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남자' 영화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블로거들의 소감 글을 읽어보니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완성한 감독에 대한 칭찬과 격려 그리고 재정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조용한 남자는 서울에서도 만들기 힘들다는 독립영화를 지역, 그것도 문화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창원에서 어렵게 만든 아주 기특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선 칭찬을 보냅니다.

독립영화는 이번에 본 '조용한 남자'를 포함해서 4편을 봤습니다. 처음으로 본 것이 그 유명한 '워낭소리'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본 것이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다같이 성공을 했던 '똥파리'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독립영화 전용 극장이 있는 부산 서면까지 찾아갔더랬습니다.

그리고 창동문화예술소극장에서 비가 꿉꿉하게 내리던 날 곰팡이 냄새 맡아가며 보았던 '낮술' 입니다. 이 '낮술'은 제게 독립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한꺼번에 안겨준 영화였습니다. 몇 편 보지는 않았지만 이후로 저는 독립영화 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남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내심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어떤 영화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라고 이야기한 데는 나름 까닭이 있습니다.

조용한 남자 시나리오를 3년 전 아주 우연하게 읽을 기회가 있었거든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 시나리오를 집중해서 끝까지 읽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리...^^ 그런데 그 재미없던 시나리오가 영화로 완성이 되어 나온다는 이야기에 속으로 으~악 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더했습니다.

 

자신의 꿈을 영화에 담아 낸 김재한 감독이 작품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시사회에 앞서 김재한 감독이 '조용한 남자'는 획일화된 재미를 양산하는 막장 드라마식의 내용이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하면서 재미가 없어 중간에 나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엄살(?)을 심하게 떨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지방에서 만든 독립영화가 재미있으면 얼마나 있을라구 싶은 마음들이 뒤엉겨 시사회장에 나타난 사람들 중에는 재미없음을 견딜 마음의 준비를 하는 분들도 더러는 있었으리라 짐작을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그러면 결과는 완전 대박이었나? 그리 생각하실 분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답니다. 표현을 하자면 "어?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네~ 그럭저럭 볼만한데"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의 반응이 대체적으로 그랬습니다. 기대가 없었기에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긍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낮술'이라는 독립영화를 지금도 재미있게 기억하는 것은 배우들의 살아있는 캐릭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무명 배우지만 주연은 물론 조연 배우들의 캐릭터를 통해서 감독이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의도를 생생하게 집어넣었다는 점입니다.

낮술에는 아주 못생긴 여자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성격까지 아주 괴팍합니다. 남자들은 그런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시를 합니다. 여자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건 남자들의 외모에 대한 편견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표독스럽기까지 했던 표정 연기도 압권이었습니다.

팬션 주인 아저씨의 대사도 참 멋있었습니다. "날 버리고 떠나간 영자 미자 숙자야 잘사느냐~ 지나간 남자는 다 날려버리는 바람같은 여자들이여" 라고 했던 대사는 재미도 있었고 첫사랑에 집착하는 남자들의 속성을 적절하게 보여주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소설 속의 등장 인물은 작가의 의도에 의해서 나름 임무가 주어집니다.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조용한 남자는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조연 배우들에게는 제대로 배분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로지 주인공 상호를 통해서만 이 시대의 가난한 예술가의 고뇌를 표현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주연 배우는 스틸 사진에서도 느껴지겠지만 중앙 무대에 진출을 해도 부족하지 않을만큼 배우적인 매력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의 이미지 덕분에 영화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반면 주연 배우를 받쳐주는 조연 배우들은 그야말로 밋밋하고 평면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엑스트라들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런 표현이 있었지만 여자 조연들은 학예회를 하는 학생들 같기도 했습니다. 상호의 동거녀가 왜 그렇게 힘들게 견디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대사나 표정을 통해 제대로 전달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관객들이 참 불편해했던 것 같습니다.

남자 조연들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결같이 거친 이미지여서 (솔직히 조폭 같은 느낌이었음^^)감정을 제대로 담아내는 게 어려웠고 보기에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요즘 영화를 보면 주연보다 조연이 훨씬 더 빛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연은 좀 그럴싸하게 폼을 잰다면 재미는 조연들이 만들어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연은 막 빛이 나고 조연이 다 죽어 있다 보니 의미있는 영화를 재미있는 영화로 끌어올리는데는 실패를 한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무대에 연극을 올리고 난 후
허탈감에 빠져있는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연극이 끝난 후에'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나는 절묘한 표정이 압권입니다.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독립영화를 화장을 하지 않은 여자의 민낯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화장한 얼굴보다 민낯이 더 아름다운 여자를 요즘은 아주 높이 쳐줍니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은 아주 적나라합니다. 

대중영화는 자금을 동원해 최신 첨단 기술로 적당하게 가리고 숨겨서 관객들을 현혹시킬수 있지만 독립영화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나 연기의 기본기가 아주 탄탄해야 합니다. 

저예산 독립영화를 보러온 관객들이 왜 이렇게 음향상태가 나쁘냐, 세트는 또 왜 그리 후지냐, 그래서 영화가 재미없다 그렇게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만큼 독립영화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이해는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제작 환경이 열악해서 부족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미 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연들의 연기와 더불어 시나리오의 완성도 면에서 보자면 열악한 제작 환경과 상관없이 좀 아쉬웠습니다.

