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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곽재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떠올리다

by 달그리메 2014. 11. 6.

의령은 인구가 3만이 채 안 되는 작은 곳인데요. 이 곳에는 그냥 유명한 인물이 아니라 아주 유명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것으로 유명하지요. 호암 이병철, 벽산 안희제, 망우당 곽재우는 의령이 배출한 3대 인물입니다. 경남이 배출한 인물이라고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면면이 아주 짱짱합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가장 중심에 놓고 이야기 할 인물은 망우당 곽재우 입니다. 곽재우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장군으로 유명한데요, 태어난 곳이 의령이고 마지막 죽은 곳도 의령입니다. 마지막 여생을 보낸 망우정이 지금은 창녕으로 되어있지만 창녕이나 의령의 경계가 그 당시에는 지금과는 좀 달랐다고 하니 의령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망우당 곽재우는 선조로부터 2등 공신으로 책봉를 받았습니다. 일등 공신 안에 원균이 들어있다니 좀 놀랍지요. 원균의 평가에 대해서 잘못 알려진 바가 있긴해도 곽재우가 원균보다 못한 책봉을 받았다고 하니 좀 의외이긴 하네요. 이순신이나 원균은 이미 죽고 없었지만 살아있는 곽재우는 경계의 대상이 되어서 일까요? 어쨌던 속좁은 선조의 속내를 알 수는 없습니다만요. 

 

망우당 곽재우는 홍의 장군으로 유명하지요. 의령 입구에 들어서면 정암진 근처에 붉은 색 옷을 입고 서 있는 동상이 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홍의 장군 곽재우입니다. 근데 그 동상을 볼 때마다 어째 기분이 좀 으스스합니다. 전쟁을 통해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은 평화인데 그 조형물은 평화의 상징이 아니라 공격적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느낌마져 들거든요. 아마도 붉은색과 높이 치든 칼의 이미지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정암진 나루를 건너는 철교입니다

 

곽재우는 요즘 말로 하자면 아주 잘나가는 가문의 자제였다고 합니다. 선대가 평양감사 어디 목사 까지 지냈다고 하니 지금으로 보자면 도지사급에 견줄 수 있는 그런 집안이라고 합니다. 의령군청 공무원이면서 의령을 가장 잘 알고 의령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윤재환씨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독립운동이니 뭐니 사회를 위해서 나서는 것도 없는 집 사람들은 하기가 어렵다구요.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더니 우선 배우지 않으면 뭐가 뭔지를 몰라서도 움직일 수가 없고, 또 없는 사람들은 하루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어 그런 마음을 먹는 것이나 행동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라도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지요. 사회가 뭔지 국가가 뭔지 그런 것들이 나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아야 면장을 하니까요.

 

뿐만아니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에게 한 끼 배불리 먹는 것보다 더 큰 의미나 가치있는 것이 없지요. 그런 사람들한테는 나라니 애국이니 하는 것들이 다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구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망우당 곽재우의 의병 활동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요. 근데 꼭 그렇게 만은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있는 사람이 더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흔 아홉칸 가진 부자가 백 칸 채우려고 한 칸 가진 사람 거 뺏는다는 이야기도 있구요. 있어야 나서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 됨됨이가 더 중요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곽재우는 어려서부터 아주 남다른 면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말하면 위윈전에서 흔하게 보듯이 어릴 때부터 싹수가 달랐다 뭐 그런 이야기인 것 같긴 하지만요.

 

곽재우 생가 앞에 있는 500년된 은행나무 입니다.

 

곽재우는 열 여섯에 남명 조식 선생의 외손녀와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식 선생의 눈에 들었을까요? 앞에서 곽재우 집안이 아주 특별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인맥이 아주 빵빵했던 모양입니다. 어른들 끼리 이리저리 촌수가 얽혀서 유명한 퇴계 이황과는 친인척의 관계였고 이황과 친분이 있었던 남명 조식과도 연결이 되어 그 밑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5살 곽재우가 조식 선생 밑에서 공부를 하던 어느날, 조식 선생이 제자들에게 소태국을 끓여서 돌렸다고 합니다. 소태는 소의 쓸개처럼 쓰다고 해서 붙여진 나무 이름입니다. 그런데 소태국을 마신 사람들이 토하고 뱉어내고 하는데 곽재우만큼은 소태국을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묵묵히 마시는지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식 선생이 곽재우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어째 너는 소태국이 쓰지 않느냐 다른 사람들은 다 먹지 못하는데 너는 어찌하여 그것을 남기지 않고 마시느냐" 했더니 어린 곽재우의 답이" 원래 쓴 것이 몸에 약이 된다고 했습니다. 몸에 들어가면 다 약이되는 것을 입에 쓰다고 버릴 까닭이 무엇이겠사옵니까" 그 날 이후 조식 선생 눈에 점을 찍히게 된거지요. 곽재우의 비범함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겠지요. 낭중지추라고 그의 영특함이 그렇게 드러난 것이겠지만요.

