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하나의 약속을 봤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무덤덤하게 봤습니다. 얼마 전, 수상한 그녀를 보면서는 가벼움 속에 담겨져있는 반전- 나이 먹어감에 대한 비애랄까 세월의 무상함 뭐 그런 감정에 겨워 울컥 눈물이 났었는데... 겨울 왕국은 뻔한 내용임에도 화면 가득 담기는 장면들에 취해 유쾌한 마음으로 영화를 봤는데...또하나의 약속은 그냥 봤습니다.
감동과 비판을 동시에 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영화를 보는 이도 있었고, 영화가 시작하면서 부터 끝날 때까지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저는 이 무덤덤함의 정체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이미 그런 세상이지 않느냐는 체념이나 포기 같은 것이 마음 바탕에 많이 깔려 있는 탓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백혈병과 희귀병에 걸린 반도체 근로자들이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대기업을 상대로 투쟁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에서 진성으로 나오는 기업체가 삼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겁니다. 딸의 억울함을 풀기위해 생업을 접고 뛰어다니는 아버지와 가족의 모습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나지도 않았고 비판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과연 누가 무엇이 삼성을 대한민국의 가장 끔찍한 괴물로 만들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답은 돈입니다.
시험을 끝낸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 목표라는 말 대신에 희망 혹은 꿈을 넣어도 상관이 없다 싶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서른 명 가까운 친구들의 대부분은 "돈"이라고 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고 꿈이라고 했습니다. 돈을 벌면 못할 일이 없는 세상에 돈을 버는 것 이상의 꿈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꿈을 꾸는 학생들을 두고 왜 더 원대한 꿈을 가지지 못하느냐고 왜 가치있는 목표를 세우지 않는냐고 감히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모님이 선생님이 어른들이 있을까요? 저 역시 그 자리에서 적당하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돈이 인생의 전부가 된 세상이 되어버렸을까를 생각해보는 쪽으로방향을 틀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외국을 다녀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동경해 마지않은 유럽이나 일본, 미국 등에서 살고있는 교포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다고 합니다.
호텔급 모텔이 몇 미터만 걸어가면 즐비합니다. 비싸지 않은 택시비로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지천으로 늘려있는 게 대한민국이라고 했습니다. 좋은 차를 타고 명품 가방을 들고 메이커 옷을 차려입으면 그만큼 대접을 받는 곳입니다. 돈이면 못할 게 없는 세상이 되었고 돈이면 사람의 격이 달라지는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은 반대로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돈이 있으면 천국인 세상은 돈이 없으면 지옥이라는 뜻이기도 하구요.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렇습니다. 정치인들은 왜 삼성을 건드리지 못할까요? 법조인들은 왜 유전무죄를 무전유죄를 반복할까요? 언론인들은 왜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지 못할까요? 유명 연예인들은 왜 그들 앞에서 비굴하게 노래를 부르고 술을 따를까요? 다 돈 줄과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너무 뻔한 이야기인가요! 돈이 많이 필요한 사람일수록 돈에 대한 욕망이 강할수록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회사에서 안전 장비를 착용하지 말고 일하라고 시킨 적은 없다. 근로자들이 더 많은 성과급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일을 했을 뿐이다. 열심히 일한 근로자들도, 산재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직원들도,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지 못하는 또다른 근로자들도 다 돈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모두 다 돈에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한민국에 사는 불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삼성이 괴물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다 돈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돌아봤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인간입니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떤지 한 번쯤 돌아보고 성찰해보게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무덤덤한 모습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나 역시 영화속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이건희 배당금을 치면 4년 연속 1천억이 뜹니다. 1천억~~보통 사람들은 그 돈이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 것 조차 가늠하기도 불가능한 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살아도 못살아도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백년 안팎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요. 만약 돈을 가진 액수가 많은 만큼 더 오래 살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아수라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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