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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저는 할머니들이 무섭습니다

by 달그리메 2010. 11. 29.


                    

                          화무십일홍이라했습니다. 
                          꽃망울의 화려함에 매이지 말고
                          튼실한 열매 맺음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삶이 
                          진정 아름답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민일보 인터넷 신문을 열었더니 
"나이듦에 대한 공포와 즐거움" 이라는 글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살씩 나이 먹어갈수록 세월이 금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느낌탓인지 나이듦이라는~ 제목에 먼저 눈길이 갔습니다.

글의 시작은 이랬습니다. "우리 사회는 나이듦에 인색하다. 나이들면서 가지게 되는 다양한 경험, 사고의 유연함, 포용력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이만큼 읽고는 잠시 멈춰 생각을 해 봤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가 나이듦에 인색할까? 꺼꾸로 말을 하자면 나이 들수록 유연해지고 포용력이 생겨날까? 그러면서 근래에 경험했던 몇가지 일들을 떠올렸습니다.

첫번째 기억입니다. 거제도 시외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마도 화장실 청소를 하시는 할머니에게 좋은 글귀를 새긴 액자를 화장실 안에다 걸어놓는 일을 시킨 모양이었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할머니는 시종일관 불만이었습니다. 말을 하자면~ 이런 씨잘데기없는 일을 왜 하느냐는 겁니다. 이런데 쓸 돈이 있으면 늙고 힘없는 자기같은 사람들한테 돈을 더 줘야 하지 않느냐고 나라가 이 모양이니 살기가 어렵다고 화장실 안이 울리도록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지저분한 화장실을 치우면서 어떤 x년이 화장실도 제대로 못쓰냐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사람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습니다. 볼일이고 뭐고 불편해서 있지를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정당하게 보수를 받고 일을 하면서도 늙은이를 부려먹는다고 여기는 할머니의 기세가 참으로 등등했습니다.

두번째 기억입니다. 진동 시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리저리 시골 장터 풍경을 돌아보면서 아주 재미있는 광경을 발견했습니다. 할머니가 해변에서나 볼 수 있는 비치 파라솔을 펴 놓고 그 아래에서 뭔가를 팔고 있었습니다.

팔고 있는 게 뭔지 물었더니 동백기름이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동백기름을 머리에 바르곤 했는데 요즘에는 어디에 쓰일까 궁금했습니다. 어디에 쓰는지를 물었더니 머리에 바른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동백기름을 머리에 바르나 싶었습니다.

만약 다른 곳에 쓰인다고 했으면 8천원 한다는 기름을 샀을 겁니다. 근데 머리에 바르는 용도라면 사서 쓸 곳이 없겠다 싶어 살려고 했던 마음을 거두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내가 기름을 살 거라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봉투에 주섬주섬 담기에 안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지도 않을 거면서 귀찮게 묻기는 왜 묻냐고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습니다. 진짜 쪽팔렸습니다. 풍경이 특이해서 사진을 담고 싶었던 마음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쓰다보니 할머니들을 너무 몰아부치는 것 같아 나머지 이야기는 쓰기를 생략합니다. 하려다 그만두는 이야기도 앞의 이야기와 상황만 다르지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외국에 이민을 가서 살던 분이 한국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무서워서 지하철을 못타겠다구요. 노약자석이 텅텅 비어있어도 감히 앉을 생각을 못하겠더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석에 앉아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노인이 서 있는 걸 모르고 잠시 졸기라도 하면 죄인 취급을 하더라고 했습니다.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졸지에 배은망덕한 인간이 된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정말 노인 천국같다고 했습니다. 

물론 모든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전제를 두고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그 또한 편견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처음 시작에서 의문을 던졌던 것 처럼 다양한 경험, 사고의 유연함, 포용력이 과연 나이 들어감과 비례할까 싶은 거지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표현을 하자면 몸과 마음에 물기가 빠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물기가 없어지면 메말라집니다. 메마른 곳에서는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합니다. 유연함도 포용력도 말입니다. 그러기에 나이가 들수록 부지런히 물을 주고 가꾸어야만 생각도 행동도 너그러워지고 풍성해집니다.

대한민국처럼 급격하게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나라가 드물다고 했습니다. 전체 인구에 비해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앞으로 점점 더 높아질 것입니다. 이런 지경에 너도나도 절로 먹는 나이듦에 대한 대접을 받기만 하려든다면 정말 젊은이들이 살기가 힘들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글을 계속 읽어내려가다보니 중심 내용이 그랬습니다. 여자들을 아름다움이나 성적인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이들어가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불리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잘못된 고정관념의 탓도 크겠지만요. 무서운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그 책임을 사회의 통념에만 돌리기에는 분명 거시기한 점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꽃이 진 자리에 튼실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몫이 아닐까 싶은 거지요.

젊음을 가꾸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일이 아닐는지요... 세상에는 흐르는대로 맡겨두어 그저 얻어지는 게 없다는 생각을 최근 경험한 할머니들의 모습을 통해서 새삼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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