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사건을 보면서 딸이 아주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습니다. "엄마 이러다 정말 전쟁이 일어나는 거 아니야?" "글쎄..." 제가 그렇게 답을 했습니다. 심드렁한 답에 이어지는 말이 "엄마 정말 전쟁이 일어나면 어쩌지?" 그렇게 묻는 딸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한 눈에도 읽혀졌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딸의 표정 같은 건 개의치 않고 무심히 그렇게 답을 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상에 대한 관심도 걱정도 많은 딸이 방방 뛰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하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느냐는 거지요.
북한은 연평도를 공격했는데 창원에 있는 주남저주지 철새 축제가 축소되었습니다 (사진 경남 도민일보) |
"말을 하자면 전쟁이 일어나면 절대 안된다든지" "그래 어떡하냐 정말 걱정이구나" 딸은 아마도 그런 대답을 기대했나 봅니다. 딸에게는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전쟁에 대한 제 심드렁함은 그 뿌리가 깊습니다.
제 어릴적 기억 중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이 전쟁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학교에서 한달에 한 번 민방공훈련을 했습니다. 수업을 하다가도 싸이렌 소리가 울리면 하던 공부를 걷어치우고 운동장 한쪽에 만들어진 반공호 쪽으로 가서 비행기 소리가 멈춰질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미술 시간에는 주로 반공 포스터를 그렸고 국어 시간에는 반공 표어 짓기와 글짓기를 시도 때도 없이 했습니다. 그때 저도 상장 몇 개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주 그런 행사를 하다보니 너도 나도 그런 상장 안 받아본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학교에서 반공 교육을 워낙 투철하게 시키다 보니 전쟁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전쟁에 대한 공포는 무시로 생겨나 불안에 떨게 했습니다.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지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다니는 학교가 폭격을 당해 흙더미 속에서 피를 흘리는 상상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 상상이 꿈에서도 이어지곤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 어린 마음에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게 끝인데 공부를 해서 뭐하겠냐 싶기도 했으니까요. 학습에 의한 전쟁의 공포가 아이들 마음이나 정서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실감해 본 분들은 아마 이해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이후로 우려와는 달리 지금까지 다행히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반공 교육 덕분에 유비무환을 철저하게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면서 자연히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났습니다.
더 나아가 반공 교육의 허상까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반공을 얼마나 정치적으로 이용했는지를 알면서 느꼈던 감정은 배신감보다는 오히려 허탈감 쪽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남북 관계에서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긴장감을 고조시켜 정치에 이용하려드는 분위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 힘이 예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요.
그것은 그동안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급변하면서 많이 느슨해지고 이념에 대한 갈등으로 부터 많이 자유로워져 있는 까닭이기도 하고 전쟁으로 부터 멀어진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어제 낙사모 회원들과 사진 전시회를 하면서 회원 중의 한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이명박이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4대강 사업 때문에 나라가 어수선 할 때 꼭 이런 사건이 터져 주어서 관심을 분산시키고 사람들을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거든..." 4대강 사업과 연평도 사건이 무슨 관계가 있냐 싶었음에도 자연스럽게 그리 연관을 짓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편으로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늘 그런 식으로 남북문제를 연결지으려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 의외였습니다. 민간인들까지 희생이 되는 이런 험한 꼴을 보게 만든 것은 바로 현 정권 탓이고 이런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이 지금의 잘못된 대북 정책을 좀 더 잘 알게 되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나라가 시끄러운 틈을 타서 북한이 침략을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니까 정부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조용히 따라야 나라가 안정이 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릴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런 어이없는 이론이 아직도 많은 국민들에게 먹힐까 싶었습니다.
하루종일 방송을 내보내다 보니 어디를 가도 연평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왔습니다. 머리를 하러 미장원엘 갔더니 젊은 엄마가 텔레비젼 화면을 보면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00아 북한 알지?" "북한이 뭐야?" "북한은 나라 이름이야..."무슨 나라?" 아이가 그렇게 물으니 젊은 엄마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북한은 우리 나라를 공격하는 나쁜 나라지~ 북한은 우리 나라를 무력으로 공격하는 나쁜 나라~ 젊은 엄마가 어린 딸에게 북한은 우리나라를 공격한 나쁜 나라라고 한 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그게 옳다 틀리다를 이야기하기에는 좀 그렇긴합니다. 문제는 아직도 같은 민족을 두고 그렇게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누구의 탓인가 싶은 거지요.
"전쟁이 일어나면 어쩌지?" 라는 물음에 "일어나면 할 수 없는 거지 뭐~" 라고 대답을 하는 저나, 북한이 공격을 하면 국민들이 조용히 말을 잘 들을 거라고 믿는 분의 생각이나, 북한은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나쁜 나라라고 딸에게 설명을 하는 젊은 엄마의 대답이나, 대북 관계를 해결하는 입장에서 볼 때는 다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일 것입니다.
위에서 제대로 하지 못하니 밑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 중구난방 제각각입니다. 누구 탓을 돌리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다함께 머리를 싸매고 해결해야 할 큰 숙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매듭을 풀어야 할 가장 윗사람의 꽉 막힌 생각이 걱정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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