제 짧은 식견으로는 독립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앞뒤 좌우를 가리지 않는 쟝르의 다양성과 표현의 무제한성이라고 대충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기존 대중영화에서 다루지 않는 혹은 다루지 못하는 부분을 섬세하게 다루어주길 원합니다. 그래서 독립영화가 대중영화보다는 훨씬 더 어려운 것이겠지요. 

블로거들은 한결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이런 열정으로, 하면서 다들 두둔하는 분위기였습니다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예술 작품은 다만 작품으로 평가받으면 그만입니다.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런 조건까지도 포함을 해서 작품이 평가받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거지요.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배부르고 등 따시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꼭 그럴까 싶은 게 제 생각인데, 그 예로 '작은 연못'이라는 독립영화가 5억이라는 예산을 들여놓고도 입에 담기도 뭐 할만큼 조잡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훌륭한 예술 작품에서 우리가 감동을 받고 하는 것은 외롭고 고달픈 길을 걸어가는 예술가들의 순수한 영혼과 열정이 녹아 있는 것도 한 몫을 하는 게 아닐까요.

시사회가 끝나고 관계자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영화는 작품성보다 앞서는 게 홍보라구요. '워낭소리'가 대박을 칠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이 봤기 때문이라나요. 그러면서 워낭소리보다 더 뛰어난 독립영화들도 많다구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담당 프로듀서님이 영화인으로서 참 오만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들이 그리 만만하지 않지요. 워낭소리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속에서 떠나온 혹은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와 삶 속에서 만들어지는 일상적인 희로애락을 노부부의 모습을 통해서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대표적인 예로 박찬욱 감독의 '박쥐'라는 영화가 그랬습니다. 엄청난 물량 공세로 홍보를 해서 열흘만에 2백만이 들었지만 흥행은 딱 거기에서 멈췄습니다. 인터넷에 있는 별 갯수를 보고 극장을 찾았다가 헛방을 맞는 경우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영화의 뒷심은 홍보가 아니라 결국은 실력으로 판가름이 난다는 뜻입니다.

물론 블로거나 기자들을 불러서 시사회를 통해 널리 알리는 것도 아주 기본이 되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자나 블로거들이 좋게 글을 쓴다고 해도 결국은 영화의 질에서 승부가 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홍보 덕분이 아니라 작품성 때문이 아닐까요? 제가 느낀 점을 주저리 주저리 읊어봤습니다. 고군분투로 만들어 낸 독립영화 '조용한 남자'의 감독과 연기자 여러분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Posted by 달그리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김재한 2011.02.26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는 중간 중간 가슴이 뜨끔뜨끔 했습니다. 제가 만든 영화이지만 저 또한 달그리메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이렇게 흥미로운 글을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작품에 많은 힘이 될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언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 파비 2011.02.27 0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이 거의 예술이네요...
    저도 워낭소리 봤습니다만, 독립영화의 매력을 어쩌면 지루함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워낭소리도 만만찮은 지루한 영화였습니다. 봄날은 간다(는 독립영화는 아니고 상업영화지만) 역시 독립영화처럼 지루한 영화였습니다. 저는 사실 영화가 민낯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주읜데... 말하자면, 영상, 음향, 효과음악 등으로 화장을 충분히 해주는 게 좋다는 생각이죠. 민낯과 화장의 문제는 독립이냐 상업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연출자의 메시지 의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태양은 가득히가 아름다운 배경음악과 알랑 들롱의 무표정한 표정만으로도 매력적인 것처럼 적당한 화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죠. 그런 면에서 열악한 제작환경의 개선은 꼭 필요한 지점이겠죠. 하지만 저는 역시 지루함에 익숙하지 못한데,,, 그것이 제 감성의 문제인지 뭔지는 몰라도... 어제 술 많이 먹고 잤더니 새벽에 깨서 주저리주저리 댓글 길게 달고 갑니다. 끝. THE END.

    • 달그리메 2011.02.27 15: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파비님~
      화장 하지 않은 민낯이 고운 여자를 한번 만나보셔요.
      감동의 물결입니다.
      근데 문제는 그런 여자를 만난다는 게 쉽지가 않다는 거지요.

      예술이란 모름지기 그런 경지에 이르기 위한 고난과 번뇌의 시간이 아닐까 하는데요.
      망구 제 생각입니다만...^^

  3. 구자환 2011.02.27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 관심있게 잘 읽었습니다. 지역 영화쪽에 한 발가락 정도를 담고 있는 사람으로 염려하고 있던 부분을 깊이 있게 보셨네요.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달그리메 2011.02.27 15: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누구나 싶게 할 수 있는 게 예술이라면
      이미 예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가 질 수밖에 없겠지요.

      부족한 글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구자환님도 언젠가는 좋은 영화 만드셔야지요^^

  4. 거다란 2011.02.27 1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위에 말대로 포스팅 예술이네요 ^^ 전 처음 본 독립영화였습니다 일상의 재현을 흥미롭게 봤던 영화였습니다 "딱 쟈네"라던가 주인공이 연극 가르치는 장면은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5. 팔할바람 2011.03.12 0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