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네티즌들의 입김이 영화 흥행을 좌우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모로 기대를 모았던 '7광구'는 네티즌의 악평으로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반면 '최종병기 활'은
호평에 힘입어 흥행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두 영화 중에서 어느 것을 볼까 망설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영화평을 보고 결정을 했습니다.
'최종병기 활'의 성공은 잘 짜여진 시나리오나 활이라는 흔한 소재를 역발상으로 끌어낸 참신한 아이디어, 그밖의 이유가 더해져서겠지만 훌륭한 캐스팅도 흥행 성공의 한 몫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배역에 맞아떨어지는 박해일과 류승룡의 이미지로 인해 영화에 몰입하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글을 쓰면서 "최종병기 활, 나는 반전주의자다" 라고 글 제목을 정했습니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러쿵 저러쿵 평을 하는 것보다는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전쟁에 대한 평소의 감정을 한 번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유사 이래 끊임없이 일어났던 전쟁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피폐화시키는지 새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캐스팅이 잘 되었다는 평을 듣고 있는 최종병기 활 - 박해일의 모습 |
영화의 배경은 병자호란입니다. 전쟁은 그동안 많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쟁만큼 시공을 초월해서 인간의 삶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냐를 새삼 거론하는 것은 진부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인 배경에 따라 전쟁의 모습과 규모는 다양하게 변해왔지만 어떤 경우에도 반전의 이유는 너무나 분명한 것 같습니다.
흔히들 지구촌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야말로 세상은 이제 하나의 커다란 공동체입니다. 실시간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가보지 않아도 소식을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라디오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이나 SNS 같은 것은 더군다나 없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임금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어떤 위협을 받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던 사람들이 까닭도 모른채 당했을 그 속수무책 대책없음이라니...
더 없이 평온한 일상이었을 겁니다.1636년 청나라가 군사들을 이끌고 내려와 평온한 일상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그 날도. 어제 같은 오늘이 오늘 같은 무심한 평온이 내일 해가 뜨면 그렇게 계속되리라는 것에 의심을 품은 이가 없었을 겁니다.
아낙네는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리고 있었을 것이고, 저자거리에서 거나하게 낮술을 걸치는 사내도 있었을 것이고, 청운의 뜻을 품고 학문에 열중하고 있었을 선비, 설레는 마음으로 혼례식을 치르는 신랑신부들도 있었을 겁니다. 농부는 풍작을 기대하며 논밭을 갈았을 것이고, 아이들은 친구들과 동네 어귀에 모여 재기차기 술래잡기 따위를 하며 깔깔거리고 있었을 겁니다.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고 있는 백성들 모습 - 인질이 무려 50만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
영화 속에서는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았던 단순한 일상의 평화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장면으로 이야기의 전개가 시작됩니다.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가, 빨래터에서, 우물가에서, 혼례를 치르다, 술을 마시다, 장사를 하다, 길을 오가다 청나라 군사들이 던진 오랏줄에 목이 걸린채 짐승처럼 어디론가 끌려갑니다. 끌려가면서도 그이들은 아마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 줄 그렇게 알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끌려가는 이와 그것을 바라봐야 하는 이의 고통은 더하고 덜하고가 없습니다.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력조차 없습니다. 그저 속수무책 당하는 일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을 겁니다. 만약 이런 장면이 지금 이 순간 현실 속에서 일어난다면~ 그래서 내가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허망하게 어디론가 사라진다면 내 눈 앞에서 그런 장면이 펼쳐진다면... 어떨까요.
1636년 무능한 임금과 명분만을 쫓았던 사대부들이 권력을 휘두르던 그 시대를 살아낸 백성들은 아무 까닭도 모른채 그렇게 사라져가거나 끌려가거나 모진 고통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던 무고한 백성들이 무려 50만에 가까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시절 인구에 비긴하면 그 50만은 끔찍한 숫자입니다.
그럼에도 전쟁의 도화선을 만들었던 임금과 사대부들은 그들의 송환을 위해 아무런 논의도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이들의 삶은 살아도 죽어도 모두 인간이지 못했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이들은 무책임했습니다. 고통은 오롯이 백성들의 몫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그저 아득한 옛날 일이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광해군과 인조의 대명 대청 정책을 보면서 MB정권의 친미일변도의 외교정책을 떠올리기도 했을 겁니다. 어리석은 임금으로 인해 백성들이 고달픈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영화를 보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푸시킨의 시처럼 때로는 삶이 우리를 속이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아 평화를 유지하는 게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싸움은 옳지 못합니다. 나라와 나라 사회와 사회 개인과 개인 그 모든 관계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자칭 반전주의자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싸움조차도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보고 자라면서 그런 생각이 절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제 눈에는 매순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릴 넘치는 화면과 흥미진진한 스토리보다 전쟁이라는 화두가 훨씬 더 가슴에 크게 와 닿았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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