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

부를 누릴 것인가, 이름을 남길 것인가

by 달그리메 2015. 11. 14.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만약 살아서 부와 권세를 누릴래? 죽어서 이름을 남길래? 선택을 하라하면 사람들은 어느 편에 더 많은 표를 덜질까?

 

나는 일단 살아서 부와 권세를 누리는 삶이 더 좋다는 쪽이다. 후세에 이름을 남길만큼 열심히 살 힘이 없기에~ 그럴만한 재능 또한 없기에~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기에~ 비록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진다해도 지금, 오늘, 현재, 현세에서 누리고 싶다.

 

고운 최치원은 죽어서 후세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그런 최치원은 요즘으로 치자면 한류 스타였다. 지금은 인터넷이나 매스컴의 발달로 일반인조차 얼굴이 널리 알려지는 게 어렵지 않지만 그 시절에 신라뿐만 아니라 당에 까지 이름을 날렸으니 한류 스타의 원조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에서 듣고 새겼던 모든 것을 씻어내는 의식을 치렀다는 세이암

 

 

그런 최치원을 두고 살아서 복록을 누리지 못했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할 이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저마다 타고난 재능과 누려야 할 복록의 정도가 다르기 마련이다. 그것을 두고 팔자 혹은 운명이라고 하지 않은가!

 

천재였지만 신분제도의 한계로 능력만큼 누리지 못한 인물이 최치원이다.

 

그는 13살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 당시에는 최치원뿐만이 아니라 유학길에 올랐던 아이들이 많았다. 한 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학동들의 숫자가 200명을 넘었던 때도 있었다는 기록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운명은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배워야 성공을 했고 자식들을 성공시키고 싶어하는 부모들의 열정은 시대를 초월하는 모양이다. 그는 유학길에 올라 이국땅에서 성공을 하고 금의환향 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수백년이 흐른 지금과 그 때의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조기 유학이나 부모를 따라 이민을 떠났던 아이들이 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정체성 혼란으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우를 요즈음은 어렵지 않게 본다. 최치원도 그런 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당나라에서는 이방인으로 신분제도의 한계에 가로막힌 신라에서는 주변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테니까.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다. 현실에서의 한계가 그를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바람같은 구름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했다. 그런 조건에 그의 천재성이 더해졌으니 그는 세속적인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복을 누린 인물이 아닌가.

 

푸조나무

이런 가정을 해보는 건 재미있는 일인 것 같다. 만약 그가 신분제도 따위가 없었던 민주적인 태평성대에 태어났더라면 그의 천재성은 어느 방향으로 튀었을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상에 늘려있는 권세와 부귀영화가 얼마나 덧없는지를 깨달았다면 그는 정말 위대하다.

 

그런 가정을 떠나 그가 후세대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와 관련된 장소에는 어김없이 신선으로 환생한 최치원이 있다. 세상에서 보고 듣고 새겼던 모든 것들을 씻어내고,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두고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세이암과 푸조나무로 살아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믿지 않는 이야기 속의 최치원의 위대함을 믿는다. 세이암이나 푸조나무로 환생한 최치원과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에 새겨진 최치원,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최치원의 존재를 사람들은 선망한다. 각박한 삶에 그런 존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황홀한가!

 

불안한 시대에 태어난 천재 최치원의 삶은 누가 뭐래도 해피엔딩이다. 아무 것도 내려놓지 못한 채 그의 자유로움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후세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는 영원히 살아있다. 죽어서는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살아서는 복을 누리지 못하하는 삶을 살아가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가 길을 가다 문득 그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