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타고 함양속으로"~ 여섯번째 이야기
점점 사라져 가는 것들
열 서너살 먹은 아이들에게 언젠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10년이나 20년 후 쯤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아이들의 대답이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의사를 하고 있을 거라는 아이도 있었고, 삼성맨이 되어 있을 거라는 아이, 가수, 운동 선수가 되어있을 거라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그 꿈을 펼치고 있는 장소는 도시였습니다. 누구도 시골에 들어가서 무엇을 하고 있을 거라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50년이나 60년 후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때는 어떨까? 다시 물었더니 재미있는 답이 나왔습니다.
시골에 내려가서 좋아하는 과일나무도 싶고, 개도 키우고, 잔디도 심고, 가족과 친구들과 고기도 구워먹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 향수를 간직한 것도 아닐텐데 어린 아이들이 그런 꿈을 꾼다는 게 참 신기하가도 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시에 살면서도 누구나 시골에 대한 동경은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어떨까요? 여건만 허락된다면 노후에는 시골에 가서 텃밭에다 채소를 가꾸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생각을 다들 한 번쯤은 했을 겁니다. 꿈을 실현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살아가는 동안 그런 환상은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흙으로 돌아갑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으로 자연에 대한 회귀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이 나이가 들면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는 시골에도 이런 흙길이 드물지요
지금 한창 마을만들기 사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마을이 만들어져 있음에도 새삼 마을을 만든다는 말이 이치로 보자면 썩 맞는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럼에도 마을만들기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쓰여지고 있습니다. 생태마을이다 뭐다 하면서 왜 이렇게 마을만들기 붐이 일어나고 있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마도 흙을 밟지 못하고 사는 현대인이 앓는 열병같은 것은 아닐까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인간이 흙을 밟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흙을 밟고, 먹고, 만지며, 흙에서 만든 집에서 살았던 그 시절에 비긴다면 지금은 더할나위없이 편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정작 그 때보다 더 많이 행복하다고 말하지는 못합니다.
시골 구석 구석 이렇게 시멘트 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흙과 돌이 집이 되고, 담이 되고, 길이 되고, 언덕이 되던 그 시절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나 흔적들이 이제는 상품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만큼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자취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다 사라지고 없어지기 전에 흙길과 물건과 이야기들을 붙잡아두려고 애쓰는 작업이 마을만들기인 셈입니다.
다음 일정에 앞서 하루 시간을 내서 '해딴에'에서 마을만들기를 하기로 한 임호 마을과 산두 마을을 찾았습니다. 자세하게 마을을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살아있는 것과 사라져가는 것과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서 구석 구석을 다니면서 조사를 했습니다. 다니면서 두 가지를 봤습니다.
깨끗한 개울물에도~ 아름다운 정자 곁에도 생활 쓰레기가 쌓여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선택했던 임호 산두 마을도 시대의 흐름에서 별반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마을 길이 아름다웠지만 농사를 짓기 편하게 농로로 이용이 되면서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을회관 앞 넓은 마당도 시멘트로 덮어져 있었고, 돌담도 거의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흙길을 포장하고 돌담을 허무는 일은 시골이나 도시나 마찬가지입니다. 마을을 따라 이어지는 시멘트 길이 흙길 그대로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문화 관광 자원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왜 그렇게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참 아쉽다 싶었습니다. 이렇듯 잘 사는 방법이 좀 더 편하게 좀 더 많이 가지는 쪽으로 모두들 똑같이 한 방향으로만 향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반가운 것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물이 살아있고, 개울이 살아있고, 들이 살아있고, 정자나무 그늘 아래 훈훈한 인심이 살아있었습니다. 지난 번 설명회 때 뵌 분들이 지나가면서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런 정겨운 시골 인심도 훌륭한 자원입니다.
그날 화장산 꼭대기까지 올라가겠다는 애초의 계획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길을 따라 올라갈 수 있을만큼 올라갔지만 더 이상은 무성하게 자라난 풀로 인해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지점에서 길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산 정상에 오르면 함양이 가장 잘 내려다보인다고 합니다. 함양을 내려다보지 못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했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다 그냥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딱 맞아떨아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아쉬움을 달래며 산에서 내려와 거의 마을 끝에 이르렀을즈음 하늘을 덮고있던 먹장구름은 장대비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길이 나 있었다면 앞 뒤 재지도 않고 아마도 산 정상까지 올랐을 겁니다. 그랬다면 꼼짝없이 물벼락을 맞고 산 속을 헤맸겠지요. 119 구조대가 출동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들 한마디씩 합니다. 일이 잘 될 징조라나요. 이런 마음 가짐을 가져 봅니다.' "버스타고 함양속으로" 프로젝트에 대해서 비관도 낙관도 하지 말자. 지금 긍정적인 것들이 다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닐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금 어려운 일이 나쁜 쪽으로만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 이치다.'
다음 일정은 면사무소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통영 연대도 성공 사례를 보여 준 후에 민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난관 중에 하나입니다. 삼시 세끼 챙겨드시는 것도 번거러울 어르신들이 아무리 돈이 좋다기로 객식구를 받아들이는 일에 선뜻 나설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버스타고 함양속으로"는 앞으로도~ 계속~ 쭉~~나아갑니다. ~화이팅~!! (이건 우리 스스로에게 힘내라고 던지는 응원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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