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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야기

대통령길을 걸으며 노무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by 달그리메 2011. 5. 22.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지 벌써 두 해가 지나갔습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것들 중에서 망각만큼 위대한 선물이 없다고들 하더군요. 슬픔이나 고통의 기억이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면 아마도 살아가는 나날들이 지옥이나 전쟁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년이라는 세월은 떠나고 없는 사람을 기억하거나 잊기에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일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기억 속에서 조금씩 옅어지고 희미해져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임에도 2주기를 맞아 다시 찾은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남기고 떠난 흔적들로 가득했습니다.

2주기를 맞이하여 다양한 추모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 찾고 있었습니다. 한 달 평균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찾는다니 일 년에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셈입니다. 흔히들 노무현을 두고 죽음으로써 다시 살아났다는 표현을 하는데 그 말이 새삼 실감이 됐습니다.

봉하마을을 둘러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싯귀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걸까요.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고 
우리는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무엇일까요? 사람으로 상처받고, 사람으로 받은 상처로 목숨까지 버려야 했음에도, 사람들은 그를 또 기억하려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흔적들 중에 하나가 살아생전 즐겨 걸었던 길입니다. 그 길 이름이 대통령길입니다.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어떤 이름을 지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올레길, 바래길, 둘레길 하면서 유행처럼 무슨무슨 길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독일에 있는 철학자의 길에서 힌트를 얻어 대통령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그럽니다.

성큼 다가선 초여름 언저리 따가운 햇살이 대책없이 쏟아지던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대통령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대통령이 걸었다니 기념을 하는 의미가 크겠구나 싶었는데 따라 걷다보니 대통령의 길이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더없이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대통령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을 쌓아올린 돌탑이 있습니다. 그리움이 쌓이면 이렇게 구체적인 형상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좀 가파르게 보이지만 생각만큼 힘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적당하게 드리워진 나무 그늘이 시원했습니다.

 
 


올라가다보면 맨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이 마애불입니다. 물론 잘 아시겠지만 마애불이라는 것은 돌에 새긴 부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간혹 마애불이 뭔지 몰라 불상을 찾아 헤매는 분도 있는 모양입니다. 

옆으로 넘어져 있는 마애불을 두고 흉조가 예상되었다는 둥의 이야기가 떠다니기도 하지만 꼭 그렇게 해석을 할 까닭이 있을까 싶습니다. 부처는 바로 앉든, 모로 앉든, 꺼꾸로 앉든 그런 것에 개의치 않겠지요. 인간의 부족한 생각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따름입니다.

한쪽 구석에 모로 앉아 있는 마애불은 사진에서는 햇빛을 받아 선명하지만 실제로 보면 좀 희미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금방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마애불 아래 사진은 마애불터에서 내려다본 대통령의 묘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아득하게 보였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다보면 부엉이바위가 나옵니다. 부엉이바위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두었습니다. 평소에는 전경 한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부엉이바위에서 내려다보니 멀리 희미하게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보입니다. 가고 없는 그 자리에 이제 사진만이 덩그러니 그리움처럼  남아 있습니다. 부엉이바위에 서서 세상에다 마지막을 고할 때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까 생각하면 절로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부엉이바위에서 내려다 본 묘지가 아프게 두 눈에 담깁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렇게 허무하게 떠난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부엉이바위에서 다시 걸음을 옮기면 사자바위가 나옵니다. 사자바위에서 내려다 본 김해 평야가 시원하게 들어옵니다.

봉화산은 목포에 있는 유달산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유달산은 산을 중심으로 목포 시가지가 한 눈에 담기는데 봉화산을 중심으로 김해가 사방으로 다 들어왔습니다. 봉화산의 기운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구나 싶을만큼 힘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산이었습니다.

사자 바위에서 내려다 본 대통령 묘지입니다. 마치 조각을 한 듯이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있습니다.

 
 

봉화산 꼭대기에 있는 호미든 관음보살상에 오르는 길입니다. 보살이 왜 호미를 들고 있는지 궁금하시면 정토원 주지 스님에게 물어보면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신답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입니다. 대통령길은 하나로만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리저리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지만 둘러가거나 돌아가거나 곧바로 가거나 하는 식으로 봉하마을과 이어집니다.

편백나무 숲길이 아름다운데 그 길로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곧장 걸어 나왔습니다. 5시 무렵에 김경수 사무국장과 막걸리를 마시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서둘러 걸음을 옮겼습니다.

 
 

돌아서 내려오는 길은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습니다. 조그마한 저수지가 보였고 오월의 아카시아가 바람결에 흔들리며 달콤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봉하마을에 이르는 근처 길까지 도착을 했습니다. 마치 정원처럼 꾸며져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나고 자란 이 길은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했을 겁니다. 그 길을 걷고 달리면서 꾸었던 꿈도 생각도 그랬을 겁니다.

헤아릴 수도 없이 걸었을 그 길을 다시 돌아와 걸으면서 그는 무척 행복했을 겁니다. 길을 걸으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었을 때가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요.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 끝에 기다리고 있었던 게 죽음이었다는 것을 그 때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며 걸었을 걸음 걸음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생각해보면 가슴이 쓰라립니다. 사는 게 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이제 꿈도 희망도 슬픔도 고통도 훌훌 털고 떠나갔습니다. 그 자리에는 그가 걸었던 길만이 오롯이 남았습니다. 대통령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영원히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행복해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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