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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버스 안에서 야동보는 점잖은 할아버지

by 달그리메 2016. 3. 4.

며칠 전 밀양에서 마산으로 오는 시외버스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정확하게 3월 2일 수요일 4시 출발 버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평일 오후 버스 안은 한산했습니다. 운전기사님 뒷좌석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네 다섯 분 정도 앉았고 그 뒤로 제가 앉고 제 옆에는 저하고 비슷한 또래의 아줌마가 앉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떨어진 뒷좌석에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았습니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시작됩니다. 앞자리에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틈바구니를 비집고 묘한 소리가어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신경을 모아 들어보니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낑낑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뭐라 설명을 할 수 없는 소음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뒤섞여 버스 안이 마치 비현실적인 공간 같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이리저리 버스 안을 살펴보는데 뭔가에 홀린 멍한 기분이었습니다. 잠시 그러다 말았으면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났을 겁니다.

 

 

이런 상황은 버스가 출발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참다 못해 옆자리에 앉은 아줌마에게 "이게 무슨 소리지요" 하니까 슬며시 미소를 띠며 고개를 갸윳거립니다. 불쾌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소리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운전기사에게 갔습니다.

 

"기사님 무슨 소리 안들려요? 뒤 쪽에서 무슨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좀 알아봐주세요" 그랬더니 기사님이 아주 큰 소리로 그럽니다. "아니 무슨 소리가 난다고 그럽니까? 아무 소리도 안들리잖아요.무슨 소리가 들려야 알아보든지 말든지 하지요"

 

할 수 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두런거리는 소리와 낑낑거리는 괴성이 뒤섞힌 채 버스는 달렸습니다. 내가 환청을 듣고 있는 건 아닌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아줌마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무슨 소리 안들려요?" 그랬더니 아줌마가 이럽니다. "뒤에 앉은 할아버지가 야동을 보는 것 같아요. 내가 이 버스를 종종 타는데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 것 같아요"

 

출발하고 20분쯤 지났을까? 첫 경유지에 도착을 했습니다. 버스가 서고 손님이 내렸습니다. 달리던 버스가 멈춰서자 이상한 소리는 더욱 크고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기사님 지금 소리 안들려요? 분명히 이상한 소리가 들리잖아요" "무슨 소리요? 음악 소린가?" 그러면서 운전기사가 뒷자리로 이동을 했습니다.

 

멈춰선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괴성을 기사님도 뒷자리로 이동하면서 분명히 들었을 겁니다. 그 소리가 결코 작지 않았거던요. 그런데 기사님은 끝까지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거지 그런 이야기만 반복했습니다. 뒤에 앉아 야동에 몰두한 할아버지는 버스기사가 다가갈 때까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숙여 화면에 몰두하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운전기사 목소리와 음악 소리라고 답하는 할아버지 목소리가 함께 들여왔습니다. 괴성은 그제서야 멈췄고 다음 경유지인 수산에서 야동 할아버지가 내림으로써 사건은 종료가 된 듯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마지막까지 기분을 잡치게 한 것은 운전기사였습니다. 마산터미널에서 내린 사람은 저 혼자 였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자 버스기사가 저한테 그럽니다. "아까 그게 무슨 소리였지요?" 그 소리가 뭔지 운전기사가 정말 몰랐을까요? 알고 있으면서 여자 손님한테 그런 질문을 했다면요, 기분이 아주 더러웠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적어도 막 살아온듯한 느낌을 주지 않고 점잖아 보이는 외모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버스 안에서 그것도 남에게 불쾌감을 주면서까지 야동을 보는 것에 대해 주책스럽다, 점잖지 못하다 그런 이야기를 여기서 굳이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운전기사의 태도가 훨씬 더 불쾌하고 기분 나빴습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손님이 이상한 상황에 대해서 알리면 적어도 한 쪽으로 차를 세우든지해서 그 상황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를 할 의무를 기사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요? 자기가 인지하지 못한다고 손님의 의견을 무시한다면 그래서 만약 무슨 문제라도 발생을 한다면요? 거기에다 마지막에 손님에게 던지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은 거의 성추행 수준입니다!! 옆에 앉았던 여자 손님이 했던 "이게 처음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운전기사의 태도가 왠지 미심쩍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직무유기는 물론이고 적어도 그런 오해를 불러오도록 행동을 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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