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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딴에 이야기

모산재 순결바위도 시절에 따라 변한다

by 달그리메 2012. 9. 24.

한 때는 산토끼라는 별명을 얻었을만큼 산을 잘 탔습니다. 가깝게는 동네 뒷산에서부터 이런저런 이름있는 산을 어렵지 않게 오르내렸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딱 한 때 였습니다.

 

뚜렷한 원인도 모른채 3년 동안 다리가 아파서 심하게 고생을 한 이후로 모든 산은 그야말로 오르지 못할 산이 되어버렸습니다. 동네 뒷 산 정도는 가끔 올랐지만 모산재처럼 높고 큰 산을 오른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모산재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니 더할나위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함께 팸투어를 갔던 블로거들은 그런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지만 저는 그동안 산을 오르지 못한 사연이 있었기에 남다르게 감개무량했습니다. 

 

모산재에서 내려다본 풍경입니다.

 

영암사지를 찾을 때마다 영암사지 뒤편으로 병풍처럼 서 있는 모산재를 그냥 쳐다만 봤지 오를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명산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산이 어떤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번에 합천군과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 에서 마련한 모산재 알리기 블로거 팸투어에 함께 하면서 드디어 오를 기회를 잡았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저마다 다른 감흥을 느꼈겠지만 저는 참 재미있고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가파르게 이어지는 바위산이었는데 오르는 동안 내내 힘든 몰랐습니다. 마치 뒤에서 뭔가 떠밀어올리는듯한 그런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바위산을 오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소나무가 정원에 있는 것 같지요. 합천군에서 특별히 정원사에게 부탁을 해서 다듬은 소나무라고 했습니다.

 

바위에는 신기한 기운이 있다고들 합니다. 명산이라고 하는 산들은 대개가 바위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바위 앞에서 소원을 빌었습니다. 지금도 전국에 있는 소원바위라고 이름 붙여진 영험한 바위가 있는 곳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뿐만아니라 기복을 위해 바위에다 글이나 부처상을 새기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상징물을 만들기도 합니다.

 

유명인을 배출한 곳의 풍수를 봐도 바위와 무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본 것으로는 성철스님 생가가 그랬고, 이병철 생가 뒤에 펼쳐져 있는 병풍같은 바위,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 봉하마을에도 바위가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모산재를 오르면서 느꼈던 신기한 기운은 전혀 근거없는 느낌은 아니었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룡바위라고 합니다. 그 앞에 사람이 앉아있는데 아주 좋은 먹이감같다고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습니다.

코끼리 바위라고 하는데 코끼리 같은가요?

 

모산재는 바위가 훌륭한 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모습도 장관이고 위에서 아래도 내려다보는 모습도 입이 쩍 벌어질만큼 아름답습니다. 산을 오르다보면 군데 군데 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바위들도 많았습니다. 코끼리바위니 공룡바위니 부처바위니 이름이 붙여지긴 했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일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여러가지 바위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순결바위입니다. 순결하지 않은 사람은 바위 사이에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순결 바위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산재를 오르면서 무척 궁금했습니다.

 

큰 계곡처럼 양 쪽으로 바위산이 있고 그 사이에 좁은 틈이 있는게 아닐까 나름 그런 상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실재로 보니까 상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네모진 큰 바위가 평평한 바위에 나란히 놓여있었는데 그 사이에 틈이 나 있었습니다.

 

순결바위입니다. 상상했던 것과는 좀 많이 달랐습니다.

 

순결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체격이 큰 사람은 못나옵니다.

 

순결과 목숨을 바꾸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일방적으로 강요된 순결로 인해 여자들이 겪었던 고통이나 남녀간의 갈틍이 소설이나 드라마의 스토리가 되기도 했고, 이 문제로 신혼부부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파경을 맞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현실에서는 그다지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되버린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틈새가 넓어 보통의 체격을 가진 사람들은 다 빠져나올 정도였습니다. 긴 세월을 거치는 동안 닳고 닳아서 두 바위의 틈이 벌어지면서 덩달아 세상 인심도 함께 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바위나 나무처럼 사물에 담겨있는 전설이나 이야기는 그 시대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산재에 있는 순결바위도 한 때는 순결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그만큼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보면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 이 말은 시대를 떠나 가장 진리인것 같습니다.

 

순결바위 옆에서 내려다본 풍경입니다.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몇 배는 힘이 들었습니다. 오르는 길이 바위길이라면 내려오는 길은 흙길이었습니다. 다리가 후덜거리고 시간도 더 많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오를 때 숨이 차고 더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내려오는 길이 더 힘듭니다.

 

내려오는 길은 정상에 대한 기대가 없습니다. 이루어냈을 때의 짜릿함이나 성취감도 없습니다. 정상에서 맞볼 수 있는 상쾌함이나 시원함도 없습니다. 그저 조심조심 내려오기만 해야 합니다. 다시 제자리도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과 더 이상 올라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이 있겠지만, 그래서 마음은 수월하지만 몸은 더 힘이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사람은 정상에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잘 내려와야 한다구요. 그래야 잘 살았다할 수 있답니다. 그것은 산을 오르고 내리는 일도 꼭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순결바위가 가지는 가치는 세월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순결바위를 품고 있는 모산재를 모르고 내리는 일은 세월이 변해도 그대로 일 것 같습니다. 힘이 들었지만 4시간 동안의 모산재 산행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다음에 다시 오를 때는 순결 바위의 틈이 지금보다 더 벌어져 있지 않을까요? 그만큼 세상도 많이 달라져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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