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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태극기집회,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궁금하다

by 달그리메 2017. 2. 22.

지난 토요일 하루 동안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 두 곳을 다녀왔다. 촛불집회는 주말마다 참여하지만 태극기집회는 텔레비전 화면으로만 봤지 실제로 현장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집회 장소 주변에는 나처럼 현장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해서 구경을 하듯이 모여든 사람들도 드물지 않았다.

 

 

 

처음 생각으로는 그 속에 들어가서 분위기를 생생하게 경험해 볼 참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기선 제압을 당해버렸다. 장소가 협소하다보니 발디딜 틈이 없었고, 참여한 사람들의 결기에 찬 표정이며 흔들어대는 태극기의 물결에 기가 질려버렸다, 유연하게 즐기는 촛불집회의 분위기를 상상하고 나온 것이 실수였다.

무리에서 빠져나와 비교적 현장이 잘 내려다보이는 커피집을 찾아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마침 태극기를 손에 쥔 일행들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일행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자 그들의 목청이 한층 높아졌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가 적당한 틈을 봐서 대화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보고 싶은대로 보는 사람들

왜 집회에 참석하지 않고 여기 계시냐고 묻자 현장에 나가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차마 나가지 못하겠다고 그런다. 태극기집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일당을 받는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다. 적어도 그들 나름대로의 절실함이나 안타까움은 있다. 그것이 얼마나 객관적인 기준에 의한 것인지는 접어두고라도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너무 불쌍하다는 말에 내가 물었다 "그러면 박근혜는 잘못한 게 없는 건가요?" 목소리는 최대한 공손하고 무심하게~~ 격하게 반응을 했다가는 이런 분위기에서는 답도 없이 낭패를 볼 게 뻔 하기 때문이다.

일행 중 한 사람은 질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딨냐? 다른 대통령에 비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오히려 깨끗하지. 아~ 잘못한 게 있긴 하지 최순실에게 휘둘린 건 잘못한 거지."

"그런데 최순실이랑 박근혜는 한 편이 아닌가요?"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슨 말이야 고영태랑 최순실이 한 편이지 대통령은 불쌍하게 당한 거라고." 이런 반응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태극기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지금 상황을 인식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들의 가장 큰 착각 혹은 잘못은 국민들이 부여한 권력을 타인에게 양도한 무능함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박근혜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감정은 있는 그대로 보기를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들이 보고 싶은대로 보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를 보지 못하고 과거에 매달리는 사람들

태극기 일행은 박근헤 무죄를 주장하다 갑자기 과거로 돌아간다 "1960~70년대 얼마나 배고프고 서러운 세월을 산 줄 아느냐? 밀가루를 풀어서 대여섯이나 되는 자식들 배를 채울 때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들을 위해서 어떻게 노력을 했는데 요즘 젊은 것들이 그런 시절을 알기나 해?" 아야기 끝에 눈물까지 글썽인다 

그렇지 한 세상 살다보면 누구나 사무치는 기억이 있기 마련이지. 힘겨운 시절을 살아낸 어르신들의 사무침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과거의 기억 속에 각인된 박정희에 대한 나름의 보은을 박근혜를 통해 하려는 것이다. 태극기를 손에 쥔 나이 든 사람들은 대부분 박정희와 박근혜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그들이 말하는 빨갱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황망해도 꿋꿋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 박근혜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지금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그게 다  작전 세력에게 완전히 엮인 거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그 작전 세력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빨갱이들이라고 거침없이 내 뱉는다. 빨갱이들이 국회 곳곳에 자리를 잡고 정국을 완전 장악해버렸다고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박근헤를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이 언론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동안 새누리당과 박근혜 편에 서서 부역자 노릇을 톡특히 하던 조중동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물었더니 세가 불리해지니 조중동도 그 쪽 편에 완전 붙어버린 거라는 깨알같은 논평도 잊지 않는다.

일행은 들고 온 태극기를 커피집 유리창에 붙이려고 했다. 다행히 풀이나 스카치테이프가 없는 관계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자리를 털며 던지는 한마디 "이제 우리는 늙어서 살 날이 많지 않지만 우리 자식들이나 손자들 살아갈 세상이 너무 걱정스럽다. 큰 일이다..." 진짜 큰 일은 큰 일이다.

1시간 반 넘게 집회가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의 표정은 결연했고 표현은 과격했다. '죽이자' '죽여라' 등등의 발언이 끊임없이 터져나왔다. 죽이고 싶을만큼 분노하는 대상은 손석희, 김제동, 문재인 등 그들이 규정지어놓은 빨갱이들이다.

중간중간 부르는 노래도 분위기를 결연하게 이끄는데 한 몫을 한다. '아 대한민국', '아름다운 강산', '애국가', 그리고 제목을 알 수 없는 군가들... 이 노래가 이렇게 쓰여지려고 만들어졌을까 노래를 만든 사람들이 이 장면을 봤으면 분명 이런 자괴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집회 중간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묵념을 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에 손을 얹은, 고개를 떨군 노인들의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얼굴에서 알 수 없는 연민마져 느껴졌다. 그들이 생각하는 애국은 도대체 무엇일까! 왜곡된 애국심을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용하는 보수 단체들은 그들의 감정을 더욱 다그치는 발언과 선동을 이어갔다.

다름을 인정하라는 이야기를 종종한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태극기를 흔들며 그들이 걱정하는 국가의 안위와 후손들이 살 세상에 대한 염려는 촛불의 반대편에 선 다름이 아니라 잘못된 인식이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지금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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