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던 오락 프로가 있었지요. '남자의 자격'팀이 합창대회에 참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합창 단원을 뽑는 오디션 장면이나 연습과정도 재미있었다고들 하던데 제대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무한도전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거제 합창대회라는 글이 눈에 들어와 채널을 고정시키고 보게 되었습니다.
'거제'는 제가 나고 자란 곳입니다. 고향을 떠나와 살지만 바람결에 고향 이름만 주워들어도 그냥 반갑고 그렇습니다. 그게 사람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남자의 자격' 합창대회가 열렸던 거제 문화예술회관이 있는 장승포에 가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을 만나지 못하고 살았던 친구들과 뜻밖에 연락이 되어 추억 더듬기 여행에 나서게 된 거지요. 

 

               멀리 왼쪽 뒤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거제 문화예술회관입니다
       '남자의 자격' 팀이 참가를 해 재미를 더한 거제 합창대회가 열렸던 곳입니다. 
                                    밤에 보니 더욱 멋져 보였습니다.



거제도하면 해금강이나 바람의 언덕, 외도, 학동 등 관광지로 이름난 곳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1박 2일 동안을 줄곧 장승포에서만 머물렀습니다. 주로 우리의 추억이 만들어진 곳이 장승포이기 때문에 이번 여행의 테마에 걸맞게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온 국토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결과, 이제 어디를 가도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 드뭅니다. 사는 모습도 풍경도 비슷비슷해져 버렸습니다. 장승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개를 잡던 앞바다는 매립이 되었고, 빨래를 하러 다녔던 개울도 아스팔트 큰 길로 변해 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던 그 무렵 장승포는 거제도의 중심지였습니다. 성포나 둔덕, 장목, 동부 등 거제도 곳곳에서 아이들이 유학을 와 하숙을 하고 자취하고 그랬습니다. 그야말로 시끌벅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억 더듬기를 하면서 장승포가 이제 더 이상 거제의 중심지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우 조선이 들어서면서 인근의 아주나 옥포, 고현으로 중심이 이동을 하게 된 거지요. 그 때문인지 수요가 많았다면 벌써 아파트나 빌라가 들어서고 남았을 자리에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집들이 대부분 그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나마 퇴락한 장승포를 빛나게 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거제 문화예술회관이었습니다. 거제 문화예술회관은 사진으로 봐도 알겠지만 조용한 포구와 어우려져 건물만으로도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대도시 어느 문화예술회관에도 뒤지지 않을만 합니다.

 

    친구들과 추억 더듬기를 하면서 둘러본 조용하고 아담한 장승포항의 모습입니다.
                                  멀리 거제 문화예술회관이 보입니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외국의 무슨 무슨 도시는 알면서도 우리나라 지역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구요. 그러면서 마산이 어디 붙었는지 창원이 어디 붙었는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다고 했습니다. 서울에 유학을 간 아이들도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납니다. 서울 사람들이 지방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지방 사람들이 서울을 모르면 영판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런 게 다 생각해보면 높은 자리에 있거나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 것을 놓기 싫어서 죽자살자 서울만 키워 논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방으로 뭐 하나 이전을 할라치면 땅값 집값 떨어질 걸 걱정해서 절대 반대를 합니다.

그 결과 이제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지방은 서울 들러리 정도 될까요. 정책적으로 지역에 대한 배려가 없다보니 서울 사람들의 생각마저 그렇게 만들어지는 모양입니다. 서울 사람 나무랄 탓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거제 문화예술회관을 바라보며 유치한 자부심도 느껴보고 지역을 무시하는 힘있는 사람들 욕도 실컷했습니다. 거제를 알리는데 조금이나마 일조를 해준 '남자의 자격'이 고맙다는 말도 했습니다. 

서울이 꽃이라면 지방은 뿌리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꽃이 아무리 화려해도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온통 꽃에 정신이 빠져있습니다. 부실한 뿌리들이 정말 걱정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쓰잘데기 없는 나라 걱정이 되버렸네요. 삼천포로 빠져버렸습니다. 쩝쩝^^


Posted by 달그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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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염좌 2010.10.13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많이 찍으셨을텐데 같이 올려주시지~~~ㅎ

    예전에 한 15년 전쯤 거제도에서 먹은 해물탕이 생각나네요~진짜 환상적인 맛이였죠~ㅎㅎㅎ

  2. 워싱턴미수니 2010.10.14 2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거제 출신 개그우먼의 경상도 사투리 들으면서 정말 정겨움을 느꼈지요. 저도 뒤늦게 한국티비에 합류해서 남격을 봤는데 정말 많이 웃고 울었어요. 내가 마,마여고 합창단 출신아임니꺼. 합창연습하는 거나, 지휘자의 심정이나, 소싯적을 떠올리게 해서 정말 많이 그리워하면서 봤지요. 거제회관 정말 멋지더라구요. 옛날에 부산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보다 더 좋대요.ㅋㅋㅋ 그리고 거제라는 작은 도시에서 전국대회가 열렸다는 것도 참 좋아보였어요. 문화활동의 분산, 뭐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창한가?ㅋㅋㅋ 지금은 퇴임하셨는데 마산여고 합창단을 한 팔년 정도 맡으셨던 황덕식 선생님은 지금도 가곡만드시면서 왕성하게 가곡사랑 운동을 하고 계시더라구요. 제 블로그에도 다녀가셨어요. 선생님 노래가 지역시인들의 시에 가락을 붙이시길 좋아해서 참 정겨워요.

  3. 워싱턴미수니 2010.10.14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악이 어떤 시절에는 백성들의 눈을 멀게 하기도 했지만...그냥 이것저것 복잡한 거 다 잊어버리고 싶을 때, 저처럼 타향살이 지친 심령들을 달랠 때는 정말 정겨운 가곡 한 곡의 힘이라는 것은...여기서 그리운 금강산 부르면요...정말 남달리 코끝이 찌잉해요. 달그리메님 나라 걱정하시는 거 정말 같이 공감하지요. 전 미국 안 왔으면 이런 애국심(?) 못 느끼고 살고 있을지도 몰라요. 오랫만에 고향 다녀오셔서 정말 마음이 꽉 찼겠군요. 지척에 두고도 못가보던 고향 여기오니 정말 그립습니다.

    • 달그리메 2010.10.16 1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거제문화예술회관 같은 것이 중소 도시에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건물만 세워놓지 말고 전국 대회를 순회하면서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번에 그런 예를 잘 보여준 거지요.

      저는 초등학교때 합창단원이었답니다.
      지금도 친구들 만나면 합창단 이야기 끄집어내고 그럽니다.
      멀리 떠나보면 너도 나도 외국자가 되고 고향이 그립고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