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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합천영암사지, 호젓한 길위로 꽃잎이 지다

by 달그리메 2012. 4. 23.

한 달에 한 번씩 갱상도 문화학교에서 떠나는 역사 생태 기행이 3월부터 10월까지 총 8번 계획이 잡혀있습니다. 지난 달 장승포~능포 해맞이 길에 이어 이번에는 합천 영암사지 벚꽃 길을 걷고 왔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훌쩍 떠나고 싶은 일탈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생활에 매여서... 용기가 없어서...시간이 부족해서...등등 떠나지 못하는 이런 저런 변명을 끊임없이 만들며 살아갑니다.

 

갱상도 문화학교에서는 그런 이들과 함께 더 많은 것을, 더 좋은 것을, 두루 누리고 고루 누릴 수 있도록 여러가지 일을 부지런히 찾아서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역사 생태 기행도 그런 일 중의 하나 입니다.

 

갱상도 문화학교에서 떠나는 역사 생태 기행의 컨셉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자유분탕'입니다. 여러 곳에서 하는 이런저런 기행과는 다르게 한 가지라도 더 많이 알고 배움에 목적을 두기 보다는 몸으로 느끼고 그 느낌을 마음에 새기는 즐거움을 더 우선에 둔다는 뜻입니다.

 

이번에 찾은 합천 영암사지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절터입니다. 절터에 남아 있는 어느 것 하나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엉덩이가 통통한 쌍사자 석등은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 표지 모델이 될 정도로 뛰어난 작품입니다. 절터를 에워싸고 있는 산세와 주변의 기운 역시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그런 것들과 더불어 더욱 좋은 것이 영암사지에서부터 호젓하게 이어지는 벚꽃 길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역사 생태 기행의 포인트는 인기척보다는 벌레소리 새소리가 훨씬 더 많이 들리는 벚꽃 길입니다. 차와 사람들이 꽃보다 더 많이 북적이는 소문난 벚꽃장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다른 해보다 기운이 낮아 개화 시기가 늦었음에도 유난히 잦았던 봄바람에 꽃이 서둘러 졌다고 합니다. 채 피우기도 전에 떨어진 꽃잎 자리에는 어느새 파릇한 잎들이 무성해지고 있었습니다. 볕이 적은 골짜기에 여태 매달려 있던 꽃잎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눈송이처럼 흩날렸습니다.

 

 

 

바람에 떨어진 꽃잎이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밤새 내린 눈 위로 아무도 지나간 이의 흔적이 없는 그런 길 같습니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그냥 쭉 미끄러질 것 같은 길입니다.

 

 

사람이든 꽃이든

벚꽃처럼 질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땅위에 수북하게 쌓인 꽃잎들이 떨어져서도 여전히 화사합니다.

 

 

나무 그늘에 꽃이 피어 있는 것 같습니다.

 

 

봄나물을 이고 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정겹고 반가웠습니다.

 

 

양지 바른 곳에 이를수록 잎이 점점 더 무성해지고 있었습니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아직은 늙지도 젊지도 않은 두 남자의 뒷모습과 푸릇푸릇해지기 시작하는 벚나무가 묘하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머리속에서만 머물면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몸을 움직여야 생각했던 것들이 구체적인 모양새로 만들어집니다. 떠나고 싶은 모든 분들~ 망설이지 말고 떠나십니다. 새로운 것들을 담아와도 좋고, 찌들린 일상을 다 털어내고 와도 좋습니다. 문득 나서기가 여의치 않을 때는 갱상도 문화학교가 준비한 역사 생태 기행에 동참하셔도 좋습니다. 다음 기행은 남해 가천~홍현 바닷가를 내려다보면서 걷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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