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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야기

노무현과 김해사람들 그리고 김태호

by 달그리메 2012. 4. 17.

얼마 전,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 지인과 함께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몇 번 봉하마을을 찾긴 했는데 이번에는 유난히 마을이 썰렁했습니다. 한창 선거 기간이라 봉하마을 식구들이 마을을 비운 탓도 있겠지만 음식을 팔고 있는 가게 아주머니 이야기에 의하면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예전만 못하다고 그럽니다.

 

생가를 둘러보면서도, 봉하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산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빈소 앞에다 내려놓으면서도, 물끄러미 묘를 바라보면서도, 지인은 별 말이 없었습니다. 부엉이바위가 있는 대통령길을 함께 오르면서 이 분이 무현을 참 좋아했나 보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부엉이바위를 지나 사자바위에 이르면 노무현 대통령의 묘를 중심으로 봉하마을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봉하 들판을 내려다보면서 무심한 투로 지인에게 물었습니다.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을 참 좋아한 모양이지요..." 그랬더니 그냥 씩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멀리 이국 땅에서 노무현의 서거 소식을 듣고 마음이 착잡했다. 언젠가 한 번은 이렇게 다녀가고 싶은 마음이 막연히 들었다. 노무현에 대해서는 좋아했든 좋아하지 않았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국민 모두가 어떤 부채 의식 같은 것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

 

캐나다에서 온 지인이 느끼고 있는 노무현에 대한 부채 의식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았습니다. 대신에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가져야 할 부채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 기준은 저마다 다릅니다. 정치에 대한 가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만큼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평가 역시 제각각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하고 있는 생각이 객관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팩트에 기인해서 이야기하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하면 떠오르는 게 제게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 노무현이 지녔던 진정성을 꼽고 싶습니다. 이번 총선 때 여당 후보들은 비정규직 문제와 한미 FTA 를 두고 노무현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그의 실정마저 감싸고 돌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노무현이 지녔던 정치적인 진정성마저 통째로 부정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정치를 통해 희망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국민들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조차도 당시에는 께닫 못하고 그가 떠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은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죽음 앞에서 흘렸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속에는 그런 회한이 담겨 있었을 겁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가장 고질적인 병폐가 지역주의와 학벌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주의와 학벌주의의 높고 단단한 벽 앞에 서서 정면으로 도전을 한 정치인이 노무현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대한민국에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든 것을 떠나 의미있는 일이라구요. 뼛속까지 학벌주의 사회에서 고졸 출신이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몸으로 보여주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희망으로 바꿔내지 못했습니다.

 

또 한 가지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새삼 절감한 것이 높은 지역주의였습니다. 그 벽이 어느 정도 허물어졌다고 잠시나마 유쾌한 착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생각해보면 다 노무현 덕분입니다. 그러나 그 벽은 한 사람의 힘으로 걷어낼 수 있을만큼 말망말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히 그 벽을 허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 조차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를 이번 선거를 끝내고 나서 보니 새삼 사무치게 듭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그래서 어쩌면 뻔할지도 모르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어떤 이는 여당의 승리라고 하고 어떤 이는 야권연대의 패배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는 김해 '을'의 결과를 보면서 선거기간 중에 봉하마을을 함께 다녀왔던 캐나다에서 온 지인의 이야기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을 좋아했든 좋아하지 않았든 노무현에 대해서는 부채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런데 말입니다. 김해 사람들은 이번에도 김태호를 선택했습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이봉수를 버리고 김태호를 선택했을 때는 김해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김해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음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김해 사람들은 이제는 죽고 없는, 그래서 그이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노무현의 정신보다는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보다는 길을 하나 더 내어주고 건물을 하나 더 세워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는 살아있는 김태호를 훨씬 더 많이 사랑했습니다. 먹고 사는 것만큼 절실한 게 없다 하더라도 과연 그것만이 인간이 가져야 하는 가치의 전부이며 일순위일까? 그런 서글픔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머나면 이국 땅에 살고 있는 이조차 기억하고 싶어하는 노무현의 가치를 노무현이 죽어서도 묻히고 싶어했던 그리고 묻혀 있는 김해, 그곳 사람들은 외면했습니다. 살아생전 누구보다 노무현을 향해 많은 독설을 내뱉었던 김태호를 사랑해주는 김해 사람들을 김태호는 평생 업고 다녀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할 것 같습니다. 김해 사람들 어쨌든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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