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창동에는 추억이 있습니다.
창동하면 저는 고갈비 생각이 가장 먼저 납니다. 세월을 더듬어 보면 벌써 수십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가난했던 학생 시절 이야기입니다. 어쩌다 돈이 생기면 특별한 행사처럼 예비역 아저씨들과 어울려 봉림동 골짜기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창동으로 나왔습니다.
그 시절 창원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습니다. 학교 주변에는 포장마차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있었을뿐이었습니다. 창원에서 창동으로 오면 시골에 살다가 도시로 나온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시끌벅적한 부림시장, 어시장, 휘황한 불빛, 오고가는 사람들의 물결... 지금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 시절 창동은 시골에서 올라왔거나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적당히 주눅이 들게 만들었던 그런 곳이었습니다.
창동 뒷골목은 새롭게 단장을 해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늘 주머니가 가벼웠지만 간혹 여유 돈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찾은 곳이 창동 고갈비 골목이었습니다. 그 즐거움은 어디에도 비길 수가 없었습니다. 고갈비 하나를 시켜놓고 소주를 서너 병쯤은 너끈히 마셨습니다. 어떨 때는 고등어 가시를 쪽쪽 빨아가며 네다섯 병씩을 마신 적도 있습니다. 뭐든지 지나놓고 보면 그렇지만 그 때 먹었던 고갈비는 지금 한우 갈비보다 더 호사스러운 안주였습니다.
고갈비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은 절대로 "고갈비 주세요" 그렇게 주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고등어구이 주세요"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구이는 가격이 싸보이지만 왠지 갈비는 가격이 비쌀까봐 간이 떨려서 차마 "갈비 주세요" 그렇게 하지 못한 거지요.
학생들뿐만 아니라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에 다녔던 그 시절 공돌이 공순이들 (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불렀습니다) 치고 창동에다 추억 몇 가지 묻어두지 않고 떠난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창동은 많은 이들에게 그런 곳이었습니다.
마산 창동에는 역사가 있습니다.
마산하면 많은 사람들은 3.15 의거를 떠올립니다. 1960년 이승만의 부정 선거에 대항하여 일어난 3.15 의거는 후일 4.19 혁명을 촉발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고 이는 해방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전기를 마련하는 사건이 됩니다. 그런 역사적인 3.15 의거의 시발점이 바로 창동이었다는 것을 마산에 살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10년 국가기념일로 승격이 된 3.15 의거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 비해서 정작 지역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3,15 의거 발원지라고 생긴 마크를 창동에 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창동을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시민극장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약속 장소 이기도 했고 거기에서 애마부인이나 뽕,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가 나오는 영화 한 두 편 보지 않은 이가 드물었을 겁니다.
1995년 창동의 내리막과 함께 문을 닫은 시민극장은 한일합방 이전에는 마산 미니소라는 이름으로 노동야학을 열고 시민사회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합방 시절에 일본인 소유로 공락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해방 이후 시민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뀌게 되는데, 이곳에서 1950년 6.25 전쟁 당시 보도연맹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시작됩니다.
민주주의가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 조차 모르고 배가 고파서 보리쌀 1되에 보도연맹에 가입한 마산, 창원, 함안, 고성 사람들을 시국강연회를 핑계로 시민극장과 근처 구 강남극장(국제극장)으로 모이게 합니다. 극장문을 닫아걸고 모인 사람들을 묶어서 인근 형무소로 끌고가 수감을 한 후 수장을 시켰는데 이렇게 해서 희생당한 무고한 민간인들이 1681명이라고 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지금은 위령비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하더군요. 시민극장 건물에 지금은 ssazy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여러가지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 중에는 이 곳이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어쩌면 그 사건보다 더 큰 비극은 과거의 아픔을 알지 못하거나 관심조차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산의 명물이었던 시민극장입니다. 그나마 건물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원동무역이 있습니다. 1927년에 세운 원동무역의 수익금이 벽산 안희제의 독립자금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장터 사람들에게 국밥을 나누어주는 등 어시장 객주들을 상대로 선행을 베풀었던 옥기환씨는 훗날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어 초대 마산 시장이 됩니다. 원동무역 건물은 창동에 가면 원형을 볼 수 있습니다. 술을 파는 장소로 변했는데 내부 시설은 그때 그대로라고 합니다.
원동무역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술집을 하고 있습니다.
창동 네거리를 중심으로 걷다보면 1955년에 문을 연 학문당 서점과 시위 때마다 타켓이 되었던 남파(남성동파출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레코드판을 팔고 있는 명곡사, 최초의 민간도서관인 책사랑, 미스 경남을 가장 많이 배출한 원조 스왕미용실 등 연륜과 역사를 느끼게 하는 가게들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학문당, 스왕미용실 같은 오래된 가게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동예술촌이 있습니다.
한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힐만큼 영화를 누렸던 창동은 한일합섬이 이전을 하고 수출자유지역의 규모가 줄어들어드는 대신 인근 창원이 공단으로 성장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창원 신시가지의 불빛이 환해질수록 반대로 창동의 거리는 썰렁해져갔습니다. 지역의 흥망성쇠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피할 수 없은 운명과 같은 것이라고 하니 그 또한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쇠락의 길을 걷던 창동에 한줄기 빛이 비치게 된 건 마창진 통합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창진 통합에 대한 의견은 지금도 지역민들마다 분분합니다. 그러나 창동만큼은 통합의 덕을 톡톡히 보게 된 셈입니다. 만약 통합이 되지 않았다면 창동예술촌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거라는 의견에는 다들 동의를 하니까요.
창동의 영화를 짐작케 했던 자리입니다. 화장품 가게가 들어서 있는 이 터가 한 때는 전국에서 가장 비싼 곳이었다고 합니다.
창동예술촌는 통합된 창원, 마산, 진해의 균형 발전을 위해 특성에 맞는 지역 발전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산은 창원 신도시에 비해 골목이 살아있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장사를 하고 있는 전통있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요즘같은 시절에 옛 것이 지니고 있는 소중함이나 가치를 보존한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일입니다.
창동예술촌에는 회화, 공예, 조각, 도예, 사진, 탱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입주해 있습니다. 직접 체험을 할 수도 있고, 예술가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눈 구경을 해도 좋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주말에는 작가들의 작품을 팔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을 열면서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낭만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찾아볼만한 곳입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분들도 좋습니다. 창동에다 추억을 묻어두고 떠났던 분들 아련해진 추억을 더듬어보러 오신다면 더없이 즐거우실 겁니다. 창동과는 무관하지만 함께 어렵고 아픈 시절을 건너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발길을 해도 좋을 곳입니다.
창동에 오면 고갈비 골목도 남아있고, 3.15 의거 발원지도 볼 수 있습니다. 오동동타령이 만들어진 오동동 골목도 살아있고, 골목 골목 허럼한 술집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창동예술촌이라는 새로운 메뉴가 더해졌습니다.
누군가는 추억을 만들고, 또 누군가는 추억을 더듬고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들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 그런 창동을 꿈꾸며 그 역할을 새롭게 시작하는 창동예술촌 사람들이 더 많이 제대로 해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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