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구속 수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람들마다 제각각의 의견을 말하면서도 다른 여느 사건들과는 달리 딱히 어느 한쪽으로만 밀어부치지 못하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교육 개혁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이번 구속에 대한 불만이 컸습니다. 불구속 수사를 진행하면서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도 문제가 없는 것을 현 교육감을 두고 증거인멸, 도주우려 운운하며 전격적으로 구속 수감한 것은 타이밍 상으로 보더라도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패에 따른 불리함을 만회하기 위한 표적 수사라고들 했습니다. 나아가서는 진보에 대한 탄압이라는 이야기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반면에 곽노현이 교육감에 당선이 되고 나서 그동안 교육 개혁에 이바지한 일련의 성과를 인정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한편으로는 선거 과정에서 돈이 오고간 것은 분명한 불법이며,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으로 아이들에게도 명분이 서는 일이라는 입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곽노현... 생각해보면 그런 교육감이 드물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없기에 그의 인품에 대한 흠결까지도 다 포함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적어도 그의 교육관에 대해서만큼은 그리 표현을 해도 제 입장에서는 무방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변화에 가장 둔감한 곳이 교육계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괄목상대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교육환경은 엄청 좋아지고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피부로 느끼는 학교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데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머리카락 길이와 차림새를 두고 학생다워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몇 십년 전의 해묶은 잣대를 여전히 적용하고 있는 곳이, 체벌을 교육의 중요한 수단의 하나로 여기는 곳이, 인성보다는 시험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곳이, 끊임없이 무한경쟁을 부축이는 곳이, 학생들의 인권보다는 통제가 앞서는 곳이 학교입니다.
그런 교육판에 곽노현이 등장을 했습니다. 보수적이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곳에 그는 한마디로 혁신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재고 따지고 망설이고 그래서 실현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학생 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성적에 의한 등수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일제고사를 반대하고, 무상급식을 시행할 수 있게 물꼬를 턴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그런 곽노현의 행보를 두고 염려를 앞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혼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교육을 두고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사용하듯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냈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동안의 성과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도 관심과 기대가 있었던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벌어진 일이라 학교가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낙담은 훨씬 더 컸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곽노현 교육감의 개혁에 박수를 보내는 글을 블로그에 몇 번 올렸기에 저 역시 그런 마음은 더 컸습니다.
그렇지만 새삼 곽노현 교육감의 구속을 두고 옳다 그르다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의 안목도 아니고 지극히 사사로운 생각에 불과하지만 이번 사건을 보면서 드는 몇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선, 급식이 과연 복지 문제인가 교육 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무상급식은 당연히 복지 문제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구분을 해서 말을 하자면 급식은 교육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학교 전체 예산에서 급식에 대한 예산을 정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지자체나 국가에서 보조를 받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춰 간다면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거지요.
혹자는 무상급식보다는 교육환경 개선이 더 우선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다른 예산도 마찬가지듯이 책정된 교육 예산 중에 비효율적으로 새어 나가는 돈이 일일이 예를 들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많은지요. 그런 거 제대로 챙기고 살피면 의무교육 안에 무상급식은 포함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이들 밥 먹이는 일을 두고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주민 투표를 하는 쌩쑈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되지 싶은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무상급식을 두고 복지 포퓰리즘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강남 사람 강북 사람으로 편이 나뉘어지고 여야가 나뉘어지고 진보 보수가 나뉘어지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우스운 나라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아이들 밥그릇을 두고 복지 운운하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서로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기싸움을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는 않더군요. 급식은 없고 사건의 중심에는 오로지 여야 힘 대결만이 있어 보였습니다.
연장선장으로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교육감이라는 직이 정치판에 끼여들어 저렇게까지 휘둘리는 자리여야 하는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의원과는 달리 교육감은 정당 소속이 없다고 알고 있는데 이번에 보니까 형식만 그럴 뿐 여전히 정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교육감의 자리는 독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감이 교육에 대해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유권자들이 판단하고 선택을 했다면 큰 틀에서 정치와는 무관하게 소신껏 나아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과 같이 정치권력에 이리 저리 휘둘려서는 절대로 교육이 제 자리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을 이번 사건을 통해 새삼 확인을 한 셈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원칙이 통하는 세상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것이 모든 것의 기본이라면 그런 면에서 보자면 곽노현의 사퇴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가 아무리 좋은 생각과 능력을 가진 교육감이라 해도 그 원칙을 위반했다면 당연히 법을 따라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보나 야권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피해의식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하는 거지요. 원칙을 지키는 것도 지키지 않은 것도 다 괴로운 세상을 만든 것에 대한 책임에서 여권이 완전히 무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곽노현의 비원칙에 대해서 사람들이 쉽게 수긍하려 들지 않은 까닭을 들여다 보면 그를 탓하지 못하는 심정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결코 변하지도 바뀌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칙은 일방 통행이 아니라 쌍방이 지킬 때 진정한 원칙이 성립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사건을 두고 그런 생각을 더욱 절실하게 하게 됩니다.
'정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나라당 6전 6패는 함양군민 손에 달렸다 (4) | 2011.10.18 |
---|---|
윤학송, 이런 군수 후보라면 나도 찍고 싶더라 (4) | 2011.10.14 |
지방의원 해외연수, 내밀한 이야기는 할 수 없다? (7) | 2011.08.30 |
주민회가 초청한 김두관 도지사 강연 풍경기 (2) | 2011.08.23 |
천정배, 20대 국회의원 만들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4) | 2011.08.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