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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창녕,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참 재미있다

by 달그리메 2016. 7. 26.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이 불구경 싸움구경이라지요. 그런데 저는 사람 구경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나이가 들면 조용한 시골에서 자연을 벗삼아 조용히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는 반대로 시끌벅적한 시장 근처에서 살고 싶습니다.

 

세상에 내 마음 같은 이가 드물다지만 그래도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가장 큰 위로를 받으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는 제가 즐기는 여행 중의 하나가 바로 장터 구경입니다. 저처럼 사람 구경, 시장 구경 좋아하는 분들에게 아주 좋은 여행 코스가 창녕에 가면 있습니다.

 

이제는 시골 구석구석까지 마트가 들어서서 장터가 점점 사라져가지요. 창녕은 6만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적지 않은 곳이지만 5일장이 크게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녕 장터를 좋은 여행지로 꼽는 까닭은 규모도 규모지만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장 구경뿐만 아니라 장터 주변에 있는 귀한 문화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보기드문 곳이거든요.

 

 

창녕장을 중심으로 조금 윗쪽으로 올라가면 석빙고가 있습니다. 모양이 왕릉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왕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석빙고는 양반들이 썼던 냉장고였는데 윗쪽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물건입니다. 창녕에 하나가 있고 영산에도 또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부분의 문화유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규모가 크고 화려할수록 그것을 만들고 유지헸던 백성들의 고초도 그만큼 컸다는 것이지요. 석빙고도 마찬가집니다. 

 

후세 사람들은 물빠짐을 좋게 하기 위해 개울가 옆에 자리를 잡고 경사지게 만든 석빙고를 두고 조상의 지혜라고 칭송을 합니다. 그러나 양반들의 입맛을 위해 추운 겨울 강가에서 얼음을 깨고 운반을 해야했을 백성들의 고통까지 짐작하는 이가 드물지요. 유물이나 유적를 보면서 최대한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은 재미를 훨씬 높이는 일이 됩니다.

 

 

석빙고에서 조금 아래로 걸어내려오면 창녕장이 나옵니다. 창녕장은 3일 8일 열립니다. 교통이 발달하고 매스컴의 힘이 커지면서 변한 것 중의 하나가 어디를 가도 사는 모습이 비슷해졌다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지역마다 열리는 장이 특색이 있었지만 이제는 사는 모습만큼이나 장터 모습도 비슷합니다.

 

창녕장의 대표선수는 당근 수구레국밥이지요. 국밥이 정말 먹음직스러워보이지 않나요?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변해도 수구레국밥이 창녕장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잔을 나누는 어른신들의 모습에서 옛날 장터의 정겨움이 느껴집니다. 창녕장에 오시면 꼭 한 번 드셔보시길...

 

장을 돌아다니다 네 분의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할머니들이 계셨지만 특별하게 눈에 들어온 할머니들 이야기입니다. 맛있는 음식들이 많지만 그래도 주전부리로는 뻥튀기가 최고지요. 곡물을 맡겨놓고 튀겨지기를 기다리는 두 할머니의 느긋한 모습에서 부족할 것도 넘칠 것도 없는 노년의 무난함 삶을 엿보게 됩니다.

 

또 다른 할머니는 텃밭에서 키운 채소로 판을 벌려놓았는데 참 조촐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몸이 불편하신 모양입니다. 그 모습이 짠해서 부추 두 묶음과 고구마줄기 한 그릇을 8천원에 샀습니다.

 

잔돈 이천 원을 내 주시며 뿌듯하게 웃으시는 모습 속에서 예사로 쓰는 만원짜리 한 장의 가치가 할머니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부추는 이튿날 보니 물개져서 먹지 못하고 버렸습니다. 고구마줄기는 김치를 담아서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마지막은 옥수수를 삶아와서 파는 할머니입니다. 부추와 고구마줄기를 팔던 할머니보다 훨씬 더 씩씩해보였습니다. 장터를 터전으로 삼아 자식 몇은 느끈히 키워냈을 기운이 느껴집니다. 옥수수는 제가 가장 잘먹는 음식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두 묶음을 샀습니다. 그 자리에서 옥수수 네개를 먹어치웠습니다. 제가 장 구경을 좋아하는 까닭은 이런 즐거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맛있는 것도 먹고 사람살이를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말입니다.

 

배도 채우고 장구경도 얼추 했으면 좀 다른 구경을 해도 좋겠지요. 장터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아주 그럴듯한 탑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냥 탑이구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게 이래뵈도 국보입니다.

 

국보와 국보가 아닌 것이 어떻게 차이가 날까요? 우선 자태를 봅니다. 그리고 탑을 이루고 있는 돌의 규모도 살펴봅니다. 사람이든 탑이든 겉모습과 겉모습을 이루고 있는 속이 단단해야 훌륭합니다. 술정리동삼층석탑은 조각을 이어붙어서 만든 게 아니라 크다란 바위가 통쨰로 되어있습니다. 

 

정갈하면서 기품이 있습니다. 단아하면서 씩씩한 기운이 동시에 느껴지는 멋진 탑이지요. 이런 탑이 장터 근처에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입니다. 경주 불국사에 있는 다보탑 석가탑에 뒤지지 않을 정도라니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감상하기를 권합니다.

 

 

 

석탑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곳에 하병수 초가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그냥 지나쳐갑니다. 오래된 집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누릴 수 있다.' 여기서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잘 다듬어진 마당이 시원하게 반깁니다. 지붕 색깔이 회색을 띠고 있는데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질문을 하면 대개 짚이라고 답을 합니다. 그런데 억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창녕은 습지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아득한 옛날 장터 근처도 습지였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보게 됩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이 금방 허물어지는 까닭이 사람에게는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다른 해충들이 살지 못할만큼 독해서라고 하니 인간이라는 존재가 징하기는 한 모양입니다. 하병수 초가에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시는데 그 덕분에 보존이 잘 되고 있습니다.

 

돌담 아래 무심히 피어있는 여름 꽃이 따가운 햇살 아래 만개를 했습니다. 디딜방아도 그대로 있고 곳곳에 옛날 물건들이 보물찾기 하듯이 놓여져 있습니다. 마루에 걸터앉아 기념 사진 한장 찍어두면 훗날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구경도 하고 주변에 있는 이런 저런 유물들도 돌아봤습니다. 그런데 아직 해는 많이 남아있고 뭔가 아쉽다 그런 생각이 들 때 강추하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바로 창녕 고인돌입니다. 고인돌하면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으뜸이지요. 70% 가량이 우리나라에 남아있다고 하니까요. 요즘은 나비가 워낙 길 안내을 잘 하니까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곳 고인돌은 일단 규모가 어마어마 합니다. 그런데 이 고인돌이 평지에 있지 않고 산 중에 있습니다. 이 돌이 여기에 놓여진 까닭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야기꺼리가 충분합니다. 아름다운 꽃이나 단풍은 눈에 담기는 즐거움은 있지만 딱 그만큼입니다. 고인돌 앞에 서면 눈에 담기는 것에 비해 생각들이 무지 많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여행도 좋습니다. 창녕 참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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