듯한 장면이 지금 경남에서 그것도 교육판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교육판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합고사 부활을 반대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교육감이라는 직이 얼마만큼 대단한 자리이기에 경남도 교육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법을 혼자서 저렇게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역마다 제각각 환경적인 특성과 조건이 다르기에 교과부에서 일률적으로 지시하기보다는 교육감에게 재량을 주는 것은 융통성 있게 교육 정책을 펴기 위함입니다. 주어진 재량은 이번 연합고사 부활과 같이 교육감 성향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독재 권력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고영진 교육감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같은 것은 필요없다고 합니다. (사진-경남도민일보)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만큼 교육정책이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뒤집어지는 나라는 아마 세계에서도 보기가 드물 겁니다. 내신 비중을 높혔다가 수능 비중을 높혔다가, 절대평가를 했다가 상대평가를 했다가, 난이도를 높혔다가 낮추었다가 ,논술을 쳤다가 안쳤다가, 수학 비중을 높혔다가 영어 비중을 높혔다가 그런 형상입니다. 

 
그런 입시 정책에 국민 모두가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은 대한민국이 학력과 학벌 중심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수단이자 소위 말하는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바로 교육에 달려있습니다. 12년 동안 학부모와 아이들이 공부에 목숨을 거는 까닭도 그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보자면 입시는 교육 정책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시에서 두는 과목 비중에 따라 사교육 시장이 흔들리고 아이들이 해야 할 공부의 내용과 방향이 달라집니다. 대입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중학교 3학년들의 고등학교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고를 가야할지, 과고를 가야할지, 내신을 목표로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할지, 수능을 목표로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할지 수없이 계산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재고 따지고 신중하게 결정을 한다고 해도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한 예를 들자면 이런 경우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영어 영어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그 덕분에 외고가 상종가를 쳤고 여기저기 지방에 외고가 신설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책은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수시 비율을 높이면서 내신이 중요해졌습니다. 외고에는 그래도 좀 공부를 한다하는 아이들이 모이기 때문에 어지간히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내신관리를 제대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영어를 강조하다보니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이 많아져서 영어 변별력도 없어져버렸습니다. 상종가를 치던 외고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지방의 외고는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곳도 생겼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내놓은 영어 중심 교육 정책은 내신 위주의 수시 비율을 높이는 정책이 나오면서 외고에 진학했던 아이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결과가 되었고, 영어 사교육 시장만 공룡처럼 키운채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약발이 떨어져버렸습니다. 이런 예는 중심없는 우리나라 입시 정책에서 수도 없이 많은 경우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반대의 목소리가 고영진 교욱감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사진- 경남도민일보)

그런데 이번에는 또 내신을 절대평가하겠다고 합니다. 기존의 9등급을 6등급으로 조정하면 내신에 대한 변별력이 떨어져 고등학교의 서열화 현상이 일어날 게 뻔합니다. 비중이 높아진 수시는 내신으로 뽑는데 떨어진 내신 변별력 때문에 논술을 본고사 형식으로 치르거나 사립이나 유명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바뀌는 정책 하나로 또 얼마나 몸살을 앓아야 할까 걱정이 앞섭니다. 흔히들 교육을 두고 백년지대계라고들 합니다. 백년 앞을 내다보고 길을 만들어나가는 게 교육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몇 년 앞은 내다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이 달라집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입시 정책을 내놓았음에도 20~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오히려 중심없는 정책으로 갈수록 사교육 시장만 키워놓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만 강요하고 있습니다.

지금 경남 도교육감이 시행하려는 연합고사 부활은 중학교 3년은 물론 초등학교 학생들의 학교 생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입시 정책을 일개 도교육감의 재량에 맞기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경남 도교육감이 만약 교육감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수많은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연합고사 부활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경남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 정책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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