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입니다. 꽃은 지천으로 흐드러져 피고 지고, 사람들의 마음도 덩달아 달뜨는 계절입니다. 가수 안치환은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노래했지만, 무심코 흥얼거리면서도 인간이 꽃보다 아름다운지 어떤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사람이 사람에게로 가서 아름다운 꽃이 된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울지마 톤즈' 는 마흔여덟 해를 불꽃 같이 살다 처연하게 떨어진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다운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수단의 수바이처 이태석 신부님


아프리카 남수단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척박한 땅입니다. 그곳에서 태어난 죄로 남수단 사람들은 굶주림과 질병을 껴안은 채 천형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의대를 졸업한 전도유망했던 의사 이태석 신부와 지구 한쪽 끝에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톤즈 사람들과의 인연은 그야말로 운명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가진만큼 감사하며 살아가는 남수단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진정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던질 수 있었다고 이태석 신부는 고백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고귀한 삶 앞에 한없이 경건해지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서였습니다. 떠나고 없는 그의 환한 웃음이 봄날 햇살만큼이나 시려서 또 눈물이 났습니다.

다 나누어 주고도 더 나누어주지 못해 안타까워 했던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넘치도록 채우고도 더 많이 담지 못해 안달을 하는 인간의 욕망을 비루하게 느껴지도록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웃음을 잃은 톤즈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이태석 신부님

 

어떤 사람은 빵 한 조각이 절실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돈이 없어 길바닥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런 죽음 앞에서 무심합니다. 그런 사람들도, 그런 삶도 있으려니 합니다.

반면에 많은 것을 누리고도 누림에 감사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이 지금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과도한 경쟁이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며 잘못된 교육정책을 탓하기도 합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유명인사들이 나와서 학생들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두고 갑론을박하며 대책을 논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선망하는 그 좋은 대학을 가고도 그들이 행복하지 못한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이유가 고스란히 학교나 사회에만 있었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태석 신부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가진 만큼 감사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이 누리고 싶은 욕심의 끝에 이르는 길이 달콤하거나 평탄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겠지요. 

힘에 부치거나 버거우면 그 짐을 내려놓으면 그만입니다. 잘못 들어선 길이면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내려놓지도 돌아가지도 못한 학생들이 선택한 것이 죽음이었습니다.
카이스트를 자퇴한 한 학생은 인터넷에다 자신의 심정을 그렇게 올렸더군요. 짐을 내려 놓아서 행복하다고요. 후배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요. 짐을 내려놓기가 죽기보다 힘들었다면 그 욕심의 책임은 결국 자신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카이스트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재나 수재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낸 세금으로 특혜를 누리는 학생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는 인재양성이라는 명분으로 영재 수재들을 끌어모아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제도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라나 사회로 부터 누린 학생들이 그들의 능력을 과연 얼마만큼 사회에 환원할까요? 자신이나 가족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누린만큼 내 놓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고통을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누림을 개인의 영화에 고스란히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한센병을 앓는 톤즈 사람들에게 하느님 같았던 이태석 신부님

 

이태석 신부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살면서 가장 미안한 일이 학교를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받은 적이 없어서 비싼 의대 등록금을 혼자 몸으로 삯바느질을 하는 어니에게 고스란히 부담 지운 일이라구요.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가진 힘을 가난하고 어려운 이를 위해서 기꺼이 나누었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삶을 돌아보면서 지식인이나 엘리트들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울지마 톤즈가 미국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분 대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떠나고 없지만 그의 숭고한 실천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울러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의 힘이 더 적게 가진 사람들에게 쓰여질 수 있는 희망적인 세상을 기대해 봅니다. 

 

Posted by 달그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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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워싱터미수니 2011.04.23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다가 그냥 끝내버린 젊음들..
    가슴이 어쨌든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