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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주부엘보로 고생을 했습니다

by 달그리메 2010. 9. 4.
한 달 전부터 특별하게 이유도 없이 팔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약국에서 파스를 사다 붙이고는 곧 낫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심해졌습니다. 물건을 들어올릴 수도 없었고 힘을 쓸 수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블로그를 이사해 놓고 이런 저런 글을 옮겨야 하는데 자판을 두드리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침을 맞으러 한의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테니스 엘보라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테니스를 친 적이 없는데요~ 그랬더니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팔꿈치 부근의 통증을 그렇게 칭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테니스 엘보를 또 다르게 주부 엘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얼마 전 인터넷에 난 기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살림을 하는 주부들에게도 요즘 이런 증세가 많이 나타난다고 하더라구요. 

의사 선생님이 말하는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은 그냥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람의 몸 어느 한 군데가 성치 못한들 괴롭지 않을까마는 오른팔이 아프니 불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움직이지 않은 게 최고의 치료 방법이라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방학이라고 집에서 뒹굴거리는 아이들이 문제였습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의식주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지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끝도 없고 보람도 없는 일의 끊임없는 반복은 팔의 증세를 악화시켰습니다. 드디어 어깨까지 통증이 옮겨갔고 잠을 자면서 앓기도 했습니다. 이러다가 진짜 팔을 쓰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덜컥 생겼습니다.

급기야 가족들에게 선언을 했습니다. 팔을 쉬게 하지 않으면 수술을 할지도 모르니까 각자 알아서 의식주를 해결하자고요. 내 선언에 누구도 불평없이 그러겠노라고 모두들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집안 일에 손을 떼고 나서 하루 이틀이 지나자 팔이 좀 좋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팔이 좋아지는 만큼 집안 꼴은 점점 엉망으로 변해갔습니다. 각자 알아서 의식주를 해결하겠다고 협조를 약속했던 가족들은 집안 일에 대해서 거의 방치를 했습니다. 더 이상 새 그릇이나 수저가 없을만큼 씽크대에는 설거지 거리가 쌓여갔고 빨래에서는 쉰내가 폴폴 났습니다. 거실 바닥에는 지렁이 같은 머리카락들이 발 디딜 곳이 없이 널어져 있었습니다.

어지간하면 내가 치우고 말지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습니다. 팔이 좀 나아지면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보고 있기가 힘들어서 딸에게 설거지를 부탁했습니다. 그러겠노라고 대답은 참 쉽게도 합니다.  

파스를 바르고 누워 있자니 우탕탕 설거지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조금 있으니 틀어놓은 수돗물 소리와 함께 전화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야 나 지금 무지 바쁘거든 엄마가 아파서 집안 살림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 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날아왔습니다.

참 내 원~ 하도 기가차서 웃음이 피식 나왔습니다. 지가 무슨 집안 일을 그리 쌔빠지게 한다고... 이러니 우짜든지 몸 성하게 살아서 의식주는 자기가 해결해야지 사람이 살았다 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 손으로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아내가 밥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남자들도 그 속에 속하겠지요. 

 


또 한편으로는 설거지 한 번 하면서 온갖 생색을 내는 딸이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가정 교육이라면서~말하자면 일도 해봐야 야무지게 잘 살 수 있다고 친정엄마는 어지간히도 나를 부려먹었습니다. 그게 사무쳐서 아이들에게는 웬만하면 잔소리를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 속내를 철딱서니 없는 딸들이 알 리가 없겠지만요.

그런데 어제 딸한테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엄마~ 엄마 팔 아픈 거 심하면 팔을 절단할 수도 있대 신중하게 치료를 해~"  절단이라는 말이 좀 섬뜩하긴 했지만 그것도 다 엄마에 대한 애정이 아니겠는가 그리 생각을 하면서 혼자 흐뭇했습니다.

옛말에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두어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신다고도 했습니다. 자식을 향한 마음은 늘 짝사랑이지요. 그래도 가끔은 그리라도 반응을 해주면 고마울 따름이지요. 내 부모의 짝사랑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반응을 했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딸의 염려 덕분으로 팔을 절단할 지경까지는 아니고 이렇게 글을 쓸 정도는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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