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가시고 또 다시 새 날이 밝았습니다. 눈이 뜨이자 말자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텔레비전을 켜는 일입니다. 어제 하루 일어난 일들을 무심하게 쳐다보는 습관이 최근 몇 일 사이에는 조금 달라져 있습니다. 밤새 상황이 얼마나 진전이 되었나 부터 확인하게 됩니다.
세월호가 물 속에 가라앉은지 어느새 9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실종자 수는 여전히 140명을 넘습니다. 그 9일 동안의 시간이 90년만큼이나 길었을 가족들의 참담한 심정을 헤아리면 텔레비전 화면을 들여다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일조차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절로 고개를 돌려질 때가 많습니다.
이번 사고를 보면서 저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선 하나는 그동안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참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 것입니다. 싸우고 찌지고 볶아도 부모 자식간에는 끈끈한 정이 있습니다. 그처럼 욕을 하고 비판을 해도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내고 짧은 시간 이만큼 성장한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참 살기좋은 나라다 그렇게 스스로 믿고 싶었던 구석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부심이나 믿음이 팩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 확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체를 깨닫게 되는 일은 어쩌면 평범한 일상에서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극한 상황이 되면 일상에 가려져서 잘 몰랐던 진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번 참극 앞에 드러난 대한민국의 모습은 부끄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못난 부모를 바라봐야 하는 자식의 심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성장 배경은 정의나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뒤틀린 욕망이 만들어낸 돌연변이 같은 괴물이었습니다. 새삼스럽게 뭘 또~~ 이 장면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시겠지요. 그러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국가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애정을 저버리지 못했던 무수한 국민들은 제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한민국의 실체는 끔찍했습니다. 먹이사슬처럼 잘 짜여진 구조 속에서 상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종들은 오로지 그들 자체로만 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디디고 지금의 자리에 서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무엇에 의해 지탱이 가능한지를 몰랐습니다. 더불어 공존하지 않으면 그들의 존재도 무가치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국가는 국가대로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정치인는 정치인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유기적인 연결고리가 없이 따로국밥처럼 오로지 그들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좀 더 높은 곳으로 기어오르기 위한 비열한 몸부림, 높은 위치를 누리고 있는 자들의 안이함 오만함이 있었을뿐입니다. 어디에도 하위에 위치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배려와 책임감이 없었습니다.
이 참담함 속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어이없이 죽어간 사람들과 어린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 전부가 아닐 것 입니다. 무능, 무책임한 권력에 대한 배신감, 국민을 지켜줄 국가나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뒤엉켜 있습니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우리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그게 GNP 2만달러 입성을 내세우며 선진국 타령을 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6월 4일 지방 선거를 앞두고 사고가 났습니다. 정치권은 다들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물 밑에서는 끊임없이 이 사고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계산하고 저울질 하고 있을 것 입니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상식 이하의 발언을 서슴치않거나 혹시나 잘못 건드렸다가 자신에게 불리해질까봐 숨 죽이고 있거나 그런 형국에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자질 이하의 발언을 한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의 막말은 압권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죽은 것은 운명이라고 합니다. 온 국민이 마치 제 자식을 잃은듯이 애끓는 마음으로 사고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데 어린 학생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두고 운명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과연 제 자식이 차가운 물 밑에 있어도 운명이라는 말 장난을 할 수 있을까요?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탐욕의 극치에 그저 말문이 막힐 따름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꼴을 두 눈으로 멀쩡하게 보고 듣고도 정작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저는 솔직히 이들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상식 이하의 사람들조차도 새누리당을 달고 나오면 아무 생각없이 꾹 눌러주는 국민들입니다. 새누리당만 달고 나오면 썩은 나무 꼬쟁이도 당선이 된다는 부끄러운 오명을 과연 누가 만들었나요. 이런 사람을 찍어주는 것도 어쩔수 없는 운명이라고 우긴다면 희망을 기대하는 것이 너무 터무니 없어 보입니다.
운명은 인간의 능력 밖에 있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고가 과연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었나요. 하나씩 뚜껑을 열 때마다 몸이 떨립니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사고가 난 후 대처하고 수습하는 과정도 마찬가집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하더라도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조차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운명을 바꾸는 것은 모두 우리의 몫입니다. 좀 더 정신을 차리고 최소한 인간같지 않은 사람들이 윗자리에 서서 군림하는 꼴을 보지 않을 정도의 힘은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목숨을 잃은 가여운 영혼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정치를 하고 계신 분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나요! 그리고 정치를 꿈꾸는 수많은 정치 후보자님들~ 당신이 꿈꾸는 정치에는 무슨 희망을 담고 있나요!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인간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정치를 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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