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놀이를 다녀왔습니다. 단풍 구경하면 설악산도 유명하고 내장산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리 멀리는 못가고 해마다 찾아가는 곳이 있습니다. 청도 운문사를 거쳐서 언양 석남사에 들러, 가지산을 타고 밀양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해마다 이 길을 찾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제각각 다릅니다. 어느 시기에 가느냐가 다르고,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다릅니다. 거기에 더해서 그 해 기후에 따라서도 단풍의 색깔이나 모양이 다 다릅니다.
올해는 정말 눈이 부셨습니다. 이처럼 단풍이 곱게 물든 적을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붉은색은 붉은색대로 노란색은 노란색대로 만지면 손바닥에 색깔이 그대로 묻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이 물들기 시작하면 운문사는 단풍배에 실려 둥둥 떠다닙니다. 잎이 다 질 때까지 쉼없이 손님을 싣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유랑을 합니다. 단풍을 두고 표현이 좀 오바스럽지만 운문사에 가면 지금 제가 한 이 표현이 문득 생각나는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간밤에 진저리를 치며 비바람이 불어대더니 그 사이에 운문사 단풍이 우수수 떨어져 버렸습니다. 가는 날에는 나무에 매달린 단풍보다는 발 밑에 깔린 낙엽이 더 수북했습니다. 또 그런대로 좋았습니다. 단풍구경을 온 사람들은 땅은 보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며 지고 없는 단풍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나마 몇그루 남아있는 나무들이 마지막 단풍 손님을 받고 있었습니다.
혼자 터벅 터벅 걸어내려오다 단풍나무 한 그루를 만났습니다. 고개를 들어 우러러 봤습니다. 가을이면 떨구었다 따뜻한 봄날에 또다시 잎을 피워내는 일을 족히 수백 번은 했을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앞에서 저리도 당당한 것은 기약할 수 있는 것들의 자만이기도 하겠지요. 만약 인간이 죽은 후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또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지금 만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면...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어떤가요? 그 물음 앞에 어떻게 대답을 하고 싶으신지요. 그러고 싶다는 사람들이 더 많을까요? 아닐까요? 궁금합니다만, 저는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습니다...
나무 아래서 저 처럼 혼자서 열심히 단풍을 사진에 담는 남자분이 있었습니다. 은발을 휘날리며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모습이 근사해보였습니다. 단풍처럼 찬란하게는 아니더라도 저 정도로만 늙어져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석남사 가는 길에 떨어진 낙엽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었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남자도, 여자도 무심히 밟고 지나갑니다. 밟으면서 즐거워합니다. 나무는 아낌없이 나누어줄 줄 압니다. 그런데 사람은 아낌없이 주는 게 어렵습니다. 따지고 계산을 합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이성은 항상 긍정적인데 사용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 속에서 주인공은 인간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주인공의 오만함은 자연의 겸손함 앞에서 별로 빛이 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걸 잘 모릅니다. 세상에서 인간만큼 자뻑이 심한 존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석남사 단풍에 취해서 대웅전은 둘러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단풍 잔치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가지산은 전체가 온통 천연색 물감을 들어부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초겨을 문턱으로 들어서서 떠나보내는 가을 끝이 이렇게 대책없이 찬란해도 좋은지 싶었습니다.
활엽수가 많은 산은 나이가 많은 산이라고 들었습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산은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산하고는 반대인 것 같습니다. 늙어가면서 물기가 빠져 몸도 마음도 건조해집니다. 메마를수록 오종종해집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산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산 단풍을 보면서 했습니다.
나무에 매달렸어도 땅에 떨어졌어도 단풍은 저어함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주어진대로 받아들입니다. 무심함 속에 가을은 또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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