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

남해에 가면 남면집을 찾아가세요

by 달그리메 2014. 11. 5.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고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스토리랩' 두번째 이야기는 막걸리 입니다. 지역마다 특색있는 막걸리가 있지만 이번에 찾아간 곳은 남해입니다. 남해하면 유자막걸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겁니다. 그런데 너무 알려진 것은 좀 재미가 없지요.

 

그래서 작지만 소소한 것, 소소하지만 귀한 것이 뭐가 있나 기웃거리다 아주 재미있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남해 읍내 시장 근처를 지나다보면 '남면집'이라는 낡은 식당 하나가 눈에 띕니다. 눈에 잘 띄는 것은 아니구요.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이런 집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치기 딱 좋습니다.

 

그런데 이 집을 어떻게 발견을 했냐구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허름한 문에 '전통 농주' '파전'이라고 붙어있었거든요. '전통 농주'라는 글자가 사람의 마음을 확 붙잡았습니다. 그냥 '막걸리' 이렇게 적어놨다면 아마도 남면집을 영영 들어가지 못했을 뻔 했습니다.

 

남면집은 딱 막걸리만 팝니다. 다른 음식은 팔지 않습니다. 아 참! 안주로 파전을 파니까 딱 한 가지는 아니네요. 그런데 이 파전이 참 특별합니다. 보통 파전하면 파를 가지런히 줄세워 놓고 오징어 새우살 올리고 밀가루 물 풀어서 기름 넉넉히 두르고 굽습니다.

 

조금 실력이 딸리는 사람이 굽게 되면 밀가루 냄새가 나거나 파에 밀가루가 말려 올라가거나 기름이 질척해서 제 맛이 나지 않는 것이 파전이지요. 쉬워보이지만 테크닉과 노하우가 필요한 음식이 바로 파전이라는 것을 음식을 해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그런데 남면집 파전은 맛이 아주 좋습니다. 노하우는 밭에서 직접 기른 파와 바로 옆에

있는 시장에서 구입한 싱싱한 홍합입니다. 아낌없이 투척한 홍합 덕분인지 풍미가 일품입니다. 별로 그럴듯한 모양새는 아니지만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젓가락을 멈출 수 없는 중독성이 있더라구요. 제가 먹어본 파전 중에서는 단연 으뜸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라면 설명이 될라나요.

 

찌짐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주인공인 막걸리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찌짐 맛이 그 정도라면 남면집 전통 농주의 맛은 어떨까 궁금하시지요? 짠~~~!! 근데 막걸리 맛이 좀 들죽 날죽이긴 해요. 어떤 날은 누룩 냄새가 많이 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약간 단맛이 많이 받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간이 딱 맞아 입에 짝짝 들러붙기도 하고 그렇지요.

 

맛이 왜 그렇냐고 했더니 규격화된 공장에서 만들어내지 않고 직접 만들다보니 오만가지에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숙성 정도에 따라, 물 양에 따라, 손 맛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심지어 그 날 그 날 기분에 따라 술맛이 그냥 지마음대로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한다네요. 그래도 전통 농주의 기본은 가지고 있다는 게 할머니의 자부심입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그냥 술이다 하고 마시면 다 술이 아니냐고 하시는데 그 말에 한 표 던집니다.

 

남면집 주인 할머니는 올해 나이로 이른 아홉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공치사 하나도 더하지 않고 고생 하나도 안하고 살아온 복노인처럼 살결도 곱고 허리도 짱짱하십니다. 립써비스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그리 말을 하더군요. 나이보다 건강해 보이시고 고우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니 손사래를 치십니다.

 

사연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마는 남면집 할머니도 굽이굽이 건너온 세월이 만만찮다고 입을 엽니다. "마흔 중반에 남편 잃고 자식 다섯을 키운 서러운 사연을 누가 알꼬!" 칭찬 끝에 이어지는 신세한탄이 곱상한 모습과 다르게 진합니다. 다섯 자식들 끼니 때마다 입에 넣을 거 장만하느라고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합니다.

