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부터 명절이면 팔자가 늘어졌습니다. 결혼을 하고 오랫동안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다 제사를 큰 집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짐을 떠안은 형님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바람에'가 아니라 '덕분에'라고 해야겠습니다.

다들 명절 준비를 하느라 바쁜 시간에 저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운주사에 갔습니다. 잘 놓여진 길을 따라가면 창원에서 운주사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닙니다. 운주사는 천불 천탑으로 유명한 절입니다. 절 하나에 많아야 서너개 정도 있는 탑과 불상이 천 개나 있다고 하는 절입니다. 아~ 지금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얼마 남아있지 않습니다.

        

   

 운주사 곳곳에는 이런 탑들이 세워져 있는데 새겨져 있는 무늬 도 모양도 소박합니다.


경주에 있는 불국사가 귀족적이라면 운주사는 굉장히 서민적입니다. 소박하다 못해 좀 없어보이기까지 합니다. 불국사는 국보나 보물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아주 힘이 세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불국사를 찾아가서 사람들이 빌었을 소망조차도 부귀영화나 권력지향적이었을 거라 짐작이 됩니다.

반면에 운주사를 찾은 사람들은 일상적이고 소소한 소망을 빌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굶지 않고 배부르게 해주셔요. 아픈 거 낫게 해주셔요. 뭐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수려하지 않은 작품들 속에 녹아있는 기원이 가진 사람들에 비하면 일상적이고 소소했다고해서 그 절실함이 작거나 가볍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더 처절했을지도 모릅니다.  

  

 

        불상이라고 하기에는 조잡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좀 오래된 최인호의 소설 속에서 운주사의 천불 천탑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나라 잃은 유민들의 조국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부활에 대한 기원이 형상화 된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무 생각없이 읽었습니다. 역사소설이다 보니 그렇게 해석을 했구나 그 정도로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는 그 귀절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염원이 그렇게 거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이들면서 조금씩 깨달아졌기 때문일까요? 말을 하자면 그런 것인데~ 배가 고프면 배부르게 먹는 것이 소원이고 몸이 아프면 건강한 것이 소원이듯이 국가나 민족에 대한 기원은 개인적인 고통이 앞서면 쉽사리 생겨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하루 하루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4대강 사업을 하든 말든 그게 그렇게 절실할까? 몸이 아픈 사람한테 국가관이나 애국심이 생겨나기는 할까? 그런 거지요. 선진국일수록 후진국에 비해 환경이나 자연보호에 대한 관심이 많고 질서가 지켜지고 그런 것도 아마 그런 까닭이 아닌가 싶습니다.

 

            호떡 모양같은 탑입니다. 그 위에 돌맹이로 탑을 쌓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일평생 크고 작은 소망이 끝도 없이 생겨납니다. 돈도 있었으면 좋겠고, 건강했으면 좋겠고, 자식들이 잘되었으면 좋겠고, 명예를 얻었으면 좋겠고 뭐 그런 저런 기원의 연속입니다.

간절한 소원을 이루는 두가지 방법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선 하나는 자신이 바라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름을 불러주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사랑을 이루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 그사람 이름을 자꾸 불러보라고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입에 달고 다니면 된답니다. 그러면 신비한 기운이 생긴다고 하네요.

그리고 또 하나는 성취하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빌고 또 빌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좋고 부처님도 좋고 그외 지신이 믿는 무엇에라도 상관이 없답니다. 기원의 힘이라는 것이 있지요. 물론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기원이 지니고 있는 힘이 있다고 그럽니다.
 
 

     운주사 와불입니다. 자연 그대로 돌 위에 부처상을 새긴 마애불입니다. 
    돌 뿌리가 깊어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어렵다고 합니다.

운주사 와불입니다. 이 불상이 벌떡 일어나는 날에는 우리가 소원하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속에서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져 행복한 나날만 계속되는 것은 불가능 하겠지요.

끊임없이 기원해야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런 일로 인해 고통받고, 성취 속에서 잠깐 잠깐 즐거움을 느끼고, 그러다 어느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인간에게 주어진 삶이고 운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Posted by 달그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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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무 2011.02.03 08: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참 좋습니다~~ 멋집니다.

  2. 최명진 2011.04.26 2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꼭 이루어야 하는 소원이 있는데 이루어지겠죠?

  3. 연분 2015.05.12 2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행운이가득한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