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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이야기

공산당이 싫어요는 그만 가르쳤으면 좋겠다

by 달그리메 2010. 10. 17.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손을 꼽아 헤아려보니 얼굴을 보지 않고 살아온 시간이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그 세월이 훌쩍 흘러가버렸습니다.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가 바로 모교 초등학교 정문 앞이었습니다. 추억 더듬기 여행이니 만큼 그 장소가 딱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행여나 서로 못 알아보는 불상사가 발생하면 주름지고 살이 찐 아줌마들을 찾으면 된다는 우스개도 섞어가면서 말입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모교에 도착을 했습니다. 친구들을 기다리며 교정을 어슬렁거렸습니다.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은 지라 역사와 전통에 걸맞은 느낌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도 함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6학년 3반 교실이었습니다. 까닭을 물으면 뭐라 답은 할 수가 없지만 아마도 국민학교 시절로 치면 가장 철이 든 때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추억들이 좀 더 선명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딱 거기까지만 좋았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인 정문 쪽으로 걸어나오다 보니 화단이 있었습니다. 화단이 참 별볼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한 것은 나무나 꽃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런 저런 흉물스러워 보이는 동상들 때문이었습니다.

                     

                                                    참 그래 보이는 조형물입니다


충효라고 쓰여진 1970년 무렵 마을 어귀에 서 있었을 법한 조형물이 그랬습니다. "나라를 사랑함은 국민의 본분이며 부모에게 효도함은 자식의 도리이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은 좀 썰렁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저걸 보면서 나라에 충성을 맹세하고 부모에게 효를 다짐할까요?  
그 다음이 더 가관이었습니다. 반공의 용사 이승복 상이 서 있었고 아래에 이런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 태고적부터 민주의 물결이 면면히 흘러 여기 하나의 아우성으로 승화된 한송이 꽃이 되었다.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 강원도 평창 아홉살 짜리 어린이 이승복군이 부르짖은 절규로 하늘과 땅이 들끓어 우리들 가슴으로 묻어오는 아! 야만의 마수 앞에 새삼 하나로 뜨거워지는 너와 나의 핏줄 삼천리 화려강산 슬기로운 이 겨레 멸공으로 뭉치어 만세에 복되어라." "이 겨레 멸공으로 뭉치어 만세에 복되어라~" 마지막 부분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참 거시기한 동상입니다


처음 학교를 세웠던 100년 전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달랐을 겁니다. 세월이 흐르고 흐른 지금 세상은 너무나 부지런히 변하고 있습니다. 개인이나 사회적인 가치관 역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선생님들은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공산당이 싫어요"를 가르치고 싶은 걸까요? 
도대체 지금이 어떤 시대라고 저런 걸 쯧쯧...친구들이 입맛을 다시며 한마디씩 거들었습니다. 생각하고 보는 눈은 다 비슷한 모양입니다. 내 눈에만 거슬리는 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교정을 한바퀴 돌아보니 운동장을 에워싸고 있는 나무들이 100년 역사를 무색케 할만큼 앙상해서 썰렁하기까지 했습니다. 운동장 가운데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인조 잔디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그자리에 한그루 나무를 심었으면 좋으련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이들어가는 만큼 또 변해 있었습니다. 학교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변하지 않은 진리도 가르쳐야겠지만 시대에 걸맞는 가치관을 만들어 주는 그것이 진짜 학교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닐련지요.

                     
                     

       낡아빠진 책읽는 소녀상이나 신사임당상도 거시기 해보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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