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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20년 된 세탁기 텔레비전을 버리지 않는 이유

by 달그리메 2011. 8. 17.

얼마 전에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세탁기가 고장이 났습니다. 평소에 주로 손빨래를 하기 때문에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해 수리 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마음먹고 써비스 센타에 연락을 했습니다. 

고장난 세탁기를 보면서 써비스 센타 아저씨의 첫 마디가 그랬습니다. "참 오래도 썼다, 어지간하면 새 걸로 하나 장만을 하시지요." 그러든지 말든지 생글생글 웃으며 "아니요 고치면 한참을 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했더니 "이 세탁기 20년 정도는 되었을 텐데요" 그럽니다.

20년~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러고 보니 그럴만도 하다 싶었습니다. 고장이 난 세탁기는 돈을 주고 장만을 한 것이 아니라 아는 사람한테 얻은 것이었습니다. 그때 용량이 더
크고 좋은 제품을 산다고 버리는 것을 아까워서 제가 가져다 쓴 것이니까요. 

 

좀 거시기해 보이지만 한 번씩 빨래를 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훌륭한 세탁기랍니다.

써비스 센타 아저씨는 부품이 없어서 아마 수리가 안될지도 몰라요 그럽니다. 그러면 할 수 없지요. 그렇게 대답을 했는데 다행히도 수리가 되었습니다. 돌아갈 때마다 삑 소리가 날 거니까 알고 있으라고 합니다. 소리쯤이야 참으면 되고 수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였습니다.

써비스 센타 아저씨가 문밖을 나서면서 요즘 성능 좋은 거 많아요 그러는데 제가 한 마디를 거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쓸 수 있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데~" 아저씨 제 얼굴을 휠끔 쳐다보시더니 할 말을 잃고 쩝쩝 입맛을 다십니다.

아저씨의 표정을 보자니 딸 집에 다니러 온 엄마가 던지고 간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어디 가서 딸 집에 김치냉장고 없다는 말을 쪽팔려서 못한다. 요즘 김치냉장고 없는 집이 어딨노?" "별 일이네 김치냉장고 없다고 딸이 쪽팔리면 집이 없으면 아예 딸이 없다고 그러겠네." 내 능청스러움에 어이가 없어하던 엄마 얼굴이 떠오릅니다.

집에 텔레비전이 있는지 냉장고가 있는지 라디오가 있는지 학교에서 뭐 그런 걸 조사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전 제품이 부의 상징이 되었던, 지금으로 보자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이야기만큼이나 고리짝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지금과 옛날이 달라진 것이 별로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예전에는 가전 제품이 있냐 없냐 몇 개냐로 부의 정도를 기준 삼았다면 지금은 크기나 질로 부자냐 그렇지 않느냐로 바뀐 것 같습니다.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저는 아주 가난합니다.

집에 있는 텔레비전도 세탁기와 마찬가지로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화면이 거의 맛이 갔습니다. 그리고 냉장고도 17년쯤 됐는데 모양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냉동 냉장만 잘 되고 있습니다. 에어콘 같은 것은 없습니다.

거저 줘도 가져갈 사람이 없을 물건들만 있지만 새로 장만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고쳐쓰다가 더 이상 고칠 수 없을 때 말하자면 자연사를 할 때까지 쓸 참입니다. 전자제품이라는 게 원래의 역할만 충실하면 되지 그 이상 뭐 필요가 있을까 싶으니까요.

그러다보니 덩치가 큰 제품들과는 달리 전기 요금이 별로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 수시로 선풍기를 돌려대도 한 달 전기 요금이 2만원을 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절약 정신이 뛰어나거나 알뜰살뜰 그렇지도 않습니다. 여행을 다니거나 술을 마시거나 뭐 그런데는 돈을 별로 아까워 하지 않는 편이니까요. 

사람마다 다 가치관이 다를 수 있고,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물건에 욕심을 내는 것 만큼 허망한 것이 없다 그리 생각을 합니다. 물건은 아무리 좋은 걸 장만해도 장만한 그 순간부터 헌 것이 되버리니까요. 그러니 가지고 있는 물건을 소중하게 사용하면 된다 그리 여기고 삽니다.

 

보기에도 별로고 성능도 별로지만 그래도 그냥 사용하고 있는 텔레비전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전제품을 나름 오래 쓰는 비법을 하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사람이나 기계나 과하게 사용하면 탈이 나기 마련입니다. 평소에 손세탁을 많이 하고 세탁기를 되도록 덜 사용합니다. 이불이나 청바지 같은 큰 빨래만 가끔 세탁기 빨래를 합니다. 그러면 물도 절약되고 세탁기의 수명이 엄청 길어집니다. 요즘 사람들 세탁기 없으면 빨래를 못하는 줄 알지만 뭐든 습관 들이기 나름인 것 같거든요.

냉장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저것 잔뜩 사서 터질 듯이 담아두지 말고 필요한 것만 사서 제 때 제 때 먹으면 냉장고가 클 필요도 없고 기능에 무리도 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오래 쓸 수가 있습니다. 청소기를 돌리는 대신에 한 번씩 운동삼아 걸레질을 하면 건강에도 좋고 그렇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렇게 궁상스럽게 사느니 그냥 좋은 거 장만해서 편하게 살겠다 하실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 한 사람이 아니라 너도 나도 그런 마음이라면 이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절약되는 전기로 인해 원자력 발전소를 지금보다는 훨씬 덜 지어도 될 것이구요. 가전제품을 새로 바꿈으로써 생기는 환경오염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쳐서 쓸 수 있는 물건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면 좀 아깝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뭐 애국심이나 인류애가 강해서 그렇게 사는 건 아닙니다. 그냥 단순하고 가볍게 사는 게 편하고 좋습니다. 그런 생활에 길들여진 면도 있구요.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은 내 생각을 바꾸고 생활 습관을 바꾸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세탁기 써비스 받고 나서 기분 좋아서 이런 글을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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