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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딴에 이야기

제암산 철쭉~동백숲처럼 신비스럽더라

by 달그리메 2014. 5. 14.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꽃을 좋아합니다. 겨우내 얼었던 몸이 풀리면 이른 봄 산수유 축제를 시작으로 늦은 가을까지 여기저기 꽃 축제는 이어집니다. 매화축제, 벚꽃축제, 진달래축제, 할미꽃축제, 유채축제, 코스모스축제, 국화축제, 야생화축제... 거기에다 튜울립이나 장미를 심어놓고 축제를 하기도 합니다.  

 

꽃은 꽃이라서 다 제각각 예쁘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철쭉꽃이 예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장난삼아 철쭉을 두고 이런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울긋불긋 아웃도어 차려입고 관광버스 타고 놀러가는 아지매들 같은 꽃"이라구요. 조경으로 심어놓은 담부랑에 피어있는 철쭉을 보면 웬지 질기고 헤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장흥 군청에서 이번에 경남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암산 철쭉을 알리는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그 행사를 '해딴에'가 진행을 했습니다. 제암산을 오르면서도 즐기러 간다는 생각보다는 일을 하러 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즐거운 기대없이 산을 올라갔습니다.

 

 

제암산 오르는 길은 임도로 시작됩니다. 맨질 맨질 아주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올라가는 곳곳에 철쭉이 피어 있습니다. 점점 더 짙어져가는 녹음이 눈을 시원하게 합니다. 나무 그늘이 이어지거나 끊어지거나 하면서 임도는 이어집니다.

 

 

산으로 오르는 일행이 멀리 보입니다. 그 앞으로 산나물을 캐서 머리에 이고 내려오는 아지매가 있습니다. 제암산은 어떤 이에게는 휴식과 힐링의 장소로 또 어떤 이에게는 삶의 터전이 되고 있습니다. 자루 안에 들어 있는 나물은 고사리입니다. 아래로 내려가면 삶지 않은 생고사리를 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다듬어진 임도는 간재로 오르는 마지막 산길 입구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등산을 즐기시는 분은 좀 가파르기는 하지만 초입부터 바로 산길로 접어들어 오르셔도 됩니다.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간재에 오르는 처음 산 길을 만나게 됩니다. 경사로 치자면 임도가 훨씬 완만합니다. 그런데 걷는 재미는 산길이 임도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 임도는 돌아가기도 하거니와 단조롭고 지루합니다. 일행들이 첫 진입로를 따라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산을 오르는 나무 그늘이 아주 시원해보입니다. 나뭇잎이 내뿜는 연두 빛깔이 가장 아름답게 무르익었습니다. 조금 더 지나면 나무 그늘은 더 무성해지겠지만 연한 연두의 맛이 지금 만은 못합니다. 연두는 꽃과는 다른 느낌으로 마음을 달뜨게 합니다.

 

오르다 보면 땀을 씻을 수 있는 물길도 만나게 됩니다. 오르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어도 좋은 장소들이 곳곳에 보이지만 걸음을 재촉해서 산을 오릅니다.

 

 

 

사자산과 철쭉평원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간재 삼거리에 이르면 꽃보다 먼저 사람들을 반기는 이가 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입니다.

 

아저씨는 산을 오르느라 목이 마른 사람들에게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팔기도 하지만 길을 안내해주는 안내인이 돼 주기도 합니다. 처음 산을 올라 방향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반가운 분입니다.

 

 

철쭉산에는 꽃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꽃이 진 자리에는 잎이 푸르게 짙어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해 같으면 이 맘 때쯤이면 산이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올 봄은 참 유난스러웠습니다. 이상 기온으로 인해 봄 꽃들이 한꺼번에 와~~~~피웠다가 져버렸습니다. 한바탕 꿈처럼 그렇게 피웠다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한꺼번에 정신없이 피어난 꽃들에 취해 꽃멀미를 하면서 한편으로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구가 뜨거워져서 생긴 일이라고 걱정들을 합니다. 순리대로 꽃이 피고 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해준  봄이었던 것 같습니다.

 

    

 

철쭉 평원에 서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이쪽 저쪽 마을이 한 눈에 담깁니다. 꽃이 한창일때였으면 돌아도 안봤을 시든 꽃잎을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꽃이 진 것만 서운해하면서 터덜터덜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걷다보니 양쪽으로 어른 키보다 더 큰 철쭉이 마치 터널처럼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산 아래에서 내가 본 철쭉과 제암산 철쭉은 종류가 전혀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비슷한 느낌이지만 다른 벚꽂과 매화처럼 말입니다.

 

 

매년 4월 하순에 피기 시작해서 5월 중순까지 온 산을 진분홍빛으로 물들이는 제암산 철쭉은 이남에서는 가장 먼저 꽃이 피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사자산 등성이와 곰재산, 제암산 정상을 지나 장동면 큰 산에 이르기 까지 총 6km 길이에 이르는 남쪽에서 최대의 야생 철쭉 군락지로 손 꼽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막상 눈으로 보니 규모가 어마어마 했습니다. 

 

철쭉 능선을 내려다보며 꽃이 지고 없는 자리에 서서 눈을 감고 진홍빛 제암산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일렁였습니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과 다르게 마음으로 그려보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철쭉 터널을 따라 능선을 올라가니 채 지지 않은 철쭉이 마지막 꽃잎을 매달고 있었습니다. 비록 꽃이 지긴했지만 아쉽지 않을만큼 시원한 바람과 좋은 느낌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바위에 올라 멀리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쉼 호흡을 합니다. 

 

 

흔히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 한가지에 매이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구요. 산을 내려오면서 저는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이게 정말 철쭉이란 말이지~~~~~~!!!

 

정말 철쭉이 맞나 싶어서 나무를 만져보고 잎을 들여다 봤습니다. 정말 철쭉이 맞았습니다. 쭉쭉 뻗어올라간 가지가 마치 동백숲 같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내가 철쭉을 너무 얕본 것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들 꽃이 진것만 아쉬워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꽃이 만개를 했을 때 왔으면 저는 이 철쭉 나무의 고고함을 절대로 이처럼 감동스럽게 보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꽃이 주는 화려함에 감추어진 또다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면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을 보라고 합니다. 앞모습은 출을 할 수 있지만 뒷모습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그 순간에는 참 좋았는데 돌아서면 별로 생각이 안나는 사람도 있고 그때는 그냥 그렇구나 그랬는데 두고 두고 생각이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 기대가 없었던 철쭉, 기대없이 올랐던 제암산, 꽃 진 것에 대한 서운함,  그런데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면서 마음이 열리고, 마침내 잊히지 않을만큼 새겨진 제암산의 맑은 기운과 무성한 철쭉숲~~~!! 내려오는 마지막 길목에 진한 꽃분홍 철쭉이 아쉬운 듯 피어있습니다. 동백숲을 닮은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제암산 철쭉을 내년에 꼭 다시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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