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해이어보를 썼던 담정 김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줄곧 든 두 가지 생각이 있다. 한 가지는 타고나는 천성과 처해지는 환경 중에 어느 쪽이 사람의 인품을 결정하는데 더 많은 영향을 미칠까 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세상이 어느 정도는 공평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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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바다 근처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거친 파도에 익숙하고, 산골에서 태어난 사람은 흙과 나무와 친해진다. 그렇다고 같은 조건이 주어진다고 해서 성향이 다 비슷해지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를 두고 어느 쪽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칠까 하는 것은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김려하면 사람들은 우해이어보를 떠올린다. 우해이어보는 김려가 진해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낚시로 소일을 하면서 진동 바다에서 나는 특이한 물고기의 특징을 기록한 자료인데 정약전이 썼던 자산어보에 비해 유명세로 치자면 그에 미치지 못하지만 훨씬 일찍 만들어진 귀한 책이다.
김려는 역사 속에서 좀 낯선 인물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우해이어보를 통해 김려라는 사람을 처음 대면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우해이어보를 따라 들어가다보면 그가 남겼던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보다 그의 남다른 면모에 더 많이 빠져들게 된다. 그는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시문을 남겼는데 그 시문을 통해 보여지는 김려는 무척 매력적이다.
김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관심을 가지다 보면 자연히 유배생활을 하게 된 연유가 궁금해진다. 천주교 박해 때 이단으로 몰린 친구를 변호하다가 같이 연루되어 2년 6개월 동안 진해(현재 진동면 고현)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고 기록이 되어있다.
그 시절을 더듬어 올라가보면 천주교 박해는 지금 우리가 제대로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잔혹했다. 살벌한 시절을 두고 '서슬이 퍼랬던' 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때의 분위기가 그랬다는 것을 책을 통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정조의 각별한 애정을 한 몸에 받았던 정약용 조차도 17년간의 유배 생활을 하게 되는 계기가 이 사건 때문이었으니 그 때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짐작을 할 수가 있다.
당신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그런 친구를 가졌는가? 이 물음 앞에 그렇다고 답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반대로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걸 수 있냐는 물음 앞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런 친구를 가지지 못했고 그런 친구가 되어주지도 못할 것 같다. 어쩄든 그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만큼의 일을 하다 전혀 다른 삶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는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매임없이 자유로웠다. 그런 행적들이 그의 시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명문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그가 하루 아침에 달라진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 외로움과 그리움에 사무치는 심정도 그가 적은 시에 잘 드러나 있다.
김려가 처음 진동으로 와서 한 일은 동자를 데리고 배를 타고 나가 낚시로 소일을 하는 게 전부였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그에게 낚시는 시간을 보내기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바닷속은 그에게 점점 더 신세계로 다가왔다. 육지에 사는 것 보다 더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 바다에 대한 관심은 그의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된다. 그가 낚은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그의 관념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또 다른 세상이었다.
만약 그런 생활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그래서 물고기 이야기만 담았다면 우해이어보는 그렇게 빛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바다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은 그가 알지 못했던 바닷속 만큼이나 새로운 곳이었다. 그 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많은 이야기를 시로 남겼고 그 시는 오늘날 지역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로 전해진다.
" 그 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많은 이야기를 시로 남겼다." 이렇게 적고 끝을 내면 좀 싱겁다. 그렇다면 김려가 새로운 세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그는 기웃거리지 않고 서민들과 함께 어울렸다. 같이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숭배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어떤 기원을 하는지 어떤 풍습을 이어가는지 생생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당연히 먹고 사는 일이다. 부자는 배고픔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은 배부름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는 말은 슬프지만 정직한 이야기다. 그의 시 가운데는 탐관오리의 착취에 고통 당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권력의 부조리함을 비판하는 글도 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고통이 담긴 글에서는 따뜻한 인간애를 엿보게 된다.
밤 들자 부엌데기들이 은근히 탄식하며
을해년 굶어 죽던 일을 저마다 이야기하네.
밀싹은 다 말라 죽고 보리싹마저 얼었으니
올해 굶주림은 어떻게 견뎌야 하나.
대동미를 채워 놓느라고 머리가 다 세어지는데
익은 곡식으로 모자라 청대채로 이러하니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이 지금 이러하니
소보 당년에도 이런 때가 있었던가
막걸리 한 사발을 앞에 두고 젊은 시절 과거 실패담을 늘어놓는 노인의 회한에 고개를 끄덕여주거나, 주막 할멈의 죽음 앞에 마음 아파 하거나, 동네 아낙네의 넋두리를 들어주며 장단을 맞춰 주거나,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하는 일상들이 그에게도 마을 사람들에게도 다 보람있고 고마운 일이 아니었을까!
그의 독특한 연애담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부령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만난 연희라는 여인은 관기였다. 관기가 어떤 여자인가, 죄인이나 수령의 노리개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 수 있는 게 가능한 남자들의 속성을 볼 때 그런 여자에게 연정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페미니스트이거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순정파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시문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짐작해보면 김려는 대단히 인간적인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런 정서가 본래 타고 난 것인지 유배 생활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주어졌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는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짐작을 해볼 수가 있다. 유배 생활 동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나 나라와 임금을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뜻을 담은 다른 유배인들이 남긴 글과 비교해 보자면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타고났던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들 한다. 그래서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걸 인정 하는 것이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재미있지 않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김려의 삶을 보면 세상은 적당하게 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유배라는 불행을 당하게 되고 그 불행을 통해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되니 말이다. 불행이라는 포장을 벗기지 않으면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말처럼 유배는 김려에게는 불행이라는 포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포장 안에는 김려 개인에도 그를 만났던 지역 사람들에게도 다 행운이라는 선물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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