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10원짜리 동전을 보게 되면 요즘은 줍는 사람이 아마 드물 겁니다. 50원짜리는 물론이고 100원짜리도 마찬가집니다. 500원짜리 정도는 되어야 허리를 숙여 줍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정도겠지요.
그런데 500원도 채 못되는 330원 때문에 거리에서 낭패를 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살다보면 가끔은 머피의 법칙처럼 이어지는 일들이 계속 비비 꼬이기도 하고 그럴 때가 있는데 그제 저녁이 그런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월요일 저녁, 경남발전연구원에서 환경 다큐멘터리 '콩고'를 상영한 후 담당 PD와 간담회 시간도 함께 마련한다길래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조금 늦게 출발을 하기도 했지만 일이 그렇게 꼬일 줄은 몰랐습니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엄청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시간이라는 것을 미리 생각 못했던 거지요. 정우상가에서 목적지까지 환승을 해야 하는데 정우상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영화 시작 시각보다 50분가량이나 늦어져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영화 보기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맞은편으로 건너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 교통카드를 찍었더니 잔액이 부족하다고 그러더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를 못했지요.
버스에서 내려 교통카드를 충전하기 위해 근처 마트로 갔습니다. 충전을 부탁하고 계산대 앞에서 가방을 열어 지갑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적거려도 지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계산을 기다리는 다른 손님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구석으로 가 다시 찾았지만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충전을 하지 못한 채 마트에서 나와 사람들이 한산한 구석으로 갔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배낭을 다 뒤집어 엎어놓고 행여나 싶어서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찾아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어쩌지도 못하고 넋을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래서 사람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거리를 오고가는 무수한 사람들로부터 나혼자 스르르 분리가 되는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요...
그러면서 내가 사람들 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내 스스로가 선택한 주체적인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돈이라는 매개체가 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구나 하는 깨달음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정의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한 마디로 딱 잘라 말을 하자면 돈은 에너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차가 움직이려면 기름이 필요하듯이 사람이 움직이려면 돈이라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기름이 똑 떨어지고 나면 차도 사람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온갖 잘난 척은 다 하지만 동전 몇 개에 발목이 잡히기도 하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망연한 마음으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보니 동전이 손에 잡혔습니다. 우와~반가운 마음에 손바닥에 올려놓고 헤아리보니 500원짜리 1개 백원짜리 2개 오십원짜리 1개 십원짜리 2개로 총 770원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시내버스를 타려면 330원이 모자라는 돈이었습니다.
330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길거리에 서서 할 일없이 머리를 굴려봤습니다. 그 돈으로는 구멍가게에 들어가 과자 하나도 살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라면 하나 가격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더 비쌀 것 같았습니다. 그 돈으로는 도대체 뭔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문 틈이나 쇼파 밑이나 어디에서든 아무렇지도 않게 뒹굴던 동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러고보니 보잘 것 없다고 여겼던 동전 몇 개가 길거리에서 사람을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 만큼 대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늘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대단한 그 무엇이라고만 막연하게 믿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돈과 연관시켜 좀 더 나아가서 생각을 해보면 사람들은 꼭 자신이 지니고 있는 만큼의 크기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벌들은 재벌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서민은 서민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 봅니다. 노숙자들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요.
돈은 자신보다 더 높거나 낮은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바라보거나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으로 보자면 위대하면서도 멍청한 게 바로 돈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무슨 수를 내야겠는데 뽀족하게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근처 아는 사람 사무실로 문자를 날렸더니 벌써 퇴근을 했다 그러더군요. 330원에 친구를 부르자니 그깟 일로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방법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인데 차마 그 짓은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택시를 타고 집까지 갔습니다. 정우상가에서 내서까지 차비가 2만원이 들었습니다. 330원이 있었다면 날리지 않아도 될 돈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2만원의 수강료를 주고 얻은 게 작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 곳에나 쓸잘데기 없는 것처럼 뒹구는 동전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여겨진 적은 처음이었으니까요. 참~ 지갑은 집에 돌아와서 보니 책상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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