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인적으로 무슨무슨 기념일을 챙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딱히 이렇다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기념일을 챙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그외 무슨무슨 날에 의미를 두고 즐기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게 무슨 소리냐고~ 그런 게 다 사람 노릇하면서 사는 재미고 낙이 아니냐고 그러겠지요.
기념일을 심드렁하게 여기는 제 사고방식에 대해서 막 공격을 하시고픈 분들이 계시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그런 정도로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해마다 오월이 되면 즐겁고 신나는 이들도 많겠지만, 반면에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습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같은 기념일을 챙겨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심정은 비슷할 거라 짐작이 됩니다.
거기에다 생일이나 제사처럼 가족 행사라도 하나 끼여 있으면 그야말로 '오월은 푸르구나'가 아니라 적자에 허덕거려야 하는 공포의 달이 되기가 쉽상입니다.
다른 기념일도 그렇지만 오늘은 어린이날인 만큼 어린이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어린이날은 없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그런 내용의 글을 작년 재작년 어린이날에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별로 호응을 하지 않더군요.
아이들이 신나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진- 경남도민일보) |
그런 것하고는 상관없이 망구 제 혼자 생각일 수도 있지만 어린이날이 없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올해도 빠지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어린이날이지만 저는 또 으례적으로 아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린이날에 하고 싶은 게 뭐냐?
이 질문에 대한 아이들에 대답은 시대의 흐름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답이 많았습니다. 장난감 선물 받고 싶구요~ 가족들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구요~ 그리고 놀이공원 가고 싶어요~ 그래서 어린이날이 되면 동네 장난감 가게가 북적거리고, 피자 통닭집이 불이 나고, 놀이공원에 늘어선 줄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진풍경이 연출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촌스러운 대답을 하는 어린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도 적어졌고, 평소에도 즐겨 먹는 피자나 통닭을 어린이날 특별 음식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게임하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이 놀이공원에서 길게 줄을 서는 따위의 귀찮음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아이들이 어린이 날에 간절하게 원하는 선물이 있습니다. "게임기 하고요. 휴대폰 선물 받고 싶어요." 이 정도의 대답은 그래도 준수합니다. "그냥 현찰로 받고 싶어요. 돈으로 받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가 있잖아요." 고학년이 될수록 그런 현상은 아주 심하게 나타납니다.
물론 가족들끼리 공연을 보러간다든지 야유회를 간다든지 나름 즐겁고 보람있는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먹고 살기가 빠듯한 서민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떠밀리듯이 선물을 주거나 외식을 하거나 그러는 경우도 많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가난하고 어려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 만든 어린이날은 변화를 거듭한 결과, 게임기와 휴대폰과 현찰을 받고 싶은 날로 변신을 했습니다. 앞으로 어린이날이 계속되는 한 어린이날의 풍경은 끝없이 진화 발전할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아이들의 위해서 공연을 하는 곳도 있습니다 (사진- 경남도민일보) |
얼마 전 신문을 보니 OECD 국가 중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고 어른이고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별로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하지가 않은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공부 공부 공부에 짓눌린 아이들이 행복할 까닭이 없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준 꿈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꿈꿀 수 없는 세상에 살면서 행복할 까닭이 없습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어린이날 하루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손에 쥐어주면서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몸으로 마음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이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를 만든 건 모두 다 어른들 탓입니다. 그 어른들이 해마다 돌아오는 어린이날 하루 동안, 맛있는 것을 사주고 놀이공원을 데려가고 여기저기서 온갖 행사나 잔치를 벌이는 것이 아이들을 진정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일까 싶은 거지요.
어린이날이 없어지면 금쪽같은 공휴일 하나가 날아간다 싶어 어린이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생각해보면 더 좋은 대안도 있습니다. 어린이날 말고 대신에 독도의 날을 만들어 공휴일로 지정하는 게 좋겠다고 주장하는 똑똑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우길 때마다 발끈 열을 낼 게 아니라 다양한 행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역사의식도 심어주고 얼마냐 좋으냐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굉장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해야 한다는 부담도 줄일 수 있어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을 습관적으로 선물을 받아야 하는 날로 인식시켜주는 것도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으니까요. 대신에 공부에 찌들어 행복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하루만이라도 공부에서 해방을 시켜주니 나쁠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혹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틀을 만들어 놓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런 규범이나 제도가 형식화되어 바람직하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틀을 깨고 나아가는 변화도 필요하겠지요. 어린이날도 바로 그런 것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이야기 역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그렇게 생각하시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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