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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딴에 이야기

버스타고 함양속으로~ 폭염속에서 마을을 헤매다

by 달그리메 2012. 8. 31.

 "버스타고 함양속으로" ~ 세번째 이야기

 마을 전수 답사를 시작하다~

 

올여름은 몹시도 무덥습니다. '몹시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날씨가 좀 누그러지면 일을 시작했으면 싶지만 정해진 기간 안에 일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더위를 핑계로 미적거릴 수만은 없습니다.

 

8월 안에 기본적인 일은 진행을 해 놓아야 계획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데 식구들의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임무는 주어졌고 손에 잡히는 것은 없고 마음은 급하고 부랴부랴 일정을 잡았습니다. 8월 한 달 동안 매주 두번씩 함양 방문~~

 

7월 30일 31일은 오뉴월 무더위가 절정을  치닫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27일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마을 스케치를 통해 대충 그려둔 동선을 따라 자가용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매촌마을입니다. 매촌마을을 다르게는 마디실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 지명은 대부분 한자로 조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자를 우리말로 쉽게 풀어 놓으면 그렇게 정겨운 이름이 된다는 것을 함양을 돌아다니면서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마디실은 이름은 예뻤지만 이름 값을 제대로 하는 마을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폐가-2채, 폐가와 새로운 건물이 뒤섞여 있음, 시골 느낌이 별로 없음, 동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정자나무 같은 게 없음> 그런 기록이 아니더라도 마디실은 재미가 별로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빨래터가 있음, 옛날 흙담 창고 남아있음, 조립식 건물 담장에 있는 포도나무가 인상적임, 접근성 7, 자연경관 2, 마을 조건1, 농산물1> 매촌 마을에 대한 또다른 기록입니다.

 

 

다음 마을로 출발하기 전에 먼저 마을을 선정하게 되는 기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을을 평가하는 기준을 나름대로 4가지 정도로 정했습니다.

 

우선 접근성입니다. 자가용으로 가면야 조금 가까워도 멀어도 별 상관이 없지만 버스를 타고 가는 여행은 좀 경우가 다릅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마을에 이르기까지 너무 가까우면 기대감이나 운치가 없습니다. 반면에 너무 멀면 걸어서 가기에는 너무 멀고 차로 이동하기에는 버스 연결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마을 만들기에 중요한 항목으로 접근성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자연 경관입니다. 마을에 들어가서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따라준다는 것은 마을 만들기를 하는 데 있어 가장 바탕이 되는 조건입니다. 얼굴이 잘 생기면 일단은 절반 먹고 들어간다는 말도 있듯이(이건 썩 좋은 표현은 아닙니다만) 마을이든 사람이든 우선은 보기가 좋은 게 유리 합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마을 조건입니다. 자연 경관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하루를 묵고 가게 하기 위해서는 시골 인심이나 여건이 따라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겉모습만으로는 잠시 사람들의 눈을 끌 수는 있을지라도 마음을 붙잡기가 어렵습니다. 1박을 하지 않고 스쳐지나가는 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별로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마을 분위기도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가지는 농산물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뭐니뭐니해도 돈이 최고입니다. 돈이 되지 않으면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데는 돈만한 것이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골고루 소득이 돌아갈 있게 하는 장치로 농산물 직거래나 농산물 꾸러미 판매 텃밭 체험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 항목에 넣었습니다.

 

각각 10점 만점으로 하고 마을 답사를 통해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마을을 대상으로 먼저 마을 만들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1차 마을 만들기를 성공 시킨 후에 다음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마을을 후보지로 염두에 두기로 했습니다. 다음은 다음이고 일단은 1차 마을 만들기를 성공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부실한 마디실을 떠나 다음 마을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식구들은 적당한 마을이 제대로 남아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다소 성급함이 있기는 했지만 며칠 전 버스를 타고 마을 스케치를 하면서 느꼈던 좋은 마을은 이미 다 제 값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연결이 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 일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감동을 받는 일은 예상하거나 예상 가능한 일이 아니라 늘 의외의 일들에 의해서 입니다. 그런 느닷없음이나 우연이 삶을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연한 불안감을 그렇게 빨리 털어낼 수 있을 줄이야~~

 

 

 

마을 찾아나서기 두번째 마을을 둘러보면서 우리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우와~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됐다~였습니다. 임호 마을과 산두 마을을 돌아보며 바로 이 마을이다 하는 것을 한 눈에 알아봤습니다. 그런 감정을 두고 운명이다 그렇게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접근성, 자연 환경, 마을 조건, 농산물에서 골고루 아주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임호 마을과 산두 마을에 대해서 왜 그렇게 열광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마을 만들기를 완성해서 짠~하고 보여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보다는 함께 일하는 해딴에 식구 박영주씨가 블로그에 올릴 때 너무 많은 것을 노출하지 마라는 엄명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임호, 산두 마을을 내심 점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을 답사를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했던 마을 답사가 진행될수록 해는 점점 중천으로 향하고 내리쬐는 햇살은 뜨거워졌습니다. 추위가 고통스럽다는 것은 일찌기 알고 있었지만 더위가 그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은 처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이틀 동안 흘렸던 땀이 뻥을 좀 보태서 말하자면 한바께스는 된 듯 합니다.~^^

 

신기마을(숲실)< 길가에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이 아름다고, 들이 넓어서 다양한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음> 고태마을<사람이 쉴 수 있는 장치가 없고 적막하다. 마을 건물들이 새로 지어서 시골 느낌이 전혀없음. 행복사 절이 있는데 사이비 느낌이 남.> 대포마을< 마을 입구에 폐교가 있는 것으로 보아 큰 마을이었던 것으로 짐작이 됨, 잘 지어진 집들이 전원주택지 같은 느낌이 남, 간디스토마 없는 마을, 범죄없는 마을>

 

이런 식의 다소 밋밋한 마을 조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런 중에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습니다. 지리산 고속버스 노선의 끝에 있는 장항마을에서는 허영자 시인의 시비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에 은발이 늘어가네...'은발'이라도 시도 그렇지만 평소 좋아하는 '완행열차'라는 시를 쓴 시인의 고향 마을을 만나게 되는 반가움도 컸습니다.

