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보면 간혹 다시 한번 뒤돌아봐지게 되는 건물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치원 건물이 그렇습니다. 아름답기도 해서 그렇겠지만 다른 까닭이 있습니다. 언젠가 건물은 다만 형식이나 포장이 아니라 그 속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정신까지도 담아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을 감명깊게 읽은 이후로 건물의 형태나 함께 있는 조형물에 관심을 가지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흔히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생각한다고 그럽니다. 유치원 건물을 보면서 왜 이런 모양 일까? 꼭 이런 모양이어야 할까? 뭐 그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도 그 책의 영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들이 유치원 마당에 잘 배열이 되어 서 있습니다 |
우리 나라 유치원의 모습은 대개 동화속에 나오는 궁전이나 서양 건물을 닮아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유치원 마당에 서 있는 조형물들이나 창문에 붙어져 있는 그림이 더 재미가 있습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신데렐라, 인어 공주, 서양 아이들을 닮은 왕자 공주들이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게 많습니다. 물론 아닌 곳도 많습니다.
예전에 동화 공부를 할 때 주워들은 기억으로는 우리나라에 외국 동화가 처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 때라고 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들여온 것이지요.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때 공부한 내용을 다 까먹긴했는데, 역사를 왜곡하고 말과 글을 말살하려 들었던 일본 사람들이 우리 나라 아이들의 정서를 생각해서 들여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 공주 왕자 이야기를 글을 채 깨치기도 전에 엄마의 음성으로 부터 듣기 시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아이들은 왕이 아니라 대통령이 다스리는 나라에 살면서도 공주와 왕자에 아주 익숙합니다.
공주 왕자 동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일단 공주와 왕자는 예쁘고 멋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공주를 왕자가 구해서 행복하게 잘 산다는 공식이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을 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만나야 팔자가 펴인다는 식이지요.
원본은 어떤지 몰라도 번역을 해놓은 서양 동화의 구도가 이런 식으로 거의 비슷비슷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 지위와 능력을 가지는 현실에서 보자면 왕자와 공주는 적어도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은 인물형입니다.
그럼에도 신데렐라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 많이 나오고 또 그런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것은 어릴 적부터 잠재되어온 공주와 왕자 이야기의 사회적인 중독 현상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거지요.
이야기를 처음 끄집어냈던 주제로 돌아가서 보자면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건물이나 조형물이 좀 우리 것이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건물이 다만 형식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정신을 담고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리 세계화 시대에 살면서 세계가 하나라고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것을 지키는 것은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해서요.
서양 궁전같은 건물 속에서 서양 왕자 공주 조형물이 득시글 거리는 곳에서 우리말도 제대로 깨치지 못한 아이들이 조기교육이다 뭐다 해서 오늘도 ABCD를 열심히 외우고 있습니다. 그래야 세계 속에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 나무는 잎을 무성하게 피울 수가 없습니다. 유치원은 말을 하자면 아이들의 잎을 피우는 곳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게 해주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길을 지나가다 백설공주 조형물이 마당에 서 있는 유치원을 봤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안에서 몇 명의 선생님이 우루루 나와서 말렸습니다. 그러겠노라고 하면서 돌아서는데 웃음이 나왔습니다. 왜냐구요? 그 선생님들이 단체로 입고 있는 옷이 백설공주와 비슷한 차림이었기 때문에요.^^ 아무래도 우리나라 유치원에는 왕자와 공주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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