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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독일 맥주를 마시며 막걸리를 생각하다

by 달그리메 2013. 10. 19.

술은 잘 마시면 약이고 잘못마시면 독이 됩니다. 잘 마신다는 것은 적당하게 마신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좋은 술을 마시면이라면 뜻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그 말도 다 맞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술도 많이 마시면 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잘 빚은 술을 적당하게 마시면 그보다 좋은 약이 없다고 하지만 좋은 술일수록 술술 잘 넘어가기 때문에 결국은 술이 몸으로 들어가 약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술 맛을 모르면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있고, 무슨 맛으로 술을 마시는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맞다 틀리다 정답은 없겠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술이 없는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재미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술 때문에 웃고, 술 때문에 울고, 괴로워서 한 잔, 즐거워서 한 잔, 외로워서 한 잔, 서러워서 한 잔...삶과 늘 공존하면서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희노애락를 위무했던 것이 바로 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술은 다만 술이 아니었습니다. 막걸리 한사발이면 배가 든든했습니다. 술기운을 빌어 힘든 농삿일도 거뜬하게 해냈습니다. 끼니가 궁하던 시절에는 허기를 달래주는 밥이었고, 노동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에너지이고 벗이었습니다. 막걸리 한 사발에는 민초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있었습니다. 이처럼 술에는 이야기가 있고 인간의 삶과 더불어 온 역사가 함께 있습니다.

 

 

남해 블로거팸투어 일정을 통털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독일 맥주 축제였습니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색다르긴 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맥주 맛 그 자체 였습니다. 말하자면 주인공이 가장 빛나는 축제였습니다. 시원한 맛으로 마시는 맥주가 그렇게 구수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은 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막걸리와 맥주는 서로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근본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마을마다 그 지역에서 나는 곡물을 발효해서 만드는  점이 같습니다. 뿐만아니라 개인 양조장에서 만들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독일 전역에는 지금도 1300여개가 넘는 양조장에서 소량으로 생산하여 독자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시절이 변하면서 이제 사라지고 없지만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마을마다 양조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맥주와 막걸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통을 이어가는 것과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독자적으로 생산 판매가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보니 독일 사람들은 훌륭한 술을 만드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술 맛이 곧 자신의 자부심이고 브랜드나 마찬가지로 여기는 거지요. 그런 분위기에서 만들다보니 술의 질이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통 양조장이 사라진 우리나라 막걸리 맛은 어떤가요? 사이다를 섞은듯한 톡 쏘는 맛에다 먹기 편하게 아스파탐이라는 인공감미료를 적당하게 섞어 단 맛이 강한 생탁이 지금 소비되고 있는 대부분의 막걸리 맛입니다. 여성들이나 술에 약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가장 대중화시켜 놓은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술에 대한 철학, 자부심 같은 것은 다 빼고 오로지 소비자들의 혀 끝을 자극해 가장 많이 팔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거지요.

 

이들 두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소비자가 원하는 대중적인 맛이 아니겠냐고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대중들의 입 맛을 그런 식으로 마비시켜 놓은 게 아니냐고하도 합니다만, 술맛을 아는 애주가들은 누룩을 넣고 제대로 발효를 시킨 조금은 텁텁하지만 단맛이 덜한 그러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나는 예전의 그 막걸리 맛을 그리워합니다.

 

문제는 맛보다도 질에 있겠지요. 술맛을 좌우하는 것은 재료에 달려 있습니다. 막걸리를 만드는데 중요한 재료가 되는 누룩조차 우리 고유의 것이 아니라 일본식 누룩을 사용하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러고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이라고 하니 참 우스운 일입니다. 뿐만아니라 주원료인 곡물도 수입산 밀가루나 쌀이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음식 맛은 자고로 좋은 재료와 정성이라고 했는데 막걸리가 독일의 맥주 맛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다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 맥주의 뛰어난 맛은 다만 술의 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나 문화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놓은 술 잔이 식기도 전에 마시고 돌리는 우리와는 달리 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해서 미지근해지거나 김이 빠져도 그 맛이 변하지 않는 맥주를 두고 대화를 하고 사색을 하는 여유가 독일인의 삶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오랜 전통을 지키며 술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독일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500ml 한 잔에 5천원을 했는데 술 값이 비싸다고 하는 분도 계셨지만, 한 두 잔 즐기기에는 결코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양양에서 있었던 국제 슬로푸드 축제장에서 수제 전통 막걸리라며 500ml 한 병을 만 원을 주고 사먹어봤습니다. 가격만큼 술의 질이 뛰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돈이 아까웠습니다. 그에 비하면 질이나 양 다 만족스러웠습니다.

 

  진정한 애주가라면 남해 독일마을에서 매년 10월에 열리는 맥주축제에 들러 축제도 즐기고 제대로 된 맥주 맛을 보기를 꼭 강추합니다.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가는 길에 가천 다랭이 마을에서 유자를 넣어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 있는 남해 유자 막걸리도 한 번 비교를 해서 마셔봐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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