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부와 권세를 누리며 사는 삶과 이런 저런 현실의 제약으로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지만 죽어서 이름을 떨치는 삶, 이 두 가지 중에서 사람들은 어느 편에 더 많은 표를 덜질까? 물론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옳고 그름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만약 선택권이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살아서 부와 권세를 누리는 삶이 더 좋다는 쪽이다. 후세에 이름을 남길만큼 열심히 살 힘이 없기에...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기에...비록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진다고해도 지금, 오늘, 현재, 현세에서 누릴 수 있다면 한 세상 태어나 잘 살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고운 최치원의 삶을 들여다보면 조금 속물적인 기준으로 봐서 생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능력만큼 누리면서 살았던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을 놓게 만든 것이 각박한 세상 인심었는지 그 스스로의 힘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더 크고 더 많은 것을 얻은 인물이 최치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쌍계사에 있는 진감선사대공탑비 문장과 글씨를 최치원이 직접 썼다.

 

요즘으로 치자면 최치원을 한류 스타에 비기면 적당할까! 어쩌면 그보다 더 유명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요즘에야 인터넷이나 매스컴의 발달로 일반인조차 널리 알려지는 게 어렵지 않지만 인터넷이나 매스컴은 물론 이동 수단조차 변변찮았던 시절에 신라뿐만 아니라 당에까지 이름을 날렸으니 한류 스타의 원조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최치원은 타고난 천재였다. 문장가로도 이름을 떨쳤지만 유불선의 뿌리를 밝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로 하여금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든 것은 아마도 스스로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만약 태평성대에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그 또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13살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요즘으로 치자면 조기유학인 셈이다. 그 당시에는 최치원뿐만이 아니라 유학길에 올랐던 아이들이 많았다. 한 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학동들의 숫자가 200명을 넘었던 때도 있었다는 기록을 읽은 기억이 난다.

 

조기유학이 성행한다는 것은 어느 시공을 막론하고 그 사회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고 자란 고국이 살기 좋은 곳이라면 어린 나이에 굳이 유학을 떠날 까닭이 없다. 학생이 배워야 할 것은 태어난 모국의 정서이고 언어이며 그 곳에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는 일이다. 

 

그런 것들을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잘 살 수 없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이 치열한 경쟁이다. 조기 유학은 경쟁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서고 싶은 욕망이거나, 경쟁을 피해 더 살기 좋은 곳을 선택하는 일종의 도피 행위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천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세상에서 듣고 새겼던 모든 것을 씻어내는 의식을 치렀다는 세이암

 

최치원의 아버지는 영특한 아들이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신라에서 6두품으로는 그 재주를 마음껏 펼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0년 안에 과거에 급제를 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라는 모진 말로 채찍을 가했던 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인지 최치원은 당나라로 건너간지 5년만에 빈공과에 장원급제를 한다. 아버지의 작전이 성공을 한 셈이다.

 

장원급제를 한 그의 재능은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했던 토황소격문을 적는 등 당나라에서도 빛을 발했다. 최치원의 글 읽는 소리가 당나라 어디에서 울려퍼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니 중국으로 건너가 부와 명예를 거머쥔 지금의 한류 스타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늘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당나라 입성에 성공한그의 앞에 놓여진 것은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좀 식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인생만사 세옹지마라고 하지 않던가. 국운이 기울어가는 당나라의 혼란스러움 앞에서 그의 능력은 빛을 잃었고 그 속에서 겪게 되는 고독과 현실의 한계를 시로 달래던 그는 드디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의 귀향은 금의환향이었을까? 국운이 기울어가기는 고국인 신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경계하는 벼슬아치들로 인해 그가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자리는 지방 한직이 전부였다. 당나라에서 이방인이었던 최치원은 고국인 신라에서도 골품제도로 인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살아야 했다. 인생무상을 절감한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 그의 인생 스토리는 대체로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그런데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신라의 신분제도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신라로 돌아온 그에게는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그에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그가 모든 것을 놓게 되는 것은 당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운 신라 말 정치적인 상황에 회의를 느껴서이지 신분제도에 떠밀려서가 아니라는 것이 더 맞다는 이야기다.

 

푸조나무

그렇다면 이런 가정을 해보는 건 어떨까? 인생에 만약은 없다고 하더라만 그가 만약 태평성대에 태어났다면 그래도 그의 천재성은 모든 것을 놓게 만들었을까?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그는 그야말로 위인이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보다 인간이 더 하기 힘든 일은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가 태평성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후세 사람들은 스스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환상을 그를 통해 이루고 싶어한다. 

 

그와 관련된 장소에는 어김없이 신선으로 환생한 최치원이 있다. 세상에서 보고 듣고 새겼던 모든 것들을 털어내는 의식을 치른 세이암과 신발과 모자와 지팡이를 벗어던지고 신선이 되었다는 흔적이 푸조나무로 남아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모든 사람들은 믿지 않는 이야기 속의 최치원의 위대함을 믿는다. 세이암이나 푸조나무로 환생한 최치원과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에 새겨진 최치원은 사람들에게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게 만들어준다.

 

불안전한 시대에 태어나 그의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천재 최치원의 삶은 그러나 해피엔딩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선이 되어 자유로웠던 그에게도, 아무 것도 내려놓지 못하고 그의 자유로움을 갈구하는 후세 사람들에게도... 비록 살아 생선 복록을 누리고픈 속물일지언정 길을 가다 그의 흔적들은 만나게 되면 그의 위대함 앞에 경건하게 고개를 숙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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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그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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