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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풍운아 채현국 강연장에서 떠올랐던 단상들

by 달그리메 2015. 4. 13.

 

창원대학교에서 있었던 채현국님 강연회에 가기 전에 책을 미리 읽거나 그 분에 대해서 특별히 들은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책 제목 하나 만으로 그 분의 삶이나 사람에 대해서 대충 짐작을 했을 뿐이지요. 한 사람의 생애가 책으로 나온다는 그것만으로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이력을 가진 분이라는 것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요즘 부쩍 사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창 청춘일 때는 이런 저런 생각없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만났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에 대해서 가려지는 바가 먹어가는 나이만큼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에 두고 사람들에 대한 호불호를 만듭니다. 물론 호불호는 개인적인 취향의 작용이지 객관적인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두고 종종 비유를 하는 것이 어린 왕자에 나오는 소행성입니다. 소행성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면 다들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각각 소행성의 주인들은 잘못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서로 다를뿐이지요. 

 

다른 행성에 사는 사람들이 좋아하든 말든 이해를 하든 말든 말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저마다 거대한 우주입니다. 자기하고 다르다고 해서 아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들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좋고 나쁨이 있고, 옳고 그름이 있고, 높고 낮음이 있습니다. 요즘 한가닥 한다는 정치인들 다들 잘났지요. 공부 많이 해서 좋은 학벌에 인정 받고 돈 많이 버는 분들도 마찬가지구요. 그런 사람들의 삶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훌륭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가 만들어 놓은 잘못된 인식일 뿐입니다.

 

소소하게 살았던, 거하게 살았던 개개인에게는 다 나름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세월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강연장에 가면서 채현국님의 특별한 이력과는 상관없이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오롯이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때로는 느낌이 진실에 가장 가까울 때도 있으니까요.

   

 

채현국 앞에 달린 풍운아라는 말이 어쩐지 장사 삘이 확~~난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께서 자신은 풍운아가 아니라 건달이 맞다고 이실직고를 하는 바람에 제가 빵 터졌습니다. 그 장면에서 제가 선생님께 아낌없이 한 표를 드렸습니다~~^^

 

요즘 시대에서 가장 화두는 뭐니 뭐니해도 머니입니다. 선생님은 돈에 목숨 걸지 말고 가난해도 배짱을 가지고 살라고 합니다. 말이 쉽지 수중에 돈 한 푼없이 배짱있게 사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우면 무슨 걱정일까요! 돈에 매이지 마라, 욕심내지 마라, 무소유의 삶이 아름답다, 돈에 목숨을 거는 세상에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 이야기입니다. 말은 맞지만 실천이 어렵기도 한 말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강신주의 인문학 강의에서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삶의 주인이 되라 뭐 그런 주제의 이야기를 나름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남편을 사랑하느냐, 돈을 사랑하느냐, 자식을 위해 공부를 시키느냐, 돈을 위해 공부를 시키느냐, 돈 한 푼 벌어주지 않는 남편을 과연 사랑할 수 있겠느냐?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자식에게 공부 공부하겠느냐? 그것은 모두 사랑을 빙자한 돈이다 그랬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은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돈에는 눈이 달려 있어 심을 내면 낼수록 끊임없이 애살을 부려야 하고 애지중지 매달려야 돈이 붙어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열정을 다 쏟아야 한다는 것이 채현국 선생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선생님의 투박한 표현에 비긴다면 강신주의 돈 이야기는 훨씬 더 논리정연하고 세련돼 보였습니다그럼에도 선생님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흔들렸던 것은 딱 한가지 이유였습니다.

 

만약에 채현국 선생님이 신용불량자가 아니라 성공한 사업가로 사람들 앞에 서서 가난해도 배짱을 가지라고 했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한마디로 우끼는 소리 하지 마시라 그랬겠지요. 강신주는 사람들에게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당당하게 삶의 주인으로 살라고 떠들어대면서 돈을 법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채현국 선생님이 훨씬 더 쎕니다.

 

 

 

훌륭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한 끗발 차이입니다. 그것을 몸소 실행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지요. 사상가 노신은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말없이 내가 그렇게 살아라 그러면 세상은 내가 원하는 쪽으로 바뀔 것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운동가다" 

 

또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나라를 바꾸려고 했다. 나라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사회를 바꾸려고 했다.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가정을 바꾸려고 했지만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런 후에 내가 변했다. 내가 변하자 세상이 저절로 바뀌었다."

 

오로지 남 탓을 하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 날도 어떤 분이 그런 질문을 하더군요. 나이 어린 꼰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나이가 많은 꼰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구요?  참으로 기가 막힌 질문이다 싶었습니다. 왜냐구요? 나는 꼰대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꼰대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골때리는 꼰대는 아닐까 싶은 거지요.~~^^

 

보수적인 사람들 눈에는 진보적인 사람이 꼰대일 수 있고 진보적인 사람 눈에는 보수적인 사람이 꼰대일 수 있고 나이 어린 사람 눈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꼰대일 수도 있고 반대로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나이 어린 사람들이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은 꼰대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말입니다.

 

일면식이 없는 선생님이 그 날 제 눈에는 참으로 자유로운 분으로 비춰졌습니다. 모든 인간이 꿈꾸는 행복의 가장 근본에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롭지 않은 인간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걸리적거리고 매이는 데가 많아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유로운 삶은 욕심을 비워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선생님은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는 비워냄이 그를 더 자유롭게 해 줄 것이라는 것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욕심을 덜어낸 가벼움으로 인해 그는 세상을 향해 거칠 것이 없이 당당해 보였습니다. 그의 삶은 가벼웠지만 그의 말과 생각에 담긴 무게는 무거웠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살 사는 것인지, 제대로 사는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 그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 풍운아 채현국은 제게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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