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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덕혜옹주, 영화를 이렇게 만들면 곤란하지요.

by 달그리메 2016. 8. 19.

덕헤옹주를 봤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도대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만약 덕혜옹주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이 전혀 없었다면 오히려 영화를 보는 게 좀 수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신 눈물을 찍어내는 옆자리 아줌마의 모습이 그렇게 생뚱맞아 보이지도 않았을 거구요.

 

고종이 일제로부터 강제 하야를 당하고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건너가 어떤 일생을 보냈는지에 대해서 저도 그 내막을 속속들이 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마지막 왕실 사람들이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일본에 빌붙어 어떻게 안위를 누렸는지, 스스로 일본인의 모습으로 살았다는 그 정도의 지식만으로도 이 영화를 반감없이 보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전지현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암살이라는 영화를 저는 극장에서만 3번을 봤습니다. 안옥윤의 삶과 영화속에서 전지현이 그려내는 모습얼마나 일치되는가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전지현과 일행들의 삶을 통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이들의 희생이 참으로 눈물겨웠으니까요. 암살은 적어도 그런 힘이 있었습니다.

 

어차피 영화나 드라마는 완전한 팩트만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는 한계가 있겠지요. 그래서 적당한 사실과 적당한 허구가 잘 버무려져서 작품이 만들어집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는 역사물은 어쩌면 칼날의 양면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재미있게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잘못된 역사를 주입하는 결과가 될 수 있으니까요.

 

역사를 전공하거나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학교를 다니면서 교과서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내용 정도에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역사 교과서를 제대로 만들어야한다고 그렇게 야단들이지요.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역사속의 특정 인물을 배역을 맡았던 배우의 이미지로 인지할 정도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소재로 삼아서 작품을 만드는데는 흥미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의 원칙은 있어야 한다는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덕혜옹주를 놓고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습니다. 예쁘기 그지없는 덕혜옹주 손혜진은 암살에서 전지현 정도의 파워는 아니지만 대한제국의 옹주로써 꿋꿋하게 자존심을 지켜가며 이국땅으로 끌려온 백성들을 위로하고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이 장면에서부터 헷갈립니다. 덕혜옹주가 나름 열심히 자기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하기는 했는데 좀 더 재미있고 극적으로 끌어가기 위해 실재와는 다른 에피소드를 넣는다면 거기까지는 그러려니하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물에서 팩트는 영화의 힘입니다. 이런 기본 바탕에서 덕혜옹주가 기모노를 입었네 입지 않았네 이 정도의 디테일한 부분은 얼마든지 애교로 봐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팩트 자체가 완벽하게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영화는 아예 있지도 않은 일을 있다고 가정을 하고 사건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면 뭐가 사실이고 뭐가 허구인지를 아예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히려 영화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지요.

 

덕혜옹주는 일본으로 건너가 독립운동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은 커녕 일제가 주는 돈으로 일본 학교를 다니면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영친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임시정부에서 영친왕을 모시고 싶어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친왕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는 일방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런데 영화에서는 덕혜옹주와 영친왕 그리고 이방자 여사가 함께 망명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이 줄거리의 중심에 들어 있습니다. 극적인 재미를 더하기 위해 쫓고 쫓기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어슬프게 만든 암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몰입은 물론이고 실소가 나왔습니다. 아마도 거짓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어 감정 몰입이 어려웠던 탓일 겁니다.

 

팩트를 살펴보자면 덕혜옹주는 1930년대 무렵에 이미 정확하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조현병이라고 일컫는 정신병을 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이를 두고 사실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로 삼아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마치 나라를 잃은 슬픔과 향수에 겨워 조현병을 앓게 된 것 처럼 묘하게 오버랩 해놓았습니다.

영화 광고를 보면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몰랐던 역사를 새롭게 알게됐다. 너무 슬펐다. 영화를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 뭘 새롭게 알게되고 뭐가 슬프고 고마운지~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영화평에 별 네개가 뜹니다. 이런 것들이 좀 거시기합니다.

 

이 영화가 그래도 나름 거둔 성과는 있습니다. 하나는 손예진의 재조명입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흥행을 장담할 수 없었던 나름 의미있는 영화에 개인적으로 투자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대중적인 호감을 사기에 충분한 효과를 거둔 것 같습니다. 개념 배우로 인정을 받게 된 거지요.

 

그리고 또 한가지 영화 속 줄거리에 대한 비판입니다. 영화 내용과 사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짚는 기사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아마도 덕혜옹주라는 영화가 아니었다면 그 내용이 그렇게 왜곡되지 않았다면 그들의 당당하지 않았던 삶이 지금 이 싯점에서 대중적으로 재조명되지는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저는 영화나 드라마는 작품성도 좋지만 일단 그것을 재미있게 만들어야 한다는데 무조건 한 표를 던집니다. 평론가들이 내놓은 고급스러운 비평에 별로 동의하지 않을 때도 많구요.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담는 그릇이 좋지 않거나 재미가 없어서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렇지만 덕혜옹주는 글쎄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감독의 얄피한 상술이 한 눈에 보입니다. 관객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완벽하게 꿰뚫고 거기에 촛점을 맞쳐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재미있게 만들어 흥행에 성공하는 것이 제작자나 관객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 놓을 정도의 그런 정의로운 윗사람들이 한없이 그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지금 심정을 감독은 잘 캐치를 한 것 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렇게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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