 

그리하여 곽재우는 열 여섯에 조식 선생의 외손녀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식 선생이 뜬금없이 소태국은 왜 돌렸을까요? 이 것을 두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곽재우가 조식 선생의 눈에 들기 위해 소태국을 다 들어마셨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평소 눈여겨 봐 왔던 곽재우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 조식 선생이 일부러 소태국을 돌렸다는 우스개 이야기도 나왔는데, 이러든 저러든 그 일은 조식 선생과 곽재우가 가족의 인연을 맺게 되는데 일조를 하는 건 분명한 모양입니다.

 

조선의 3대 학자하면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 그리고 남명 조식 선생을 꼽습니다. 이 세 분은 제각각 추구하는 성향이 조금씩 달랐지요. 이이 선생은 이론과 실천을 적당하게 섞은 것을, 이황 선생은 이론의 중요함을, 그리고 조식 선생은 실천을 더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곽재우는 조식 선생 아래에서 실천의 중요함을 아주 뿌리깊게 공부를 하게 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킬 수 있는 바탕이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셈입니다.

 

의병활동을 하면서 곽재우는 그야말로 집안 재산을 홀딱 말아먹게 됩니다. 외가든 본가든 자신이 끌어올 수 있는 돈은 다 끌어모읍니다. 그 돈을 의병을 모우는데 쓰기도 했는데 방법도 참 재미있습니다. 노비나 가난한 백성들을 의병으로 모으면서 가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굶어죽어나 맞아죽어나 죽는 건 매한가진데 그래도 식구들 배불리 먹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으로서 마음이 훨씬 더 좋았겠지요. 이런 방법으로 수많은 의병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곽재우가 북을 매달아 의병을 모았다고 전하는 헌고수는 6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단풍이 곱습니다

 

망우당 곽재우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너무 없으면 사회와 국가나 남을 위해 나설 수도 없다고 했는데, 지금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많아도 나서지 않는 건 매한지가 아닌가 싶은 거지요. 

 

지금에야 전시도 아니고 일제 강점기도 아니고 하니 의병활동을 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거니 그런 것에 비길 수는 없겠지만 가진 사람들이 온갖 불법과 편법을 써가며 돈을 끌어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을 한 곽재우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진 자의 사회 환원 뭐 그런 뜻인데요, 많이 가진 사람이 사회에다 내 놓은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은 사회와 국가를 바탕으로 그 속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획득한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누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상을 해보면 답이 너무도 쉽게 나옵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혼자 삽니다. 혹은 가족만 덩그러니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봐주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또는 신경을 쓰야 할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매일 머리 모양을 다듬고, 피부를 가꾸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가지고, 좋은 집을 짓고 그럴까요? 자기 만족이라는 것도 있지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바라봐주고 사람들과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쾌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는 거지요.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군림이라는 말이 생겨날 수도 없습니다.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말을 하지요. 국민을 위해서~~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고~~ 에나콩콩입니다. 사람들을 딛고 서서 최고로 많이 누리고 싶어하는 욕심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불어 살아가지 않으면 모든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누리는 만큼을 환원할 의무를 가져야 하는 게 당연히 맞다고 생각합니다.

 

곽재우는 전쟁이 끝난 후 이리저리 떠돌다 망우정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망우는 우환을 잊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고 그는 빈털털이가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말하자면 사돈의 팔촌까지 그런 신세가 된 것이지요. 그렇게 살고도 그가 마지막까지 잊고 싶었던 우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많이 가진 것이 권력이 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곽재우의 생을 더듬어 보는 일은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더불어 이 사회에서 가진 사람들이 져야할 의무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크고 많다는 것도 거듭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세상을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곽재우는 역사 속에 박제된 영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살아있는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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