 

   

 

접근성, 자연경관, 마을 조건, 농산물 까지 거의 0점에 이르는 거기에다 개량 한옥이 많아서 시골 냄새가 거의 나지 않은 서주 마을에 민간인 학살이라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옥은 대부분 학살 이후 새로 지은 집이라고 했습니다. 마을 앞을 지나는 한 길 건너 서주 지역 희생자의 기념비가 있었는데 그냥 지나치면 그 사연을 아는 이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대추나무에 얽힌 전설이 있는 조목단사실과 아직도 싱싱하게 살아있는 우물이 인상적이었던 손곡마을, 정필재 김종직 선생이 만들었다는 관영차밭 조성지와 마을 전체가 엄청사 절터여서 마을 곳곳에 주춧돌이 널려있는 동호마을, 세종의 왕자였던 한남군의 유배지였던 한남 마을의 한남숲과 나박정, 새끼줄이 걸려있어 지금도 당재를 지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성황당도 버스 만들기에서 마을을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꺼리들이었습니다.

 

존재감이 거의 없는 지곡마을(모실) 지리산 둘레길에 속해있는 동강마을, 운서마을, 송진마을, 팬션이 들어서고 이미 상업화 된 원기마을을 지나 1차 마을 만들기에 성공을 한 후 다음에 도전 할 후보 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하마을(아래쑤꾸지)와 문상마을을 만나게 됩니다.

 

 

마을 입구에 폐교가 있어 활용하기가 좋다는 점, 마을 입구 풍경과 소나무 숲이 좋은 점, 전제적으로 편안하고 부유해 보인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문하마을은 마을 하나로 보자면 크게 매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상마을과 연결을 해서보면 그럴듯하게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문상마을은 입구에 보호수가 아름드리 서 있고 마을 회관이 깨끗하고 좋았습니다. 물이 풍부하고 호두나무가 아주 많았습니다. 마을 앞으로 보이는 왕상 풍경도 좋았습니다. 숯꿉던 마을이라서 붙여진 쑤꾸지 마을의 이야기와 더없이 호의적인 이장님이 있었습니다. 농산물, 자연 경관, 마을 조건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어쨌든 임호 산두 마을 만들기를 성공 시킨 후 2차로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마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시원하고 아름다운 백연마을과 높은 징이라는 우리말 이름이 붙여진 견불마을, 옻칠하는 원정마을, 학바위마을, 마천면 소재지에 있는 당흥마을, 구송으로 유명한 목현마을을 지나 느낌없이 밋밋한 널무이라는 우리 이름이 붙여진 판문마을, 복도식 아파트처럼 일자형으로 서 있는 화암마을, 60년 전 쯤에 옥내 장터가 있었다는 옥산마을까지 빠짐없이 찾아갔습니다.

 

 

이틀 동안 계속되었던 마을 전수 조사가 거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을 즈음 만났던 마을이 두번째 후보지로 꼽을 수 있는 유평마을(버들이)과 회동마을(그믐골)입니다. 유평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습니다. 텔레비젼에 나오는 전원일기의 배경이 화면에서 툭 튀어 나와있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입구에는 정자나무 그늘이 넉넉하게 드리워져 있었고, 맞은편 우물가에는 옛날 두레박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 냉장고가 나란히 두 대가 있고 마을 공동 취사장이 있었는데 막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돌담과  텃밭, 호두나무, 은행나무, 밤나무과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유평마을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회동마을이 나옵니다. 뒤로는 화장산이 앞으로는 왕산이 있습니다. 마을회관 옆으로 크다란 왕버들이 늘어져 있고 유평마을과 마찬가지로 공동취사장이 있었습니다. 마을 뒤로 저수지가 있고 마을 한 쪽으로 개울물이 흘렀습니다. 노래 잘하고 소리 잘하는 할아버지, 달띠처럼 인상좋은 친절한 할머니, 부산에서 온 불상 조각가가 살고 있었고, 여느 시골마을처럼 드문드문 빈집이 있었습니다. 시골 인심이나 분위기를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곳으로는 더없이 안성맞춤일 것 같았습니다.

 

이틀 동안의 길고 길었던 여정의 마지막은 화촌마을입니다. 520년이 된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는 정자 나무 아래에서 인상 좋은 할아버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마을로 저수지 3개를 만들면서 아무리 가물어도 가뭄이 들지 않아 부자 마을이 되었다고 합니다. 함양 여씨 오씨 박씨이야기 그믐골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에 이르기 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상으로 마을 찾기 답사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마을 찾기는 마을 만들기라는 집을 짓기 위한 첫 삽질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마을을 만들어 나가야 할 지 할 일도 고민도 태산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만 일단 발을 내디뎠으니 어떻게든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제가 원래 구질 구질 길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특히 요즘 사람들은 짧고 간결한 글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서 최대한 읽는 분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간추려서 마을 답사 아이야기를 하려고 애를 쓰긴 썼음에도 조금 길어 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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