 

남면집 할머니뿐만아니라 그 시설 어르신들 무지 고생하고 살았지요. 특히 할머니들요. 할아버지들이 한량 노릇하면서 태평 세월을 보낼 때 우리 할머니들 눈물 바람 마음 고생 잘 날이 없었다고 너도 나도 그럽니다. 그래서 할머니들 몇 만 모여도 나오는 이야기가 있지요. 내가 살아온 세월 책으로 엮으면 몇 권은 된다고 남면집 막걸리 할머니의 삶도 책 몇 권은 족히 나올 정도인 모양입니다. 

 

 

어찌어찌 모진 세월을 다 흘려보내고 지금은 이 곳에서 막걸리 장사를 하면서 자리를 잡고 사십니다. 막걸리를 만들어 팔아서 먹고 살기도 하고, 조금씩 돈이 모이면 자식들한테 보태주고 그런답니다. 공부도 많이 못 시키고 고생 시킨 죄로 죽을 때까지 돈을 모아서 보태주고 싶답니다. 그게 부모 마음이지요. 장사를 하고 있는 가게도 말걸리 만들어 팔아서 장만을 했다고 하니 막걸리가 할머니에게는 목숨줄이나 마찬가지네요.

 

막걸리는 참 재미있는 술입니다. 술이지만 술이 아니기도 하구요. 누구에게는 밥이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돈이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삶이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추억이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휴식이 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막걸리와 함께 살아온 어르신들에게는 참 각별한 그 무엇이 아닌가 싶네요.

 

시간이 지나자 남면집은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일행도 있고 혼자 오신 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면면이 살펴보니 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입니다. 막걸리 한 사발 앞에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슬그머니 끼어드니 아주 반갑게 환영을 하십니다. 나이 들어가면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참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젊은 기운이 좋긴 하지요. 

 

막걸리 한 되를 시켜 잔을 권하니 마다하지 않고 받아주십니다. 파전도 하나 더 시켜 권합니다. 파전 값이 그리 비싸지는 않아서 좋습니다. 3천원 정도면 됩니다. 조금 지나자 또 다른 어른신이 들어옵니다. "여기 막걸리 한사발만 주소" 합니다. 한 잔을 달게 들이키고는 천 원을 내고는 쌩 나가십니다. 

 

 

이 곳에서는 막걸리를 잔으로 팝니다. 옛날에 대포잔이라고 해서 팔았지요. 지금은 병에 담아 3천원을 받는데 양이 많아서 남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아직도 막걸리를 잔으로 나누어서 팔고 있지요. 각박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천 원 한 장으로도 넉넉해 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주량이 적으신 분에게도 딱 좋습니다. 

 

안주는 할머니가 만든 김치와 나물 무침 정도가 전부입니다. 전을 시키는 것은 아주 호사스러운 안주에 속하지요. 시간이 지나자 다시 사람들이 모입니다. 어느새 남해 여기 저기에 사시는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아흔이 넘은 어르신이 자건거를 타고 나타나서 막걸리 한 사발을 꿀꺽꿀꺽 들이키십니다. 짬이 날 때마다  와서 이렇게 한 잔 마시는 막걸리가 꿀맛이라고 그러네요. 아흔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낯색이 좋고 건강해보입니다. '행복이라는 게 거 한 게 아니네. 사는 게 참 정말 별 거 아니네.' 어르신들의 편안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들이 스치네요.

 

막걸리 한 잔을 앞에 두고 농사 이야기도 하고 안부도 묻고 세상 이야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러고 보면 남면집 할머니가 파는 것은 막걸리가 아니었네요.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가장 힘든 건 외로움이라고 그러더라구요. 남면집은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풀어내는 넉넉한 공간이었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곳이었지요. 젊은 사람과 어르신들이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장소였지요.

 

세상에는 귀한 술도 많습니다. 비싼 술도 많습니다. 그런데 남면집에서 파는 막걸리 한 잔보다 더 귀하고 좋은 술이 어디 있을까요! 남해 남면집에 가면 천 원 한 장으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정겨운 막걸리를 마실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산다는 게 뭔지 행복이 뭔지 알게 됩니다. 막걸리는 그렇게 우리네 삶과 함께 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함께 할 소중한 그 무엇이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