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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야기

노무현을 그리워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다

by 달그리메 2011. 5. 24.

노무현 대통령 추모 2주기를 맞아 찾아간 봉하마을은 좀 더 차분해지고 안정된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기저기 사람들이 남겨놓은 그리움의 흔적들로 가득했습니다. 쌓아올린 돌탑으로도, 노오란 바람개비로도, 하얀 국화꽃 송이로도 그리움은 피어났습니다. 막걸리를 파는 식당 벽면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으로 빼곡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제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대통령 추모기념관 한쪽 벽면에는 담쟁이 넝쿨이 담을 타 오르고 있습니다. 물론 살아 있는 담쟁이 넝쿨은 아닙니다. 한가운데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가 있고 양쪽으로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글들이 줄기를 타고 뻗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그 분에 대한 고마움이 미안함이 그리움이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드문드문 아직도 글을 제대로 깨치지 못한 아이들이 적어놓은 삐뚤삐뚤한 글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씩 찾아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 오래오래 주무세요.'' 일년에 한 번 꼭 올라오세요.' 그런 재미있는 글도 있습니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그 꼬맹이들이 그럽니다. 제법 의젓하게 고생하셨다는 말도 있네요.

 
 
 

글을 읽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과연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마도 짐작해보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와서 엄마 아빠가 하는대로 따라 담쟁이 잎사귀에다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고맙다고 그런 글을 써서 붙였을 겁니다.

 
 

그날 이른 시간 봉하마을에 도착을 해서 하루종일 머물렀습니다. 생가도 둘러보고, 기념관도 가보고, 대통령길도 따라 걸어봤습니다. 그리고 5시쯤에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과 서울에서 내려온 기자 한 분, 그리고 일행 네 명과 함께 봉하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봉하 막걸리 이야기에서부터 재.보궐 선거며 앞으로의 계획 등등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이 오고갔습니다. 이야기 중에 기자분이 김경수 사무국장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흐름에도 노무현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것일까요?"
그 물음에 대한 김경수 사무국장의 대답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노무현이라는 인간이 지녔던 진정성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짓은 아무리 가려도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기억에는 노무현만큼 욕을 많이 얻어 먹은 대통령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재임 당시, 노무현이 한 것은 KBS 아나운서 노현정을 현대 가문에 시집 보낸 것밖에 없다는 식의 비아냥거림이 떠돌 정도였으니까요. 남녀노소 할 것없이 서슴지 않고 함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그것도 그렇습니다. 오랜 군사 정권 시절을 견디면서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하고 살 수가 없었습니다. 속이 터져도 담아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고 눈으로 보이는 것을 믿지 못하는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김대중을 거쳐 노무현 시절에 우리는 드디어 마음대로 말을 하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한풀이를 하듯이 거침없이 말들을 해댔습니다.

그렇게 막말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가, 말로써 소통되어지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깨달음의 눈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첫 번째 이유보다는 "지금 우리가 행복하다면 그를 그렇게 그리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는 김경수 사무국장이 말한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의 두 번째 이유에 저는 더 많이 공감이 갔습니다.

한 사람을 죽도록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느 날 훌쩍 떠났습니다. 빈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사람은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통해 죽도록 사랑했다고 믿었던 사람이 사실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는 곧 기억에서 지워버립니다.

반대로 한 사람을 죽도록 미워했습니다. 미워했던 사람이 떠난 후에 새로 나타난 사람은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늘 일방적이고 독선적입니다. 그제서야 죽도록 미워했던 그 사람의 존재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떠나간 사람이 새록새록 그리워집니다. 

인간에게는 그런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바로 보지 못하고 어딘가에 비추어 그 진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걸 두고 반면교사라고 그럽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은 지금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건 현재의 힘겨운 삶과 소통이 단절된 세상에 대한 절망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삐뚤삐뚤하게 눌러 쓴 고맙고 그립다는 글이 슬프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입니다.

더 이상 떠나간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립다고,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삐뚤삐뚤 눌러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노무현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 정치를 하고 그래서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그리움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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